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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 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나? - 역사적 접근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시매”

박성현 박사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이 말씀은 코비드19 위기가 밀어닥친 2020년, 세계 유버젼(YouVersion) 앱(app)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읽고 나눈 구절(Verse of the Year)이라 한다. 그 해 연말 통계자료에 의하면 2020년 한 해 동안 유버젼 사용자들이 앱 상에서 1,500여 언어로 읽은 성경의 장 수는 무려 436억(43.6 billion)장에 달했으며, 사용자들이 앱에서 밑줄을 긋거나 서로 공유한 구절은 25억(2.5 billion)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2021년도에 유버젼 앱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읽고 나눈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2021년 12월 1일 유버젼 측이 올린 보도 자료에 따르면 유버젼 사용자들은 2021년 한 해 동안 앱 상에서 1,750여 언어로 무려 558억(55.8 billion)장의 성경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사용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나눈 구절은 다름 아닌 마태복음 6장 33절이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상황이 2년을 채우고 있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많은 성경 독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묵상한다는 이와 같은 보도는 모든 교회에 고무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성도들은 판데믹 상황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굳세게 하시며 또 도우시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나라를 묵상하는 자리에 이르게 된 것은 실로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통계자료는 때때로 대표 값에 가려진 지역 값을 볼 때 더 실질적인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곤 하다. 다만 공개된 나라별 자료가 들쑥날쑥하고 또 수치를 담고 있지도 않아서 어렴풋이 살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는 하나, 지난 몇 년간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짚어 본다. 

 

첫째, 이사야 41:10과 빌립보서 4:6 말씀은 2020년 펜데믹이 시작되며 많은 성도들로 하여금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게 해주었다. 이사야의 말씀은 미국, 남아공과 더불어 인도, 필리핀, 네덜란드 등의 성도들이 가장 많이 찾고 나눈 말씀이었고, 빌립보서 말씀은 브라질을 비롯해 가나, 태국, 뉴질랜드 등지에서 많은 성도들의 삶을 붙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사야서와 빌립보서의 이 두 말씀은 펜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이미 전 세계 성도들이 가장 많이 찾고 나누었던 말씀이 된 바 있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많은 성도들은 이미 2018년에 이사야 41:10 말씀을 찾고 나누던 가운데 2020년 펜데믹이 터지면서 이 말씀을 더욱 굳게 붙잡을 수 있었고, 브라질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성도들은 2019년에 이미 빌립보서 4:6 말씀을 찾고 나누는 경험을 하던 중 펜데믹이 터지며 그 말씀 안에 거할 수 있었던 것이라 보여진다. 

여기서 관찰되어지는 놀라운 사실은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환란이 닥치기에 앞서 그들을 붙잡고 이끌어줄 말씀을 미리 주신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말씀으로 미리 준비시키신 예는 성경 전체에 담겨 있다. 

이사야 41:10 말씀만 해도 그렇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야곱’이라 부르시며 장차 그들에게 닥칠 바벨론 유수를 두고 미리 이 위로와 약속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다. 그 조상 야곱의 경우도 다를 바 없었다. 요셉으로부터 기별을 받고 애굽으로 향하고자 한 그에게 하나님은 앞 서 말씀으로 그에게 용기와 확신을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창46:3-4).

그렇다. 우리에게 펜데믹은 느닷없이 밀어닥친 재앙이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말씀으로 미리 준비시키셨다. 앞서 행하시며 그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옛 이스라엘 가운데에도 그리고 오늘 우리 가운데 계속되고 있다.

 

둘째, 판데믹을 거치며 세계의 많은 성도들이 마태복음 6:33 말씀을 붙잡기에 이르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도들의 관심이 ‘하나님의 나라’에 맞춰진다는 것은 실로 고무적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보다 “그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함은 우리가 주기도문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가르침이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그리고 한 절 후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6:10-11). 

21세기를 사는 미국 크리스천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더 이상 가장 큰 근심거리가 아니라는 연구보고가 있다. 펜데믹 전이었던 2017년, 퓨(Pew) 연구센터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크리스채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당시 미국인들이 우려하는 것들에 대해 순위를 매긴 바 있는데, 설문을 위해 채택된 여섯 가지 설정 상황 중 개인 건강의 위기가 응답자들이 지목한 가장 큰 우려 사항으로 밝혀졌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카톨릭 신도의 90%, 흑인 개신교인의 88%, 백인 주류 개신교도 86%, 그리고 백인 복음주의 교인 75%가 이와 같이 답했다. 이렇게 볼 때, 2020년 우리는 우리가 가장 우려하던 영역의 재난을 당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2021년 미국을 비롯한 많은 곳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게 된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렇게 고난에 처해야 믿음을 추스,리게 될까. 고난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최우선에 둘 수는 없는 것일까. 바로 이런 이유에서 태국의 교회를 눈여겨보게 된다. 

유버젼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태국의 성도들은 특이하게도 펜데믹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해온 것 같다. 비록 공개된 자료가 간헐적이긴 하지만 태국의 성도들은 특이하게도 지난 수년간 유독 마태복음 6:33 말씀을 많이 찾고 서로 나누어왔던 것을 볼 수 있다(도표 참조). 펜데믹을 맞은 2020년, 그들 역시 빌립보서 4:6에서 힘을 얻기는 하지만 2021년이 되자 그 전처럼 마태복음 6:33 말씀이 다시 그 곳 성도들의 삶을 이끌어간 것이다. 태국에 대해 문외한인 필자가 가름할 수 있는 바는 아니겠으나 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기에 이른 지금, 줄곧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해온 태국의 성도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바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셋째, 비록 2021년을 지나며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의 성도들이 마태복음 6:33 말씀을 나누기에 이르기는 했지만 현재 모든 곳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고 있지는 못하다. 

2021년에도 2020년처럼 계속해서 이사야 41:10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했던 성도들이 있었고(페루, 아르헨티나, 멕시코,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하신 예레미야 29:11 말씀에 의지해 2022년을 여는 성도들이 많이 있으며(남아공,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 등),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신 여호수아 1:9 말씀을 자주 묵상해왔던 많은 중남미 국가 성도들은(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칠레 등) 2021년에도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해갔다(특히, 브라질과 파나마). 

기독교의 중심축이 숫자적으로는 이미 지구의 남반구로 옮겨진 현재, 그곳의 성도들은 계속 혹독한 펜데믹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태복음 6:33의 후반절의 의미를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질까? 필자의 경우, “일용할 양식”을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을 기억해보면 늘 어느 누군가를 통해서였다. 단 한 번도 양식이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하고 떨어진 적이 없었다. 항상 어느 누구의 손을 통해 그 필요가 채워졌었다. 오늘의 상황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은 어쩌면 “더하시라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삶을 뜻할지도 모른다.   

이제 2022년을 열며 ‘위드 코로나’를 말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위에서 살폈듯이 모든 곳의 모든 성도들이 이 시대를 같은 처지에서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돕고 섬겨야 한다. 바울을 중심으로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힘을 모았던 것처럼(고후8-9), 교회가 교회를 돕는 사례가 풍성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선교의 문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직접 선교를 감당할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현지의 교회를 도와 그들로 하여금 지역사회를 섬길 여력을 갖게 해준다면 펜데믹으로 이동이 어려운 시기에도 선교사역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안해본다-‘위드 코로나’ 시대의 선교는 ‘위드 현지교회’.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백성이 처한 각각의 상황에 따라 그들을 세우고 이끌 말씀을 미리 주셨다. 그 말씀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셨다. 말씀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코비드에 상처 입은 서로를 끌어안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spark4@gordonconwell.edu

01.0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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