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공유되는 모든 시기와 역사적 맥락에서 복음은 어떤 식으로든 문화에 부딪혀왔다.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베푸시는 동안 복음의 진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당하는 학대에 도전했다.
종교개혁 기간 동안 복음은 마틴 루터로 하여금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게끔 몰아갔다. 1700년대 후반 복음은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노예무역을 폐지하도록 영감을 줬다.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랑과 모든 것에 대한 용서라는 자유로운 선물의 메시지는 수세기 동안 사회변화의 원동력이었다. 이 복음의 의미를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인 사회에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그 원리를 적용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히 문화적 참여는 독특한 도전과 복잡성을 동반한다. 많은 이들은 돌격하고 싶어 하고 예언적으로 말하고 싶어 하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길 원하며 그 이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지켜보기를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혹은 다른 공동체에서 우려되는 문제를 정의하기위해 노력할 때 존중의 자세가 매우 중요해진다.
궁극적으로 에드 스테처는 (존중의 자세란) 다른 사람들을 강제로 합의에 이르게끔 만들거나 토론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희망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Engaging Culture Well: How to Share Your Faith Critically and Contextually Today).
믿음을 공유하기 위해 이해를 추구하라
우리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 특히 영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예언자적인 설교자’모드가 되기 쉽다. 우월감과 거들먹거리는 태도는 우리의 증언을 재빠르게 흐리게 만들고 다른 이들이 우리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때때로 믿음을 공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의 입을 닫는 것이다.
바울이 사도행전 17장에서 아테네에 방문했을 때 우리는 그가 유대인, 그리스인, 철학자들과 함께 추론하는데 시간을 보냈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에 어떤 문맥을 읽지도 않고 무작정 그렇게 하진 않았다. 그는 그들과 대화하기 전 이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추구했다.
우리는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의 종교성을 관찰한 것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본다. 바울은 그들의 비문을 읽고 그들의 철학을 고려하면서 아테네의 청중들에게 자신이 “걸어 다니면서 주의 깊게 당신들의 숭배대상을 보았다”고 말한다(행17:23).
복음 전달방법은 존중의 자세로 희망 메시지 공유
하나님이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킨다는 것 신뢰해야
바울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어느 정도의 문화적 문해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비판이나 논평을 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과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리를 공유하는 방법을 배운다.
관계를 구축하라
사람들은 관계적인 맥락 안에서 복음에 잘 반응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다양한 전도적 노력들을 통해 역사하시고 일하신다고 확신하면서도 복음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오랜 기간 동안 서로 교감을 맺은 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잘 공유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뢰가 확립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더 기꺼이 공유하려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들과 다른 이들이 있는 커뮤니티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다른 문화권, 다른 배경 그리고 다른 신념체계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구축할 때,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가 공유될 수 있는 다리를 만들고 길을 열게 된다.
또한 사람들의 신념과 상관없이 사람들을 존경과 존중감을 가지고 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우리의 연설에서 우리에게 은혜롭게 대하기를 권면하며(골4:6), 베드로는 불신자들 앞에서 고결하게 살라고 권면한다(벧전2:12). 이것들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실용적인 방법이다.
복음전도에 대한 관계적 접근은 다른 형식들만큼이나 많은 의도성을 필요로 한다(종종 다른 형태들보다 더 많이 요청된다). 그것은 다른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우정, 기도, 환대, 그리고 관대함을 발전시키는 데에 부지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안락지대에서 벗어나 우리를 하나님께 의존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지를 친숙하게 만들어라
종종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전도를 하다보면 ‘기독교인스러운’ 연설에 휘말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메시지를 더 친숙하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어떤가?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어떤 특정한 것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알려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소중히 여겨지고자 하는 욕망들이 있다. 그래서 역시 우리 각자에게 말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측면들이 다양하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존재한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는 강력한 이미지로 작용했다. 또한 가난하게 사는 이들에게 생명의 떡과 물은 강력한 은유들이다. 또한 어떤 형태로든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헌신적이고 충실한 아버지로서의 개념은 구원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복음을 더 멀리까지 전하기를 갈망하는 만큼 우리는 메시지가 그들에게 구체적으로 말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의 빈 공간을 복음이 채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복음이 그들의 신에 대한 선입견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어떻게 복음이 진리를 말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가?
복음은 강력하지만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방법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해를 통해, 관계를 통해, 그리고 메시지를 친숙하게 만듦으로써 신앙을 공유하는 것을 배워보자.
11.1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