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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46)

부제: 교회사가 가르친다!(32) - 주인의식과 지도자

주인의식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그 분은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한 계획에 동참하여 수고할 일꾼을 찾으신다. 소명을 받은 자가 전심으로 사역에 임할 수 있도록 훈련하시고 단련시키신다. 교회를 섬기는 위치에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남들보다 신앙이나 인격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시기 위해 꾸준하게 만들어 가신다.  

그런데 목회자가 교회에서 섬기는 것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듯하다. 목회자 청빙과정을 살펴보자. 회사에서 직원채용을 위해 공고를 내고, 지원자들을 심사하여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자를 고용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자격조건과 구비서류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타 지역은 물론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도 사역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에 이런 과정을 긍정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교회를 이끌어갈 목회자를 누가 선정했느냐는 질문에,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셨다고 답할 수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있을까? 공동의회에서 청빙투표에 임한 성도들이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에 그치기 때문이다. 물론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투표를 포함한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고 해당 목회자를 지도자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임을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혹시 교회 목회자를 선택하는 것이 직원을 고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한다면 이에 따른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이 매우 인간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매우 민감한 금전문제를 구체적인 예로 들어보자. 고용된 직원으로 간주하는 경우 월급 또는 연봉 개념으로 목회자를 대하게 된다. 매년 목회자의 사례비를 책정할 때 잘못된 주인의식이 발동되어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자신을 고용인이라 간주하는 목회자의 잘못된 생각이거나, 교회와 성도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금전을 요구하여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라도 교회와 목회자 사이가 고용주와 고용인의 개념이 아닌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개입하고 계심을 함께 의식해야 할 것이다. 

 

신뢰와 의뢰 

 

나아가서 목회자 선택을 직원 고용으로 간주할 때 신뢰와 의뢰와 연관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교회가 개척되어 한 목회자가 중심이 되어온 교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교회 역사가 길어질수록 새로운 목회자들을 세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주인의식이 생성되기도 한다. 목회자는 특정 기간 동안 사역하고 다른 곳으로 가거나 은퇴하기에 우리가 앞장서서 교회를 지켜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는 경우이다.  

어찌 보면 이치에 맞는 듯하다. 도리어 적극적으로 교회를 지키려는 생각을 지닌 성도들을 칭찬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목회자를 언젠가 떠날 대상으로 간주하여 조성된 강한 주인의식으로 인해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최선을 다해 사역에 임할 수 있도록 목회사역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고용주의 입장에서 ‘업무 설명서’를 제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된다. 목회자에게 제한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는 주로 설교와 심방을 담당하는 직분을 맡은 자라는 의식을 심어주려 한다. 

목회자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말씀준비와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를 수 있다. 만일 주인의식이 동기가 되어 목회자에게 제한된 권한을 부여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지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에게 주어진 권한 밖에 있는 일이지만 어려움이 생길 때 교회를 대표하는 입장에 있는 목회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경우가 있다. 즉, 교회라는 특수한 배경으로 인해 권한은 없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비논리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버금가게 목회자의 지나친 열정과 과욕이 불러오는 문제도 있다. 목회자는 교회의 각 부서를 맡아 사역하는 자들을 신뢰하고 의뢰할 수 있도록 소통해야 한다. 어떤 형태라도 군주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의 백성을 섬기고 있다는 겸손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 목회란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목회자들로 인해 성도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하였다면 이 역시 반성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성도와 목회자가 동일하게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미 말씀을 통해 허락하신 목회자의 권한과 책임을 인정하고, 상호 신뢰하는 가운데 목회사역을 의뢰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심을 받았으니 목회활동을 통해 성도들을 지도하며 인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교회 내 인간관계 문제에 가장 큰 해를 입는 대상은 예수 님

교회는 부교역자를 미래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사명 인식해야

 

교회의 사명 

 

담임 목회자 외에도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있다. 교회의 규모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목회자보다는 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주로 그들은 교육부서, 교구, 행정, 또는 각 사역 분야를 맡아 사역에 임하고 있다. 신학교에 재학 중인 전도사로부터 오래전 목사안수를 받은 사역자까지 신분이 매우 다양하다. 

일부를 제외한 이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향후 담임 목회자로 쓰임을 받기 위한 훈련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신학교 교육의 커리큘럼은 목회자들에게 필수적인 학문과 경건을 중심하여 짜여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는 자격자로 세워지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더욱 깊어지도록 지도한다. 그러나 신학교는 시간과 환경의 제한으로 인해 목회에 관한 모든 실천적 내용을 가르칠 수 없다. 

부교역자들이 목회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바로 교회이다. 이론적으로 알았던 것을 실천적으로 습득하고 전혀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배우면서 교회를 섬기면서 목회자로서의 잔뼈가 굵어지게 된다.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 외에도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이 누구이며 교회가 어떤 곳인데 대해서도 배워간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교역자들을 미래 지도자로서 성장시키는 사명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의 특정한 분야를 맡겨 일한 시간에 따라 사례를 하는 현실을 뛰어넘어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쓰임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보다 넓은 마음으로 부교역자를 대하여야 할 것이다.  지불하는 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를 제한시키는 결과를 낳게 한다. 형편이 닿는 대로 금전적 도움을 통해 교회를 섬기고 있는 신학생들이 공부와 사역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부교역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담임 목회자의 위치를 인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여 교회가 전체적으로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현재 하나님께서 앞날의 사역을 위해 준비시키고 계신다는 확신과 함께 목회를 실천적으로 배우고 습득하려는 겸손한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 

 

존경심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유교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목회자들을 앞에서 무조건 침묵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고 따라가던 과거와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다. 목회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이를 숨기지 않고 자신의 뜻을 표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불변의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융통성을 가지고 소통하며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과거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아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목회자였던 필자의 부친과 동료들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목회자는 사회적으로 대단한 신분을 지닌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들에 비해 무엇을 많이 가지거나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리는 스타 목회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신실한 모습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듯하다. 그렇다. 존경심이란 상대에게 강요하여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향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목회자들에게 주어진 거룩한 부담이자 반드시 완수해야 할 숙제이다. 

이와 동시에 존경심은 쌍방적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이 지닌 목회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목회자가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고자하는 마음은 상통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목회자와 성도 사이가 벌어져 세워진 담은 서로에게 불이익을 초래하게 한다. 목회자를 향한 마음이 닫히게 되면 가장 먼저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해 귀 역시 닫히게 된다. 영적결핍과 함께 방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목회자 역시 성도에 대한 편견 또는 불편한 마음을 갖게 되면 건강한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는 사역자로 전락하게 된다.  

과거 한국교회 지도자였던 중 한 분이 성도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호소한 적이 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진중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귀한 조언이라 생각된다. 원수 마귀는 에덴동산 이후 엉클어진 인간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방해하여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 세워진 소중한 도구이다. 교회 자체가 받을 영광은 아무것도 없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가장 큰 해를 입히는 대상은 교회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목회자나 성도들이나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도우심이 더욱 절실하다. 잘못된 주인의식과 선을 넘는 책임감을 과감히 내려놓고 십자가 복음의 능력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귀하게 여기는 관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covenantcho@yahoo.com

1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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