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4: 우리가 꼭 필요한 레크리에이션 시간도 없이 끊임없이 이 일에 정신을 쓰다 보면 우리 몸의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를 완전히 얽매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다정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할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 즐기지도 못하고 마음의 긴장도 풀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무례하고 심술궂은 자로 여기게 될 성이요 우리 스스로도 지쳐버릴 것이다.
-대답: 그 같은 반대의견은 육신이 그의 안일을 추구하여 내놓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게으름뱅이는 “길에 사자가 있다”(잠26:13)고 한다. 또는 그는 추워서 쟁기질을 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필요한 레크리에이션을 위해 시간을 가지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다. 목회는 하나님과 그에 대한 봉사를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고 육체적 쾌락을 멀리하는 직업이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둘” 것이다(갈6:8).
또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 이로라”(고전9:26-27). 그들의 일에 도움을 주는 목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우리는 레크리에이션이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도둑질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하며 가능한 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를 시행해야 한다.
우리가 행하고자 하는 일은 우리 건강을 그다지 많이 해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이 일을 장난처럼 행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 일은 우리의 영에 활기와 자극을 불어넣을지언정 이를 소진시키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 시간과 힘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해 쓰겠는가?
“소금도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눅14:34-35).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덧붙이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를 비하시킴으로써 자신을 비하시켰을 뿐 아니라 마지막 날에 있을 더 큰 비하를 예비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 5: 나는 목사들이 자신을 노예처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들이 열심히 설교하고 병자를 심방하며 다른 목회사역을 이행하면서 때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가르침을 주도록 우리를 묶어 두어 우리 삶이 짐에 되고 노예상태가 되도록 요구하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한다.
-대답: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지지 않겠는가! 죄인들이 죽음의 고통으로 인하여 헐떡거리는 것을 보면서도 멈추어 서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노예가 되라고 요구하시지는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신앙이 자신의 육신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고 또한 그것은 행복을 지켜주는 하나님의 보호라고 값싸게 생각하여 육신적인 목적과 행복에 거슬리려 하지 않는 것은 위선자의 속성이다. 이런 의무를 노예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건을 기뻐하겠는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열성을 내는 것을 노예상태로 여기는 사람들이 죄인들이 겪을 비참함을 실지로 믿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큰 불행은 수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도 전에 목사가 되었나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대들은 주 안에서 죽은 사람에게는 큰 영광이 기다리고 있으며 회심하지 아니한 자에게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믿는가? 은혜는 많이 활용할수록 증가되는 것이다. 이렇게 위대한 일에 태만하는 것이야말로 가증스러운 죄악이다.
-반대 6: 바울 사도가 살던 시절은 지금보다 더 부지런해야만 했다. 교회는 이제 막 세워졌고 적은 많았으며 박해가 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답: 이와 같은 논박은 서재에 틀어박혀 있어서 세상을 모르는 사람이 제기하는 것과 같다. 우리 주위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인지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의 육신이 하늘로 올라갔는지 땅에 남아있었는지도 모르며 그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였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용서를 받고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우리 주변에는 무례와 방심, 그리고 호색에 빠져 있고 우리가 단상에서 있는 힘을 다해 설교하여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우리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치료책도 찾지 못한 채 죽음만을 기다리며 의도적으로 세속적인 사람, 자기를 추구하는 사람, 경건한 삶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있지 않는가? 무식하고 둔하며 스캔들에 싸인 신앙고백자들이 너무도 많으며 분열하고 비방하며 교회의 골칫거리가 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아주 행복한 시대이며 개인적인 가르침에 대한 요청이 적으므로 그것을 태만히 해도 괜찮다고 변명할 수 있겠는가!
사역은 영에 활기와 자극 불어넣을지언정 소진시키진 않아
하나님은 선택하신 일꾼위해 필요한 것들을 친히 예비하심
-반대 7: 만일 목사들에게 그와 같은 심한 규칙을 지키라고 하면 교회에 남아있을 목사가 없을 것이다. 어느 누가 그렇게 고생스러운 삶을 택하려 하겠는가?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 양심의 고통을 느낄 것이므로 목사직을 피하려 들 것이다.
-대답: 여러분이 가혹하다고 말한 이 규칙들을 제정하고 부과한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내가 그 규칙에 대해 침묵한다거나 그것을 잘못 해석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경감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나의 침묵이 형제들에게 어떤 구실이 될 수는 없다. 또한 목회자들의 공급에 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이 임무를 부여하시는 분은 성령이 충만한 분이시므로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그의 법에 순종하는 마음을 주실 수 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
또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세상 평안과 번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고난당하고 함께 왕노릇 하도록 저들을 부르셨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들이 인내함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얻어 하나님께 바치면 저들은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선택하신 일꾼들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친히 예비하실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악하게 보시는 것은 우리의 비자발적인 불완전함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불충함과 고의적 직무 유기를 미워하신다. 둘째, 그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가책을 빙자하여 포도원에서 도망가려는 잔꾀를 부린다면 이 시도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하셨듯이 그대를 뒤쫓아 잡으시고 폭풍으로 그대를 “스올의 뱃속”(욘2:2)에 가두신 후 끌고 오실 것이다. 의무를 충성스럽게 행할 수 없으므로 그 일을 던져버리겠다는 것은 결국 보잘것없는 핑계일 뿐이다.
애초에 우리가 세상적인 일과 영원한 일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인식하고 그리스도로 인해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지 알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인 믿음을 소유하고 감각이 아닌 믿음으로 삶을 살았다면 이 모든 반대들은 쉽게 풀렸을 것이다. 그리고 혈과 육의 이익에 대한 부르짖음은 어린 아이 혹은 감각을 상실한 자들의 투정쯤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우리가 양들의 사정을 잘 알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설교해야 할지 알게 된다. 또 무지하고 완악한 죄인과 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 한 시간 연구한 만큼의 설교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강조하고 어떤 것을 반박해야 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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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