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리문답교육에 대한 권위
백스터는 교리문답교육에 대한 권위를 웨스트민스터 예배규칙에 준하는 권위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목사가 공적으로 자신의 책임에 맡겨진 사람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그리고 특별히 그들을 경고하고 권고하고 책망하고 위로하는 것은 의무이다. 목사는 건강할 때 그들을 권고하여 죽음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백스터가 병자의 심방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예배 규칙으로부터 교리문답교육에 대한 명령을 취해 전체 교구교인에게 적용을 확대시킨 것은 참으로 주목할 만하다.
달리 말하면 그에게는 성도로 하여금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도록 하는 최상의 길은 회심이었고, 그렇기에 회심이 개혁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리문답교육을 부흥시키는 것이 새로운 목회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초대교회의 목회 사역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설교만으로는 회심을 통한 개혁을 이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확히 ”누구에게나 다수에게 선포하는 것은 대부분 아무에게도 선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은 목회전략이 잠자고 있는 많은 영혼들을 일깨우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결과적으로 교리문답교육은 책임감과 상호관계에 대한 의식을 더욱 크게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4. 목회적 권징
“개혁신앙 목회자”에 대한 적절한 배경이해를 위해 알아야 할 중요한 다른 요소는 백스터가 목회적 권징의 필요성을 꾸준히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는 1640년과 1650년대의 영국의 기독교 내의 평신도 중심 경향이 팽배해지면서, 분리파의 열심이 교구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분리파들이 자기들이 회집하는 교회에서 순전한 규례들을 지향할 때 백스터는 훨씬 완화된 길을 선택하고 교구교회 내에서 언약공동체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었다. 그는 비분리파 교회들이 권징을 게을리 하는 것은 분리파 사상이 팽배해진 것에 직접 잭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대다수 목사들에게서 나타난 권징 무력증을 극복하기 위해, 백스터는 “권징을 통해 교인들을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게으른 목사는 설교하지 못하는 게으른 목사와 마찬가지로, 퇴출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다스리는 것 역시 설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목사의 본질적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신념을 반복해서 역설했다.
1)필요성
본래 “개혁신앙 목회자”에서 그는 권징의 필요성을 삼단계로 제시했다. “권징을 반대하는 것은 사역을 반대하는 것과 같다. 사역을 반대하는 것은 교회를 가혹하게 반대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교회를 반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하여 백스터는 존 칼빈과 그가 “사도 시대 이후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가장 경건하고 부지런하고 명석한 신학자”로 꼽은 히에로니무스 잔키우스(Hieronymus or Jerome, 1516-1590, 개혁파 정통주의 철학자)에게 크게 힘입었다. 칼빈과 잔키우스는 교회의 복된 상태를 위한 권징의 필수성에 대한 책을 썼다.
백스터는 에드워드 왕 시대의 교회와 칼빈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인 마르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를 ‘권징을 통한 순결’ 사상의 선구자로 인용했다. 크롬웰 공화정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신앙문제에 대한 자유방임주의로 말미암아 관심 있는 많은 목사들이 치안판사가 권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때에는 권징을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경건을 장려하는 일에 있어서 치안판사의 핵심적 역할을 인정했다고 해도, 백스터는 또한 경건을 확립하는 관건은 지역교회 목사들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틴이 주후 312년에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하기 전의 기독교의 순결에 대해 말하면서, “권징 곧 엄격한 권징이 기독교 초기 300년 동안 시행되었고, 그때 군주는 교회의 보호나 신앙의 자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박해하여 죽음으로 내몰았다. 당시 교회는 최고의 교회였고 권징이 교회를 더욱 순결하고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백스터는 “칼이 지나치게 우리의 권징에 간섭하는 것은 유익보다는 해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교리문답교육 부흥으로 초대교회 목회사역 회복 확신
목회적 권징필요 강조...응보적보다 회복적 성격 지적
2)권징의 성격
실제로 그는 목회사역의 양보할 수 없는 필수요소 몇 가지를 거론할 때, “첫째 비신자의 회심을 위해 노력하는 일, 둘째 양심의 문제에 조언을 해주는 일, 셋째 이미 회심한 참된 신자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연구하는 일, 넷째 가정을 특별히 관리하는 일, 다섯째 병자를 심방하는 일과 더불어 여섯째 권징을 강조했다.
그에게 회중적 감독제도에 대한 관념은 모순이 아니었다. 사실 그것은 분리파들의 비판을 잠재우는 최고의 방식이었다. 따라서 권징이 목사의 목회사역에 속해 있는 일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도록 교구 교인들의 동조가 적극적으로 요구되었다. 기독교의 공동체성과 상호성의 관념은 이런 배경에서 더 충분히 실현될 수 있었다. 반면에 그는 목회적 권징이 갖고 있는 공동체적이고 최종적인 성격도 크게 강조했다. 여기에는 전체 공동체가 고집스런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권징에 대한 현대 문화의 오해와는 반대로, 그는 권징의 응보적인 성격보다는 회복적인 성격을 분명히 지적했다. 권징은 항상 “회개하는 자가 교회와의 교제를 회복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목사들은 ‘지나친 엄격함’은 피하고, 권징을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과 죄를 사하는 그리스도의 피의 충분함을“ 확신시키며, 마지막으로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보호하는데 있어서 또는, 그가 출교를 당했다면 교인들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회복시키는 데 있어서,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교회는 책임을 져야 했다. 따라서 교회는 전체 회중이 그리스도를 본받을 구체적인 훈련 곧 백스터가 가장 의미가 큰 것으로 간주한 경건에 대한 연습을 시켜야 했다.
마찬가지로 백스터가 동일한 개혁 프로그램인 개인적인 가르침과 교리문답교육을 시도하는 목사들에게 준 마지막 권면 가운데 하나는 역시 부드럽고 목자다운 권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비록 이 모든 것이 특정한 사람들을 복종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을 버려두지 말고 찾아가라. 그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확인하고 도움을 피할 때 주어질 위험성에 대해 그들을 납득시키라. 한 영혼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지 못해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고 조금이라도 소망이 있으면 그들을 계속 찾아가야 할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기다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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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5.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