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예배에 참석한 손님을 카타콤베에 모셔다드렸다.
성 밖, 아피아 안티카(Appia Antica)로 가는 길 주변에는 카타콤이 여러 군데 있다. 그중 제일 오래된 곳이, 도미틸라 카타콤으로 AD120경부터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본래 이 지역은 도미틸라의 개인 소유지이었는데, 기독교인들에게 사용하도록 제공하였다. 길이가 15Km, 묘지는 약 15만이다. 역사적으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한 이래, 약 250년 동안, 열 명의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AD81-96) 황제다.
네로 황제가 원로원으로부터 자살형을 선고받고 삶을 마무리하자, 네로의 근위대장으로 있던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었다. 그의 두 아들 중, 장자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디투스 장군(후에 황제)이고, 둘째가 도미티아누스 황제로 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런데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사촌이며, 영사인 클레멘트가 있었는데, 그의 부인이 바로 도미틸라이었다. 그 부부는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독실하다는 의미는 구원의 확신을 지닌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다. 어느 시대나 교회를 습관적으로 출석하는 사람과 참믿음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표피적으로는 비슷하고 구분할 수 없지만 어떤 시련이 찾아올 때,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구원의 확신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절대로 요동하지 않는다. 세상은 어떤 작은 일 앞에서 나팔을 불고 요란하게 꽹과리를 울리지만, 참 성도는 그런 일에 크게 괘념치 않는다. 이유는 가치관이 다르고 특히 하늘의 시민권을 소유하였기 때문이다. 영사 클레멘트의 부인, 도미틸라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손녀딸로, 클레멘트와 결혼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을 황제(삼촌)가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았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조금만 기다리면 모후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얼마나 좋았을까? 제정 로마 시대의 황제는 현대의 대통령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권력을 누렸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을 핍박한 황제에게 사촌 클레멘트 부부가 로마제국이 섬기는 신을 버리고,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기독교 교도들은 대단한 집단을 형성하지 못했던 시기이었다. 그런데 황실에서 전통적으로 섬기는 다양한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사촌 부부에게 기독교 신앙을 버리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완강하게 황제의 명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적당하게 넘어가려고 했던 황제는 진노하고 말았다. 황제의 권위가 손상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영사 클레멘트는 사형에 처했고, 질부 도미틸라는 섬 폰자(Ponza)로 귀양을 보냈다. 그리고 조카의 입양은 파양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 후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큰 핍박이 요동칠 때, 두 사람의 군인 순교자, 네레우스와 아킬레우스도 이곳에 묻혔다. 이름이 밝혀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 묻힌 15만 여명의 묘지의 주인공 중에는--
주님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신다. 세상이냐? 주님이냐? 우리는 과연 이런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 찬 신앙인들을 찾으려고 하셨는지,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를 섭리하시자 추풍낙엽처럼 많은 교인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중에는 현재까지도 나오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다. 거듭나지 못하면 확신을 가질 수 없고, 확신이 없으면 언젠가 넘어지고 일어나지 못한다. 카타콤의 지하에 들어가면 천장과 벽은 온통 쇠꼬챙이로 흙을 파낸 흔적이 2천 년 동안 자리를 지키며 말하는 것 같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카로 갔고—
그렇다면 당신은?
chiesadiroma@daum.net
12.1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