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기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엄마가 된 이후로, 나는 우리 가족이 맞을 이 명절 시즌이 어떨지 항상 큰 기대를 하곤 했다. 몇 년 전, 마침내 두 아이가 기저귀에서 벗어났고 그 덕에 나도 뭔가에 십 분 이상 집중할 수 있게 되자, 그해 12월 성탄절을 온전히 즐기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아들의 유치원 크리스마스 파티와 딸의 크리스마스 합창 연습 사이에 나는 동네 극장에서 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 공연 참석을 계획했고, 이어서 크리스마스트리 세우기, 진저브레드 하우스 만들기(축제 음악이 배경음으로 깔아서)까지 모든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가족은 교회의 성탄절 전야 예배에 참석할 계획이었다. 정말로 멋진 성탄절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해 크리스마스 시즌은 비참했다. 우리 가족은 쉬지 않고 이런저런 병에 시달렸고, 12월 한 달 달력에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표시된 행사는 다 허사가 되었다. 연말연시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실망감이 파도같이 덮쳐왔고 꿈꿔왔던 크리스마스가 사라졌다는 느낌에 나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나는 말씀에 몰두했고 감사하게도 무너진 기대가 가져다준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연말연시는 무엇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 오로지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는 새로운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마리아의 불편한 크리스마스
그해 크리스마스 축제에 관한 나의 기대가 산산조각이 났을 때, 나는 같은 엄마로서 좋은 동반자가 곁에 있음을 깨달았다. 마리아는 크리스마스를 경험한 최초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크리스마스가 펼쳐진다는 의미였다(누가복음 1장).
마리아는 처녀로서 임신했고,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요셉에게는 천사의 특별한 개입까지 필요했다(마 1:18-25). 로마제국 전체에 인구 조사를 명령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산달이 다가온 마리아로 하여금 가장 힘든 때에 길고도 힘든 여행을 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낳을 방을 찾지 못한 요셉 부부는 결국 첫째 아들을 마구간에서 낳았고 동물 여물통 곁에 눕혔다(눅 2장).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지저분하고 불편했다.
마리아의 첫 크리스마스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또한 그녀가 바랐던 그림이 전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확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습 그대로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님의 겸손한 탄생을 통해 드러났고, 천사의 팡파르와 함께 비천한 목동들에게 좋은 소식이 선포되었다.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그리스도이시요 주이시니라”(11절).
이에 대해서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생각하니라”(19절)라고 성경은 적고 있다. 힘든 여정과 그녀가 겪은 수고가 고통스러웠을지 몰라도, 마구간에서 낳은 이 작은 아기에 대해 선포된 복음의 좋은 소식은 실로 소중히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결코 마리아가 원하거나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에 관해서였다. 예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좋은 소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틀린 기대
수년이 흐르고 사역에 들어간 예수님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건 사실이었지만(미가가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 곳, 미가 5:2) 그들이 찾던 지도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한 건 왕(요 6:15)이었다. 또한 로마를 몰아낼 “능력”과 “위엄”이 가득한 “목자”, 나아가서 “땅 끝까지”(미 5:4) 위대함을 미칠 메시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복하는 영웅으로 이스라엘에 오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원하는 왕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로마의 압제자들을 전복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상의 군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왕국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는 육체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았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도 않았다(사 53:2-3). 미움 받고 중상모략당하고, 멸시 받았으며, 결국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결국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틀린 기대 때문에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메시아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메시아를 보면서도 거부했다. “그는 자기 백성에게 오셨지만, 자기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요 1:11).
하지만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나라가 지상의 어떤 왕국보다 훨씬 더 좋다. 그리스도는 “능력”과 “위엄”으로 가득하고, 그의 나라는 “땅 끝까지” 확장되어 있다. 참으로 영원한 나라이며, 예수님은 그 나라의 임금이시다. 그의 백성의 궁극적인 죄와 죽음, 그리고 아버지와의 분리를 완전하게 물리친 분이다. 그리고 그의 승리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을 얻게 되었다. 할렐루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더 위대한 것, 즉 그분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더 좋은 선물
내가 아직도 그해의 12월이 달랐더라면 하는 바람을 가질까? 파티와 합창 공연을 놓친 것에 대해서 또 한 달에 걸친 각종 질병과 눈물을 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해에 만난 크리스마스, 그리고 산산조각이 난 나의 기대는 실로 주님이 예비하신 선물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스러운 노래와 파티, 그리고 각종 성탄절 행사를 뛰어넘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목적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마리아에게는 불행한 크리스마스가 한 번 있었다. 구유에 누운 아기의 불행과 고통, 그리고 결국에 맞은 십자가의 죽음까지. 그러나 마리아가 맞은 그 크리스마스로 인해서 모든 불행한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이 좋은 소식에 관한 것임을 나는 그 해 크리스마스로 인해서 새롭게 깨달았다.
by Ann Swindell, TGC
12.14.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