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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라! 공동체와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감사가 더해졌고 사소한 축복에도 교회의 하나 됨을

어린 시절부터 교회의 절기 행사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례행사는 추수감사절이었다. 내가 이때를 좋아하는 이유는 맛있는 파이(아이들이 테이블에 달려들어 몇 조각을 먹었는지 셀 수도 없는 맛있는 사과와 호박과 초콜렛 크림이 들어 있는)나 교회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신나는 불꽃 때문이 아니었다. 달달한 과자로 들떠 있는 친구들과 싸늘하고 컴컴한 뒤쪽 복도를 따라 뛰어다닐 기회를 얻은 것 때문도 아니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는 학기 중인데도 잠자리에 들 시간을 늦춰준 약속 때문도 물론 아니었다. 

나는 아보카도 색의 플라스틱 의자를 당겨서 피아노 주변에 반원으로 둘러앉아 목사님이 감사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누가 먼저 시작하겠냐고 물었던 그 순간을 좋아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에, 누군가가 일어나서 “올해에 새 직장을 주셔서 세금을 낼 수 있고 저의 재능을 사용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그 순간 말이다.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서 “저는 올해에 항암치료가 잘 진행되어 증상에 차도가 보일 수 있게 되어 주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 후에는 사람들이 바로바로 일어나서 혹은 때로 자리에서 머뭇머뭇 이야기하곤 한다.

어린아이였지만, 나는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특권을 귀중하게 여겼다. 해마다 우리는 직장과 가정에 대한 감사, 목회자와 교사들에 대한 감사, 신체의 치유와 가족의 화해에 대한 감사, 죄를 이기게 하심에 대한 감사와 값없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 표현을 듣곤 했다.

이 기회를 기다려 임신이나 결혼 언약을 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항상 놀라는 순간들이 있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하기 위하여 소천한 신실한 성도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순간도 늘 있었다.

그 행사가 끝날 때, 교인들은 의자를 제 위치로 돌려놓고 벽난로의 재를 긁어모아 불꽃을 끄곤 했다. 끈적끈적한 빵 부스러기 파이 접시를 가져다 놓았다. 코트 소매에서 벙어리 장갑을 빼내고 뻣뻣한 부츠를 잡아당겼다. 서로 껴안았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추위 속으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감사를 나눔으로 따뜻해졌다.

 

감사를 드리자

 

최근에 감사라는 주제는 인기를 얻고 있다. 감사는 베스트셀러의 주제이자 예쁜 밈의 대상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정신 건강에서부터 더 나은 수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한다고 한다. 내 친구들은 대다수 개인적으로 감사 일기를 쓰고 있으며, 평생 크고 작게 받은 자비에 대한 감사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감사할 필요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기쁘지만, 개인적인 감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감사의 중요한 차원을 놓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것처럼 감사절 예배는 공동체의 일이 아닌가라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감사절 행사는 단지 봉투에 봉인되어 수취인 하나님만 읽을 수 있도록 감사카드를 보내는 차원의 일이 아니다. 감사절은 여러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행사이다. 감사는 귓속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귀에 들리게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시 66:5)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교회 예배에서, 가족 간의 식탁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대화에서 대중적으로 감사할 기회가 있다. 그런 기회가 되면 감사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요청받고 또 다른 이들에게도 묻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감사를 서로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큰 특권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세속 사회에서 감사절은 종교를 초월한 축일이거나 심지어는 종교를 기반으로 선택된 공휴일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은 감사가 단지 마음으로만 가득하게 간직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진정한 감사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모두 다 내려 주시는(약 1:17)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 감사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분을 높이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선포하며 그분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한다. 감사는 특별히 함께 표현하도록 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시편 136편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절)

시편 136편은 공동체적 감사를 촉구한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함께 영광을 돌리도록 초대한다. 승리한 스포츠 팀의 팬이나 승리한 정치 후보의 지지자처럼,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공동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듣고 기뻐하라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감사를 듣게 하고 그들도 그리하게 하면 우리 마음은 서로 감사로 고무된다. 다른 시편에 나온 다윗의 감사 시를 보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시 34:1-3)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면서 다른 이들이 “듣고 기뻐하게” 하면 그들이 함께 찬양을 돌릴 수 있도록 격려한다. 가족이 함께 감사절 식탁에 둘러앉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도 자비하심에 같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 혼자서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지만, 공개적인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는”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길로 우리가 표류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다른 이들의 공개적인 감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상기하도록 도와준다.

 

모두 함께 즐거워하라

 

마지막으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감사드리는 것은 크리스천의 연합을 격려한다. 교회의 감사절 예배에서 우리가 더 영적으로 충만해졌을 때는 새 가정이 늘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감사가 더해졌고 사소한 축복에도 교회의 하나 됨을 표현할 기회가 되었다. 바울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고전 12:26)고 말한다.

교회가 종종 시기와 갈등으로 좀먹었을 때, 공개적 연합 감사절 행사는 다른 이들로 인한 기쁨을 누릴 기회가 되며, 주님의 친절하심에 그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으며, 한 교인에게 주신 복이 교회 전체의 복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함께 감사하자.

by Megan Hill, TGC

 

11.2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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