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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회복과 축복입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회복의 만남, 회복의 도구, 회복의 축복-

 

교회의 본질, 예배

 

교회의 본질, 생명력은 예배에 있다. 예배가 침체되는 순간 교회는 침체되고 나라와 가정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배가 소중히 여겨지고, 예배가 바로 드려지는 곳에는, 교회가 살아나는 것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이 살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본질이라면 예배이다. 예배를 빼놓고 신앙을 말할 수 없고, 살아있는 예배가 없이 전도가 있을 수 없고, 선교가 있을 수 없다. 특히 교회의 부흥은 물론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을 논할 수 없다.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교회의 본질인,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태어났다. 교회가 태어났다 함은 결국 유기체(organism)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교회가 조직체(organization)로 세워져 가기 때문에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기체적인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교회 자체 안에서 생명력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예배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만나며, 그 속에서 생동력을 가지게 되므로, 교회는 참된 생명의 유기체로 거듭날 수 있다.

 

성경은 회복의 책

 

예배와 교회 회복의 사역들을 전개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회복’이다. 회복의 의미는 ‘치유 혹은 구원’이라는 말로도 사용될 수 있다. 회복은 사망에 이른 어떤 사람이 생명을 얻었고 구원을 얻었다고 말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이러한 내용이 성경 전체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는 곧 회복을 위해 기록된 말씀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도 회복을 위하여 오셔서 우리와 만나주시고, 우리를 구원하고 치료하시는 분으로서 사명을 감당하셨다. 회복자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주시는 회복의 은총을 덧입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 하나님과의 만남

 

예배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만남이다. 만남은 관계, 교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다면 예배 외에는 길이 없음을 성경은 증거한다. 다른 길들은 모두 막아 놓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오직 예배뿐이다. 인간이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받기 원하시는 것은 존귀와 영광과 찬양이다. 그런데 예배 외에는 이것이 가능한 길이 없다. 예배에 그 내용이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배 자체는 만남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길과 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신앙행위 가운데 ‘찬양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말하는 것, 단순히 하던 말을 반복하는 것을 음악 혹은 찬양이라고 할 수 없다. 곡조에 맞추어 하나님께 계속해서 대화로서의 말을 계속하는 그런 교제와 교통의 상태가 찬양이다. 단순한 반복의 지절거림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대상을 입에서 계속 부르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라는 내용 가운데 들어가 있고, 예배를 통해서 선물 같은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과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대화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곧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한다. 이처럼, 오직 예배 안에서만 우리는 최고의 하나님과 만나며 교제를 풍성하게 이루어갈 수 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다.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느끼고 드릴 수 있는가? 사람 쪽에서 타락의 시작이 여기서 시작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과 길을 넘어서려는 것, 죄의 시작이 된다. 예배는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길을 정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대하려 한다. 과녁을 빗나가는 죄가 드러나게 된다.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눈에 보이는 대상을 예배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듯이, 이방 사람들이 온갖 다양한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듯이,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형상을 원한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예배한다. 느낀다는 것은 계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에 가능한 언설이다. 계시기 때문에 드릴 수 있다. 이것을 성령의 임재, 성령의 교통, 성령의 일하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 예배자의 태도와 자세,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자의 모습은 무엇인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시간을 통해, 우리 죄 많은 인생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볼 수 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 가운데, 성령의 교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참되고 바른 예배이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회복을 맛보게 된다.

 

신앙생활의 종합적인 틀

 

예배 속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예배 속에 말씀이 있다. 예배 속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길이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배라는 틀을 주시고, 이 틀을 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결단하며 살 수 있도록 하셨다. 그래서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성공한 것을 가리켜, 하나님과의 교제가 온전하게 이루어졌다고 본다. 

성도의 온전한 삶은, 신앙의 종합적인 틀인 예배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생활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영적 고갈의 문제들, 그로 인해 발생 되는 모든 유혹과 시험의 문제도 예배 속에서 만족감을 가질 수 있다면 능히 이기고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반면에, 예배가 무너지면 인생은 오직 육체적 필요만을 간구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만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해결이 되지 못하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세상 쪽으로 튕겨나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 참된 회복

 

그래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죄인들이 모인 교회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히 세워가려는 목회(牧會)의 목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참된 회복이다. 목회가 다수를 구원하여 많은 열매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예로서, 기도에 열심을 내어 여러 가지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간이 흘러 요지부동하고 태도에 교만이 넘쳐 마음을 걸어 잠그고 예수님의 행하심을 거슬러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거나 정죄하는 일에 몰두하며, 교회의 하나됨을 해치는 것을 보게 된다. 회복의 궁극적인 목적, 하나님 앞에 죄의 사유함을 덧입는 인생의 참된 복을 맛보지 못한 탓이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린아이가 되고, 자기를 나누어 주는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교만과 원망이 가득한 죄인의 자리에서 회복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치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지 않은 채 열심히 외관에 페인트 작업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계는 그러다가 고장 나면 다시 손질해 고칠 수 있지만, 사람은 한 번 잘못된 생각과 습관이 들어가면 그것을 돌이킨다는 것은 너무 어려워지는 것을 본다. 

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고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도구가 예배이다. 하나님은 죄인된 인생을 고쳐서 사용하시기를 원한다. 그런데 인생의 죄악을 고치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법인 예배를 통해서만 인생의 회복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복에 이르는 것이다. 

 

좋은 예배자, 좋은 예배

 

예배의 회복은 예배순서를 달리하거나, 예배의 어떤 방법이나 도구를 달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배 회복의 중심에는 좋은 예배자가 있다. 즉, 좋은 예배는 좋은 예배자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좋은 예배자를 찾고 계신다(요 4:23). 좋은 예배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들을 어떻게 좋은 예배자가 되게 할 것인지에 깊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설정해 주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이 육신 된 자가 좋은 예배를 만든다. 그래서 예배 회복의 중심에는 예배자의 회복을 강력하게 강조한다. 예배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 중심의 목회는 예배자의 훈련을 강조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취하듯이 자기중심적으로 예배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군대의 신병이 복종하는 훈련을 잘 마쳤을 때, 그에게 총과 무기들 심지어 탱크까지 제공되는 것처럼, 잘 훈련된 예배자는 그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하늘의 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도 좋은 예배자가 세운다. 예배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던 순교자들의 정신 위에 교회는 세워져 왔다. 시대적인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한결같은 방법으로 수 세기 수 천 년 동안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좋은 예배를 찾으신다. 어떤 급변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좋은 예배를 찾는 것은 성도만이 아니라 예배의 주관자요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주님과 성령님께서도 가장 원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좋은 예배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될 때, 성도와 목회자들은 좋은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이고, 마침내 성령의 신령한 감동이 살아 있는 예배의 감격을 누리게 될 것이다.

 

davidnjeon@yahoo.com 

10.05.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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