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학자와 문화 관찰자가 “탈 진리(post-truth)”라고 부르는 시대에 지난 십 년에 걸쳐서 살고 있다. 2016년에 “탈 진리”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옥스퍼드 사전은 이 용어를 “여론 형성을 위해서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신념에 호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과 관계있거나 그런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진리 주장에 대한 회의주의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지난 이십 년을 특징짓는 건 다름 아니라 탈 진리 현상을 증폭시키는 여러 요인이다. 소셜 미디어의 부상은 거짓 정보가 전혀 통제되지 않고 빠르게 퍼질 수 있는 메아리 환경(echo chambers)을 만들었다. 기존 미디어 매체, 대학, 종교 기관 같은, 정보를 제어하던 기존 여러 기관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사람들이 나누는 서사가 조각조각 파편화되었다. 더불어서 사회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사실 여부의 근거와 관계없이 기존 신념을 확인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탈 진리 시대는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에게 심각한 도전을 안겨준다. 진리라는 주장에 의심의 눈초리부터 던지는 세상에서 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선포할까? 감정싸움이 논리적 주장을 압도하는 시대에 어떻게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할까?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적 진리라는 개념 자체가 공격받는 이 시대에 어떻게 해야 우리 증언의 진실성(integrity)을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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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거짓말, 그리고 사탄
탈 진리 세상이 가져다준 여러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던진 질문부터 답해야 한다. “진리가 무엇인가?”(요 18:38).
진리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인 동시에 성경이 전제하는 정의는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reality)에 부합하는 무엇이 진리라는 것이다. 철학자 J. P. 모어랜드가 설명하듯이, 진리 대응 이론에 따르면 “진리는 실재에 부합하는 명제(신념, 생각, 진술, 표현)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건 성경이 말하듯, 궁극적인 실재, 즉 가장 진짜 실재가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이다(요 14:6). 진리의 반대는 비진리 또는 거짓말이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 실재와 부합하지 않는 소리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실재와 부합하지 않는 무엇이 궁극적인 실재인 예수님과 부합할 리가 없다. 따라서 실재와 부합하지 않는 그것은 예수님과 반대편에 있다. 거짓말은 틀린 진술을 하거나, 거짓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인상을 남기기 위한 행동으로서 특히 진리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을 속이려는 의도로 하는 것이다(물론 상대가 진실을 들어야 할 상황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다(예: 삿 2:4)). 거짓말은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므로 예수님과도 정반대이다. 탈 진리는 실재가 아니라 비실재에 의해서 그리고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거짓말에 의해서 여론이 형성되는 현상이다.
존 마크 코머는 “오늘날의 문제가 단지 거짓말을 하는 데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아예 거짓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재에 대한 거짓 이야기를 우리 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은 영혼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라고 지적한다. 탈 진리 세계에서 우리는 코머가 “거짓말과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현실의 최전선에 있다.
우리는 거짓말과의 전쟁뿐 아니라 애초에 전쟁을 시작한 자, 즉 마귀와도 전쟁도 함께 벌이고 있다. 요한복음 8:44에서 예수님은 마귀에 대해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다. 또 그는 진리 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속에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본성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쟁이이며,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마귀는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또 귀신 들림이나 고통과 같이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도구는 매우 교묘하다. 1836년에 존 윌킨슨은 이렇게 썼다. “사탄의 계략 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따라 나오는 이 시대의 당연한 귀결이 다름 아니라 마귀의 핵심 술책이다. 바로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악을 가져오는 마귀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거짓말하고 또 사람들이 거짓말을 퍼뜨리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진리와 거짓말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진리 아니면 거짓말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는 실재와 예수님 편을 들거나 아니면 거짓말과 사탄의 편을 들어야 한다. 사탄의 편이 된다는 건 거짓말의 노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편을 들면 요한복음 8:32에서 말했듯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두 가지 선택이다.
거짓말과 벌이는 전쟁에서 제대로 싸우려면, 우리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전략을 가지고,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전술까지 개발해야 한다.
네 개의 전선
거짓말과의 전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전선이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네 가지가 핵심이다.
1. 감정 비진리
탈 진리 현상은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실이나 경험적 증거보다 사람들이 감정, 직감 또는 감정으로 반응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형태로 발생한다. 그리고 감정이 초래하는 비진리에는 추상적인 데이터나 전문가 의견보다 직감과 개인적 경험을 더 신뢰하는 인간의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게다가 오래 간직한 신념, 개인적 정체성 또는 외상적 경험과 연결되는 경우에 감정적 반응은 특히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감정적 반응이 본질적으로 부정적이거나 항상 비이성적이라는 건 아니다. 감정도 얼마든지 그때그때 다른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귀중한 직관적 가이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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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감정이 객관적 실재와 단절된 채 결정이나 신념으로 이어질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2. 서사 비진리
사실의 정확성과 상관없이 설득력 있는 스토리라인이나 단지 말이 되는 설명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무언가를 받아들이거나 믿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유형의 탈 진리 사고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경향에 근거한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퍼뜨리는 존재이기에 서사 형식으로 제시되는 정보인 경우에 더 쉽게 이해하고 기억한다. 비진리 서사가 가진 힘은 복잡하거나 혼란스러운 사건에 일관성과 의미를 제공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며, 그 결과 기존의 신념이나 세계관을 강화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데에 있다. 비진리 서사가 특히 매혹적인 유형의 거짓말인 이유는 사실에 근거한 진리 요소가 추측, 과장 또는 노골적인 거짓과 교묘하게 뒤섞이기 때문이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야말로 가장 명백한 유형의 비진리 서사이다.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는 현재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왜곡한 서사를 수시로 만난다. 좋아요’나 공유, 댓글을 통해 이런 서사는 빠르게 퍼진다. 문제는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정보에 따라 여론을 형성되고 그 결과 실제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3. 종족 비진리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진리란 동시대 사람들이 당신이 하는 말에 반박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는 진리란 주어진 시간과 장소의 규범, 신념, 권력 구조에 영향을 받는 사회적 구성물이라고도 주장했다. 이 주장에서 추론할 수 있는 건 “종족 진리(Tribalistic truth)”이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당신이 속한 집단이 허용하는 한 진리라는 것이다. 개인이 가진 “종족”은 “내집단(in-group)” 즉 내가 속하고 강한 동질감을 느끼는 그룹이다. 내집단 구성원은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서로를 우선적으로 대하고, 유사한 그룹 정신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외집단”은 내가 속하지 않거나 동일시하지 않는 그룹이며, 내집단 구성원은 그들에 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더 많이 갖는 경향이 있다. 외집단에 대한 내집단의 비판은 외부인의 눈에는 오히려 둘 사이의 차이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때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것을 작은 차이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라고 불렀다. “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 공동체일수록,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사소한 차이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대인 관계에서 불화와 상호 조롱을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집단주의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이 집단주의가 가진 독특성은 내집단이 외집단에 대해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할 때 더 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가리지 않고 수천 명이 있는 곳에서 거짓말을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특정 내집단에서 어떤 유형의 거짓말을 허용하는지에 대한 제한 요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내집단 구성원이 보기에 외집단 사람들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이어야만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분쟁은 실제로 말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추론한 내용 때문에 발생한다. 내집단은 외집단의 동기와 그들 속에서 움직이는 정신적 작용을 분별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4. 기관 비진리
거짓말과의 전쟁에서 또 다른 중요한 전선은 우리가 “기관 비진리(Institutional Untruth)”라고 부를 수 있다. 이는 개인이나 그룹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거나 속한 기관의 명예, 권력 또는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을 수용하고 심지어 옹호까지 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형태의 거짓은 종종 충성심이나 의무감 심지어 의로움으로까지 위장하기 때문에 특히 교활하다. 기관 관련 비진리는 보통 은폐, 희생양 만들기, 역사 다시 쓰기, 그리고 협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종류의 거짓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발견된다. 정부 기관, 기업, 학교, 비영리 단체, 그리고 슬프게도 교회와 사역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관 관련 비진리는 특별한 도전이다. 왜냐하면, 사역 대부분이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고, 우리의 사명이 우리가 속한 기관의 평판에 크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속한 기관을 위해 거짓을 간과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유혹은 하나님의 일을 보호하려는 시도로 너무나도 쉽게 정당화될 수 있다.
by Joe Carter, TGC
08.3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