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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질병에 대한 바빙크의 복합 진단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 기관을 통해 조화롭게 역사하는 그리스도인

멘토와 마주 앉았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대학 2학년 때, 나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걸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한때 수시로 체험하던 영적 황홀감이 드물어졌고,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 현명하다는 사람과 마주 앉아 물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는 없을까요?” 나는 그가 “가능하지요” 하는 대답과 함께 불타는 느낌 유지법을 당장에라도 보여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친절하기는 했지만, 짧게 ‘그건 안 됩니다’가 다였다. 나는 한동안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고, 영적으로 힘들었다.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영적으로 아프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는 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균형 잡히고 성숙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먼저 영적 건강이 어떤 모습인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영적 삶을 공격하는 다양한 병리 현상까지 알아야 한다. 헤르만 바빙크(1854-1921)만큼 영적 건강과 질병의 개념을 잘 설명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최근에 출간된 개혁파 윤리학(Reformed Ethics)을 보면 바빙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영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본받는 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바빙크는 “자연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삶도 영적인 건강을 해치는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직면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질병은 모든 면에서 우리의 영적 발전을 방해한다. 어떻게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있을까? 영적 건강 영적 질병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인의 건강에 대한 성경의 개념부터 구체화해야 한다. 바빙크는 영적 건강에 대한 논의를 한 단어, 조화(harmony)에 초점을 맞춘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과 사역이 우리의 존재 전체를 통해 조화롭게 작용할 때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건강할 수 있다. 바빙크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순수한 음식이 우리의 영적 인격을 통해 길을 찾고, 그 과정에서 그 어떤 방해나 혼란에 부딪히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말씀이 지성, 영혼, 의지와 거기에 종속된 능력인 이성, 이해, 양심, 감정과 열정, 본능과 성향을 포함한 모든 기관을 작동시킬 때 우리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현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각 “기관”에 흡수되는 삶을 산다. 우리의 이성은 지적으로 말씀을 파악하고, 감정은 그 진리에 의해 자극을 받으며, 손은 예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도록 인도받는다. 우리 인격의 각 부분은 이렇게 말씀과 조화롭게 상호작용한다. 바빙크는 가장 완벽한 건강의 모범으로 예수님을 든다. “지성과 이성과 의지는 감히 예수님을 지배하지 못했다. 예수님이 이성의 능력에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이성의 적절한 위치를 알았고 결코 지성주의에 굴복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광신자가 아니었다. …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영적 삶의 모델이다”. 바빙크에게는 예수님처럼 되고 그래서 건강한 영적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와 동등하게 상호작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산다. 영적 질병 “조화”라는 단어로 건강한 영적 삶을 정의하는 바빙크가 병리(pathology)를 그 반대로 간주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영적 질병은 일방성에서 비롯된다. 그는 기독교 영성을 정기적으로 공격하고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세 가지 주요 영적 병리를 지적한다. 1. 지성의 병 바빙크는 지성주의를 개신교에서 흔히 발견되는 끔찍한 질병으로 규정한다. 이 병리 현상은 선한 그리스도인이 교리와 지식에 모든 영적 강조점을 두게 하고 “감정적 삶과 실제적 삶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럼 건강한 정통성과 이런 증상은 어떻게 다를까? 지성주의의 오류는 좋은 정통성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고 올바른 교리를 존중하지만, “그것을 가장 높고 유일한 기준으로 여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오로지 교리만이 중요하다. 신앙 고백에 동의하는가 아닌가가 유일한 가치이다. 바빙크는 이 질병이 필연적으로 “행위의 의보다 더 나쁜 교리적 의”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화석화하고 그 진정한 활력은 사라진다. 그리스도인이 지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기독교는 실제 삶이나 성령으로부터 오는 변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상과 개념의 모음으로 전락한다. “이런 느낌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거죠?” 2. 감정의 병 감정의 질병은 “종교 생활을 오로지 감정과 영혼에만 국한한다. 모든 주제를 온통 거기에만 집중한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믿음 체계를 전적으로 감정에 의존한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주관적인 느낌에서만 영적 행복을 찾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게 내가 2학년 때 씨름했던 바로 그 바이러스였다. 깨어진 이런 식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오로지 우리가 “감정을 통해 세상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에게로 빠져들 때”에만 가능하다. 이런 신비주의 접근 방식을 추구하는 종교 형태는 주체적인 인격을 완전히 소멸시킨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성경을 아예 계시의 “낮은 형태”로 격하시키기도 한다. 물론 모든 신비주의가 다 나쁜 건 아니다. 바빙크는 성화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는 다름 아니라 우리 영혼 깊숙이 작용하는 진정한 신비 경험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체험과 영적 느낌만을 중요시하는 것, 그것만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있어서 유일한 참된 원천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오류이다. 감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 황홀감을 유지하려는 욕망에서 건강에 온갖 해로운 술책까지도 쓸 것이다. 3. 의지의 병 의지의 병은 경건함과 외부로 드러나는 도덕 행위를 주된 것으로 삼는 그리스도인에게 발생한다. 경건주의자는 순전히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대상에만 가치를 두는 오류에 빠진다. 그들은 영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행동을 강조하지만, 그들 속에 흔히 “세속적인” 활동으로 간주되는 예술, 역사, 과학 등 비종교 영역이 들어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적으로 되는 데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경건주의자는 종종 교회마저 소홀히 하는 분리주의자가 된다. 바빙크는 “경건주의자는 교회의 가치를 보지 못한다”라고 지적한다. 경건주의에 이어 바빙크는 자신이 광범위하게 “감리교주의(Methodism)”라고 부르는 것을 비난한다. 그건 전적으로 도덕적으로 사는 것, 그리고 열심히 전도해서 열렬하게 개종을 추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일컫는다. 그는 이런 행태를 “개종에 대한 과장된 열의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것을 개종에 종속시킨다”라고 지적한다. 행동과 순종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종종 “그들의 내면은 영적으로 가난하다”라는 게 바빙크의 생각이다. 그들은 내적으로 지성(minds)과 감성(affections)을 기르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려는 악순환에 빠진다. 영적 치료 멘토 앞에서 깊은 실망을 느끼고 몇 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느리지만 내 삶에 더 큰 건강을 가져다주셨다. 바빙크와 다른 사람들의 지혜를 통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nearness)에 대한 나의 판단이 내 영적 삶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셨다. 나 자신을 제대로 살펴볼 때, 내게는 전인격적 접근이 필요하다. 바빙크가 지적한 세 가지 형태의 영적 질병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진리를 존재의 각 부분에 적극 적용하라. 예를 들어,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 이 명령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먼저 지적으로 이해하라. 명확한 생각으로 정의하라.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과 사랑에 수반되는 감정을 느껴보라. 그런 다음에 그의 말씀에 따라서 행동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응답할 때, 우리는 온전하고 또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조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통합된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삶의 모든 부분이 다 사역이었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균형 잡히고 완벽한 모범으로 지금도 서 계신다. 건강한 머리와 마음과 손을 가지고 생활하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영적 기관을 통해 조화롭게 역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by Caleb Clark, TGC 08.1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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