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35년이나 지났어요. 목사님 내가 목사님을 만난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정말 대단하지요? 그때도 오랜 시간을 만난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아마 한 2년 계셨나요?”
저는 J국 사역을 위해 잠시 고국을 방문할 시간을 갖았습니다. 항상 잊지 않고 미주에 올 때마다 연락을 주는 제자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여 전화를 했더니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남편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지난날들을 추적해 봅니다. 35년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첫 사역지에서 두려움과 떨림으로 시작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작은 여중생 하나가 부지런히 교회를 드나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귀엽게 생긴 소녀 하나가 교회 반주에, 주일학교 반사에, 학생부 임원에 안 하는 것 없이, 아니 못하는 것이 없이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15살 꼬마 여학생이 말입니다. 대견하고 신기해서 많이 이뻐했습니다. 그런 소녀가 이제는 중년을 훌쩍 넘어 나를 처음 만날 때보다 더 많은 나이를 가진 아들을 둔 엄마로 제 앞에 나타나 극진한 대접을 하며 옛일을 떠올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 나는 아직도 그때 사진을 가끔 봐요, 목사님 그때 사진 있으세요?” 묻습니다. “글쎄, 나는 없는 것 같은데”했더니 자신이 주겠다며 카톡을 통해 두 장의 빛바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더 선명하게 35년 전의 잊혀가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작은 개척교회가 다 그렇듯 그 교회는 담임목사님과 초보 전도사인 저와 두명의 사역자가 모든 사역을 감당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도 초보 딱지를 달고 있음에도 주일학교, 학생부, 청년부까지 두루 관여하며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사역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만남은 35년이 지난 지금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이민 목회도 선교라 일갈하며, 사람 만나는 것을 사역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면서, 오고 감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그것이 마치 목회의 오랜 연륜으로 성숙해서 그런 듯 위로하며 살아오던 나에게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만남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무엇이 15살 소녀의 마음이 초보 전도사를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은혜를 나누는 사이가 되게 할까?” 생각해 봤습니다. 뭐 별다른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설교를 능숙하게 한 것도 아니었고, 잘 가르치는 스킬을 가진 것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실수투성이 20대 교육전도사에 불과했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그냥 “좋은 추억” 때문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종종 의미 있는 공간이나 장소에 가거나 좋은 만남을 경험하면 “추억만들기”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추억 만들기는 때때로 내가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 힘이 되거나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억 때문에 힘겨운 시간이 은혜의 순간이 되는 경험을 갖곤 합니다. 이 추억을 계기로 다시 자신의 본질을 바라보게 되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도 이런 우리의 모습을 잘 드러내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임무는 특별히 그랬습니다. 선지자들이 당시 감당할 일이 많았겠습니다만 그중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옛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잘못된 길을 버리고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것이지요. 틀림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기막힌 추억들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 추억들이 결국 그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은혜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여러분에게 주님과 함께한 추억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지금 그 추억의 시간을 만들고 계신가요? 참으로 의미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추억’은 여러분이 주님과의 관계에서든 아니면 인간관계에서 든 소원(疏遠)하고 멀어지는 관계를 다시 이어주는 ‘관계회복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보라…”(학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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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