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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이 빈곤층에 미치는 영향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라’

2016년 미국 민주당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고자 하는 요구를 당론의 일환으로 채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제안을 새로운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구제 계획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 2021년 하원과 상원에서 민주당원들은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재상정하였다.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임금을 인상하자는 제안이다. 최저임금은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최저 시급이다. 많은 주 정부 역시 최저임금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근로자가 각 주 및 연방 정부의 최저임금법이 적용될 경우 근로자는 더 높은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증가가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도와줄 수 있을까? 최저임금법이 노동자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미국인은 거의 없다. 잠언 22:22에서 말해주듯 우리의 제일 관심사는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라”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 문제와 그것이 근로 빈곤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잘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여기 최저임금에 대해 알아야 할 명백한 열 가지 내용이 있다.

 

1.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주된 주장은 그것이 노동자의 노동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노동의 임금 효율성 이론은 높은 임금이 노동자의 이직률과 신규 노동자를 고용하고 훈련하는 관련 비용을 감소시키고,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하도록 하는 동기를 줄이며, 해고에 따른 기회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노동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에서 임금을 최저임금 수준까지 소폭 인상한다고 하더라도 고용에 악영향은 없을 것이다. 임금을 더 많이 지급하면 근로자 만족도가 높아져 이직률이 떨어진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종 업종들 사이에 가격 차이가 있을 때만 적용될 수 있는 가정이다. 비용을 더 지급하겠다는 기업은 고용에서의 우위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비용을 더 지급할 의사가 없는 기업들은 최저임금보다 노동력의 가치가 없는 사람들은 해고하든지 또는 그러한 사람들은 고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다른 요인에 따라 이직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절대 고용되지 않을 사람들(저숙련 노동자, 새로운 이민자)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될 것이다.

 

2.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주장은 그것이 낮은 기술력의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최저임금을 “고용주들이 낮은 기술력을 보유한 사람들을 차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건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안토니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최저임금은 고용주가 숙련도가 낮고 교육이나 경험이 낮은 노동자를 고용하고자 하는 모험을 기피하게 함으로 이런 사람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막는다. 다시 말해, 근로자들은 교육, 기술, 경험, 그리고 가격을 기준으로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이러한 요인 중, 교육 수준이 낮고, 숙련도가 낮고, 경험이 적은 근로자들이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가격(임금)이다. 

 

3. 최저임금 소폭 인상의 효과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이견을 보인다.

 

경제학자들은 15달러의 최저 임금이 빈곤율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3분의 1(38%)은 임금 인상이 빈곤율 증가로 이어지리라 생각하는 반면, 27퍼센트는 감소하리라 생각하고 있으며, 19퍼센트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으며, 16퍼센트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5명 중 2명(39%)은 최저임금을 7.25달러로 유지하거나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3분의 2(66%)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10달러 이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의회 예산처는 국가 최저임금이 시간당 15달러로 인상될 경우 실업률이 13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4. 최저임금이 빈곤 임금, 생활 임금, 가족생활 임금과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빈곤 임금, 생활 임금, 심지어 가족생활 임금 수준까지 오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과 혼란이 있다. 생활 임금과 가족생활 임금은 지역적 차이를 보인다. 댈러스와 샌프란시스코를 대표적인 도시로 예를 보면 최저임금이 15달러이면 댈러스에서 생활 임금으로는 충분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활 임금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지역마다 비용이 다르므로 연방 최저임금이 국가 생활 임금을 결정하는 충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5. 최저임금의 인상은 빈곤율 감소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학자인 데이비드 뉴마크는 수많은 연구가 최저임금 인상과 빈곤 감소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 발견은 직관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면, 그들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그들의 가난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어느 정도,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놓치고 있는 사실은 최저임금이 소득이 낮은 가정이 아닌 저임금의 개별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최저임금을 버는 근로자 과 데이빗 맥퍼슨은 “2007, 2008, 그리고 2009년 연방 최저임금의 인상을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21개 주에서, 경기침체의 거시 경제적 결과보다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 때문에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더 많이 잃었다”고 추정했다.

 

6. 최저임금을 실제로 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간당 7.25달러 이하를 버는 근로자는 전체 시급 근로자의 1.9퍼센트를 차지한다. 시간당 임금을 받는 노동자 중 39만 2,000명은 시간당 7.25달러의 연방 최저임금을 정확히 벌었고 120만 명은 연방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이들 중 다수는 팁으로 시간당 임금을 보충할 수 있다.

 

7. 전형적인 최저임금 노동자는 결혼 경험이 없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남부 백인 10대 소녀들이다.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젊다. 시간당 급여를 받는 취업 청소년(16~19세) 가운데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비율은 약 6퍼센트(25세 이상 근로자 중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비율은 약 1%에 불과)이다. 그들은 통계적으로 여성일 가능성이 크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루이지애나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8. 최저임금 규정은 역사적으로 이민에 대한 의욕을 꺾고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자들을 억압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최저임금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우생학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였다: 예비 이민자들을 억제하는 것과 고용에서 ‘고용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가이자 정치 활동가인 론 운즈는 최저 임금의 인상은 합법적이건 불법적이건 이민을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태복음 20장은 어떻게 말하는가?

 

예수님의 노동자 비유가 최저임금법에 관한 것인가? 일부 사람들은 마태복음 20:1-16의 비유가 정부의 최저임금법에 대한 예수님의 반대를 보여준다고 믿는다. 그러한 이해는 성경을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비유의 해석자로서 우리의 임무는 이야기의 관련 의미가 우리의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의 비유에서 돈과 경제를 자주 언급하셨지만, 어떤 비유의 요점도 결코 우리에게 통화정책이나 경제정책에 대한 방향을 지시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비유에 사용되는 예화는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 교훈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불의나 악에 근거한 칭찬할 만한 예화를 사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심지어 같은 종류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다른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사람들과 협상하는 것이 본질에서 잘못된 것이 없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예시를 개인 윤리의 규범적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정부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주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또한, 15절의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라는 구절은 더 넓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성경이 분명히 밝혔듯이, 우리는 돈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마가복음 12:17) 그러니 땅 주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좀 더 넓은 맥락에서의 해석은 무엇일까? 아마도 예수님의 관점에서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경제적인 맥락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이 비유에서의 한 데나리온은 정부가 하루 노동에 관해 규정한 최저임금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성경에는 정부의 최저임금 제정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금지하는 내용은 없다. 실제로 저스틴 테일러는 “예수님이 여기서 우리에게 경제 수업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리 오래 일하더라도 같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수는 사회주의자였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묻는다.

by Joe Carter, TGC

10.07.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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