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ìŒìš•ê³¼ 분노를 유발하는 소셜미디어, ë‹¹ì¥ ëŠìœ¼ë¼.

죽고 사는 문제가 ê±°ê¸°ì— ë‹¬ë ¸ë‹¤

소셜미디어 ë•Œë¬¸ì— ìŒìš•ì´ 치솟는다면, 소셜미디어 ë•Œë¬¸ì— ë¶„ë…¸ê°€ ì¼ì–´ë‚œë‹¤ë©´, ë‹¹ì¥ ì†Œì…œë¯¸ë””ì–´ ì•±ì˜ ì‘ë™ ë°©ì‹ì„ 바꾸ë¼. ê·¸ë˜ë„ 달ë¼ì§€ì§€ 않는다면, 아예 ì•±ì„ ì‚­ì œí•˜ë¼. 

“네 오른ì†ì´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ì°ì–´ì„œ 내버려뼔(마 5:30)

ì˜ˆìˆ˜ë‹˜ì€ ì§€ê¸ˆ ì ì–게 ë§ì”€í•˜ì‹œëŠ” 게 아니다. ì˜ˆìˆ˜ë‹˜ì€ ì§€ê¸ˆ ë‹¹ì‹ ì˜ ì£¼ë‹˜ìœ¼ë¡œì„œ ì¢ì€ ê¸¸ì„ ê±¸ìœ¼ë¼ê³  명령하신다. 맥ë½ìƒ 여기서 지금 ì˜ˆìˆ˜ë‹˜ì€ ê°„ìŒì„ 정죄하고 ìˆë‹¤. “그러나 나는 너í¬ì—게 ë§í•œë‹¤. ì—¬ì를 ë³´ê³  ìŒìš•ì„ 품는 사ëŒì€ ì´ë¯¸ 마ìŒìœ¼ë¡œ ê·¸ ì—¬ì를 범하였다”(마 5:28). 

ìš”ì¦˜ê°™ì´ ì„¹ìŠ¤ê°€ 만연한 ì‹œëŒ€ì— ìš°ë¦¬ëŠ” ì´ ë§ì”€ ì•ì—ì„œ ì¶©ê²©ì„ ë°›ì•„ì•¼ 한다. 섹스 ì‚°ì—…ì´ ì˜ ë˜ëŠ” ê±´ 남ìê³  ì—¬ìê³  가릴 것 ì—†ì´ ë‹¤ë“¤ ìŒìš•ì— ë¹ ì ¸ìˆê¸° 때문ì´ë‹¤. 그러나 ìŒìš•ì€ ê²°ì½” 게ì„ì´ ì•„ë‹ˆë‹¤. 그냥 êµí™˜ 거리가 아니다. ë‹¹ì‹ ì˜ ìƒëª…ì´ ë‹¬ë¦° 문제ì´ë‹¤. 

ì˜ˆìˆ˜ë‹˜ì€ ê²°ì½” 그런 죄를 ê°€ë³ê²Œ 여기지 않으신다. ì˜ˆìˆ˜ë‹˜ì€ ìš°ë¦¬ë”러 ì •ìš• ê·¹ë³µì„ ìœ„í•œ 5단계 프로그ë¨ì— 들어가ë¼ê³  ë§ì”€í•˜ì§€ 않으신다. 그는 ì •ìš•ì„ ì–¼ë§ˆë‚˜ 심ê°í•˜ê²Œ 받아들ì´ëŠ”지를 ìƒìƒí•œ 언어로 ì”ì¸í•˜ê²Œ 보여주실 ë¿ì´ë‹¤. “네 오른 ëˆˆì´ ë„ˆë¡œ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뼔(마 5:29).

왜 몸까지 ì˜ë¼ì•¼ 하ëƒê³ ? “ì‹ ì²´ì˜ í•œ ë¶€ë¶„ì„ ìƒëŠ” 것ì´, 온 ëª¸ì´ ì§€ì˜¥ì— ë˜ì ¸ì§€ëŠ” 것보다 ë” ë‚«ê¸° 때문ì´ë‹¤”(마 5:29). 

그리고 ì˜ˆìˆ˜ë‹˜ì€ ë§ì”€í•˜ì‹ ë‹¤. “ë˜ ë„¤ 오른ì†ì´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ì°ì–´ì„œ 내버려ë¼. ì‹ ì²´ì˜ í•œ ë¶€ë¶„ì„ ìƒëŠ” 것ì´, ì˜¨ëª¸ì´ ì§€ì˜¥ì— ë˜ì ¸ì§€ëŠ” 것보다 ë” ë‚«ë‹¤”(마 5:30). 여기ì—ì„œ 그는 마ìŒì´ ì •ìš•ì„ ì¼ìœ¼í‚¤ê¸° 위해서 사용하는 특정 ë¶€ìœ„ì¸ ëˆˆì—ì„œ ì „ë°˜ì ì¸ 형태로 ì´ë™í•œë‹¤. 죄를 짓게 하는 게 ì†ì´ë¼ë©´, ê·¸ ì†ì„ ì˜ë¼ì•¼ 한다. 디지털 ì‹œëŒ€ì— ì†ì€ 종종 우리를 죄로 ì´ëˆë‹¤. ì‚´ì§ í´ë¦­í•˜ê³  ë˜ ìŠ¤í¬ë¡¤ 하는 ì†ê°€ë½ ë•Œë¬¸ì— íŒŒë©¸ì´ ì˜¬ 수 ìˆë‹¤. 

ì˜ˆìˆ˜ë‹˜ì€ ìŒìš•ì„ 심ê°í•˜ê²Œ 여기신다. 그렇다고 단지 ìŒìš•ë§Œì„ ì”ì¸í•œ ìš©ì–´ë¡œ 정죄하시는 ê±´ 아니다. ì˜ˆìˆ˜ë‹˜ì€ ë¶„ë…¸ë„ ì •ì£„í•˜ì‹ ë‹¤. 분노는 ë‚´ë©´í™”ëœ ì‚´ì¸ì´ë‹¤(마 5:21-22). “나는 너í¬ì—게 ë§í•œë‹¤. ì기 형제나 ì매ì—게 성내는 사ëŒì€, 누구나 심íŒì„ 받는다. ì기 형제나 ì매ì—게 얼간ì´ë¼ê³  ë§í•˜ëŠ” 사ëŒì€, 누구나 ê³µì˜íšŒì— 불려갈 것ì´ìš”, ë˜ ë°”ë³´ë¼ê³  ë§í•˜ëŠ” 사ëŒì€ 지옥 불 ì†ì— ë˜ì ¸ì§ˆ 것ì´ë‹¤”(마 5:22).

분노와 ìŒìš•ì€ ì—´ì •(분노)ê³¼ ì˜ì§€(ìš•ì •)를 왜곡한다. ì´ëŸ° 죄는 ìš°ë¦¬ì˜ ëª¸ê³¼ ì˜í˜¼ì„ ê°™ì´ íŒŒê´´í•œë‹¤. 나 ì신으로부터, ë˜ ìš°ë¦¬ê°€ 저지르는 ì¼íƒˆë¡œë¶€í„° 우리를 구ì›í•˜ê¸° 위해 ì˜ˆìˆ˜ë‹˜ì€ ì£„ë¥¼ 명명하고 ë˜ ì •ì£„í•˜ì‹ ë‹¤. 

í•˜ë‚˜ë‹˜ì€ ëª¨ë“  사ëŒì„ ëŒë³´ì‹ ë‹¤. 그리고 그는 ìŒìš•ê³¼ 분노가 우리를 파괴한다는 ê²ƒì„ ì•„ì‹ ë‹¤. 그런 죄는 실로 무ì비한 í­êµ°ì´ë‹¤. 

ìŒìš•ì„ ì´ê¸°ê¸° 위해서 우리는 나 ìì‹ ì„ í•˜ë‚˜ë‹˜ 나ë¼ì— ì˜¨ì „íˆ ë¬¶ì–´ì•¼ 한다(마 6:23). 화를 ì´ê¸°ë ¤ë©´ 우리는 완전케 하시는 í•˜ë‚˜ë‹˜ì˜ ì‚¬ë‘ ì•ì— 나 ìì‹ ì„ ì˜¨ì „íˆ ë“œë ¤ì•¼ë§Œ 한다(마 5:43-48).

ì˜ˆìˆ˜ë‹˜ì€ ìš°ë¦¬ì—게서 ì´ ì§ì„ 가져가서 ì™„ì „íˆ ì œê±°í•˜ì‹¤ 것ì´ë‹¤. ë³µìŒì´ 무엇ì¸ê°€? 약하고 지친 우리를 향한 주 ì˜ˆìˆ˜ë‹˜ì˜ ë¶€ë¥´ì‹¬ì´ë‹¤. 그리고 ê·¸ë¶„ì€ ìš°ë¦¬ë¥¼ 약하게 하고 지치게 하는 모든 ê²ƒì„ ì œê±°í•˜ì‹ ë‹¤. í• ë ë£¨ì•¼!

“수고하며 무거운 ì§ì„ 진 사ëŒì€ ëª¨ë‘ ë‚´ê²Œë¡œ 오너ë¼. ë‚´ê°€ 너í¬ë¥¼ 쉬게 하겠다. 나는 마ìŒì´ 온유하고 겸ì†í•˜ë‹ˆ, ë‚´ ë©ì—를 메고 나한테 배워ë¼. 그리하면 너í¬ëŠ” 마ìŒì— ì‰¼ì„ ì–»ì„ ê²ƒì´ë‹¤. ë‚´ ë©ì—는 í¸í•˜ê³ , ë‚´ ì§ì€ ê°€ë³ë‹¤”(마 11:28-30). 

ì˜ˆìˆ˜ë‹˜ì€ ìì‹ ì´ ì¤„ 수 없는 ê²ƒì„ í•˜ë¼ê³  명령하지 않으신다. ê·¸ë¶„ì€ ìŒìš•ì„ 파괴하고 분노를 분쇄하는 ë° í•„ìš”í•œ 모든 ì€í˜œë¥¼ 주신다. 그러나 그는 ê²°ì½” 죄를 ê°€ë³ê²Œ 대하지 않으신다. ì˜ˆìˆ˜ë‹˜ì€ ì§€ê¸ˆ 여기서 단지 ì œì•ˆì„ í•˜ëŠ” 게 아니다. 명령하고 계신다. ì¢ì€ ê¸¸ì„ ê±¸ìœ¼ë¼ê³ , 주님으로서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중요한 ê²ƒì€ ìš°ë¦¬ì˜ ëª¨ë“  죄와 슬픔과 ì• í†µì˜ ì§ê¹Œì§€ 다 ì§Šì–´ì§€ì…¨ë˜ ê·¸ë¶„ì´ ì§€ê¸ˆ ìš°ë¦¬ì˜ ì§€ì¹˜ê³  연약한 ëª¨ìŠµë„ ë‹¤ 받아주신다는 것ì´ë‹¤. ìŒìš•ê³¼ ë¶„ë…¸ì˜ ì£„ì—ì„œ 우리를 구ì›í•˜ê¸° 위해 그는 ì‹­ì가를 지셨다. ë˜í•œ 죄와 죽ìŒì„ 정복하기 위해 ì£½ì€ ì 가운ë°ì„œ 부활하셨다. 그리고 지금 그는 우리를 향해서 ì†ì§“하신다. ì–´ì„œ, ì–´ì„œ 내게 오ë¼ê³ . 

소셜미디어가 ë‹¹ì‹ ì˜ ì˜í˜¼ì„ ë§ì¹˜ê²Œ 놔ë‘지 ë§ë¼. ìŒìš• ë˜ëŠ” 분노를 ì¼ìœ¼í‚¨ë‹¤ë©´, ë‹¹ì¥ ì˜ë¼ë²„리ë¼. ë‹¹ì‹ ì˜ ì£½ê³  사는 문제가 ê±°ê¸°ì— ë‹¬ë ¸ë‹¤. 

by Wyatt Graham, TGC

09.0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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