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가장 작은 숫자이다. 한 사람이 무엇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러나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곤 했다. 마틴 루터가 그랬다. 루터 한 사람이 흑암의 중세 시대에 개혁의 횃불을 들었을 때 자신도 세상도 상상하지 못했던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와 이름이 비슷했던 마틴 루터 킹도 세상이 어두울 때 ‘I have a dream’이라는 짧은 그러나 절절한 비전을 선포하였다. 그 한 사람의 비전이 세상을 바꾸었다. 5만 번이나 기도 응답받았다는 한 사람 조지 뮬러는 또 어떤가. 가성비(價性比) 최대의 삶을 살았던 그는 항상 입을 넓게 열고 구하였다. 그로 인해 먹고 입고 마침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 고아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 마음에 맞았던 한 사람 다윗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겼고 세상은 크게 변화되었다.
어두운 들녘에 무시받던 한 아이가 있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요 6:9) 한 아이는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내놓았고 나누었다. 그 한 아이는 오래지 않아 놀라운 기적을 보았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치유 사건은 그 출발이 한 어린 소녀였다. 어린 사무엘은 기성세대가 영적인 잠을 자고 있을 때 유일하게 깨어 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아무리 시대가 암울할지라도 깨어 있는 한 사람, 깨어 있는 아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시대는 소망이 있다.
한 사람의 소중함, 한 아이의 귀중함을 완전히 일깨워주신 분은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다. ‘우리를 위해 나셨다’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야 중 1부 12번째 곡이다. ‘우리를 위해 나셨다 한 아기 우리를 위해’가 반복되는 이 찬양은 이사야의 예언을 옮겨 부른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사 9:6) 우리를 위해 그 어깨에 통치권을 가지고 태어난 한 아기 예수님은 세상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바꾸셨다. 한 아기 예수님이 바꾸신 세상 가운데 철부지 아이처럼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쓰러져 있던 내가 있다.
꽃도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비로소 그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고 김춘수 시인이 일러 주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예수님은 뽕나무 위에서 수치스럽다며 자신을 꽁꽁 감추고 있던 한 사람에게 다가가셨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삭개오야” 이 눈물겹도록 따뜻한 예수님의 부름 앞에 삭개오는 잃어버렸던 자기를 찾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러 오신 한 아기 예수님은 무엇보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며 나를 바꾸어 주신다. 나의 존재를 흔들어 깨워주신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탄일종이 땡땡땡 멀리멀리 퍼진다/ 저 바닷가에 사는 어부들에게도/ 탄일종이 울린다’ 들어보시라. 성탄의 종이 울린다. 예수님이 온 세상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이다. 그 종소리가 저 깊은 산골에도 저 먼 바닷가에도 울려 퍼지고 있지만 내 내면에도 분명히 들려야 한다.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성탄의 종소리에 속히 일어나 잃어버린 나를 찾아보자. 어떤 성탄의 선물이 가장 큰 선물일까. 나 하나의 소중함을 깨달은 나 자신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런 내가, 내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기에.
12.1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