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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감사하는 절기!

‘2022년 추수감사절’ 맞아, 하나님이 주신 은혜 공개적 감사 나눔 축

1620년 102명의 영국 청교도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하여 메이플라워호라는 작은 배를 타고 두 달여의 대서양 항해 끝에 미국 메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플리머스에 가면 그때의 환경을 재현해놓고 배를 똑같이 만들어 놓았는데 청교도들 102명과 선원 약 30명이 타기에는 작은 배였다. 신대륙에 도착하자 맞이한 겨울에 102명의 이민자들의 절반가량인 46명이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죽게 되었다. 겨울이 지난 봄, 이들은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등의 작물을 재배하였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가을이 되어 곡식을 추수하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자 모든 것이 호의적으로 변하면서 그 해 가을에는 대풍작을 이루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추수한 곡식들과 사냥한 칠면조를 준비하여 추수 감사드리는 축제를 3일간 열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감사주일의 시작이다. 그들의 미래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고난 속에서 생존하게 된 것을 감사한 것이다.

 

점점 더 미국에서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수많은 다른 전통과 상업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다. 추수감사절의 본질을 잃게 만드는 상업주의적 그리고 문화적 영향은, 그 피해가 상당하다: 

1869년 9월 24일, 금요일 미국의 월가에서 주가 폭락으로 인해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그러나 1941년 추수감사절이 법적으로 11월 4번째 목요일로 정해지면서, 금요일에 쉬거나 쇼핑을 함으로써 지금의 블랙 프라이데이 관습이 생겨났다. 추수감사절 가족들과 친구들과 보내야 할 시간이 쇼핑으로 인해 줄어들고 추수감사절의 우선순위가 엄청나게 싸게 파는 물품을 사는 행위로 바뀔 수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따르면, 약 20억 파운드의 터키가 2020년 추수감사절 이후에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졌다고 한다. 또한 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에 약 4억 파운드의 으깬 감자와 3억 파운드의 터키 속에 넣는 음식물(Stuffing) 쓰레기로 버려졌다.

물론 대가족 혹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추수감사절에 음식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사실 첫 추수감사절에 청교도들이 한 것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다음으로 맛있는 추수감사절 음식을 해서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추수감사절을 과식하는 날 혹은 평소보다 더 많이 먹는 날로 여긴다. 

그 다음으로는 미식축구이다. 

예일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이 1876년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절 대회가 열렸지만, 1920년대에 미국 프로 미식축구 연맹이 생기면서 추수감사절 당일에도 프로 미식축구 경기를 해왔다. 올해에도 추수감사절 당일에 미식축구 3경기 정도가 중계될 것이다. 스포츠 전문 신문인 스포티코(Sportico)에 따르면, 매년 추수감사절에 평균 약 삼천 삼십만 명이 프로 미식축구 시청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식축구는 대부분 혼자가 아니라 가족 혹은 친구들이 함께 보는 것이기에,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이처럼 점점 프로 미식축구는 추수감사절의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되어왔다.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화해와 나눔과 축제이다!

 

추수 감사절에 들뜬 신앙으로 절기에 도취함이 아닌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의 갈등이 있었다면 용서하고 화해하고 회복하는 추수감사절”이 된다면, 우리들의 신앙 역사 속에서 화해의 은혜가 삶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추수할 수 있도록(풍성케 해 주심과 부요케 해 주시는 축복) 은총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 이웃과 나눔으로 나타나야 한다. 

십자가의 상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 의미가 완성된다. 선교나 전도가 입으로만 풍성하여서는 안 된다. 이런 나눔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고백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선교가 되는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모두 다 내려 주시는(약 1:17) 하나님께 향하는 것이다. 감사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분을 높이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선포하며 그분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한다. 감사는 특별히 함께 표현하도록 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

 

시편 136편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절)

 

시편 136편은 공동체적 감사를 촉구한다. “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함께 영광을 돌리도록 초대한다. 승리한 스포츠 팀의 팬이나 승리한 정치 후보의 지지자처럼,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공동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감사를 듣게 하고 그들도 그리하게 하면 우리 마음은 서로 감사로 고무된다. 다른 시편에 나온 다윗의 감사 시를 보자.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시 34:1-3)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면서 다른 이들이 “듣고 기뻐하게” 하면 그들이 함께 찬양을 돌릴 수 있도록 격려한다. 가족이 함께 감사절 식탁에 둘러앉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들으면 우리도 자비하심에 같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 혼자서는 감사하기가 쉽지 않지만 공개적인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는” 경건하지 않는 사람들의 길로 우리가 표류하지 않도록 막아준다. 다른 이들의 공개적인 감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상기하도록 도와준다.

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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