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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가정예배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네냐(왕상18:16-17)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기 위해 갔습니다. 아합을 만나려고 하는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기 전에 우상을 먼저 처치하려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오바댜는 엘리야를 그냥 두었다고 자신이 죽을까봐 크게 두려워해 아합왕을 만나지 말라고 사정했지만 엘리야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합을 만나겠다고 나아갑니다. 엘리야가 드디어 아합을 만났습니다. 이 일을 통해 주시는 교훈은 경건한 성도는 의를 위해서 오해를 받고 핍박을 받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이런 핍박도 당한 준비가 돼있는지요?

 

화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왕상18:17-19)

오바댜가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가 만나자고 한다고 하니까 아합이 만사를 제쳐놓고 엘리야에게 달려옵니다. 지금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서 몇년 동안 비가 멈췄기 때문에 이제 엘리야를 잡아죽여야 비가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때문에 신앙을 지키다가 욕을 먹거나 핍박을 받으면 크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이요 하늘의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세상과 타협해서 욕을 먹는 경우와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를 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입니다.

 

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왕상18:20-22)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를 사면에 주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미지근한 신앙에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대표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우상을 없애기 전에 먼저 성도들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이든지 바알이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은 아니지만 아합과 이세벨이 무서운 것입니다. 요즘도 이렇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수 없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한마디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 보고 계십니다. 언제까지 머뭇머뭇 하겠습니까?

 

목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시니라(왕상18:23-24)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에 나와 살아계신 하나님만은 전심으로 의지하는 확고한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엘리야는 누구를 섬길 것인가 결정하라는 말을 한 후 홀로 우상과 대결합니다. 엘리야가 이겼고 우상의 대표자들은 모조리 목이 베여 죽었습니다. 엘리야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깊이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항상 넉넉한 여유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대결할까를 먼저 제시합니다. 희생제물을 드려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이 우상숭배자들이 늘 하던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금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왕상18:24-25)

엘리야 선지자가 너희가 먼저 하라고 하니까 우상숭배자들이 바알은 자연을 지배하는 신이라고 믿었고 자기편은 450명이니까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대결방법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엘리야의 여유입니다. 지금 엘리야는 위험한 순간을 맞게 됐습니다. 정말 바알이 불로 응답하면 폭동이 일어나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당장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먼저 하라”고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향해 겁먹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때 마음에 평강이 있고 사는 것이 여유가 있습니다. 

 

토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왕상18:25-29)

우상숭배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응답하라고 단 주위에서 날뛰지만 우상은 가장 중요한 시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우상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뭔가 대단하게 있을 것 같고 우리가 힘을 다하면 뭔가 얻을 듯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상은 정작 중요할 때는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우리가 잘될 때 기뻐하시고 안 될 때는 안타까워하시면서 우리를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아플 때 고쳐주시고 힘들 때 위로해주시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주시고 끝까지 손잡고 때로는 등에 업고 함께 가십니다. 우리는 실망시키고 배반할 때 있지만 주님께서는 끝까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허윤준 목사(뉴욕새생명장로교회) 

jameshur63@hotmail.com

 

10/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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