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넉넉한 소유 때문에 모든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부자라 부른다. 가진 것이 없어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난하다고 말한다. 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하다는 물량적 이분법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로서는 부자되는 길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한 번에 천만금을 거두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도 게의치 않는다.
일반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잘사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부른다. 거기다 삶의 질까지 부가된다면 모두가 부러워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잘산다는 것과 바로 산다는 것은 개념과 그 모양이 전혀 다르다. 수천 억, 수백 억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그 돈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바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식들은 헌 양말을 기워 신기며 시장 골목에서 한평생 구멍가게로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헌납한 어떤 노인이야말로 바로 산 사람이다.
우리가 부러워하고 조명해야 할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명성도 소유도 없으면서 세상의 한 자락을 밝히는 촛불같은 사람들, 바르게 살기 위해 힘을 쏟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다. 교회 생활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잘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기도 생활, 성경공부, 교회 봉사 그 어느 것 하나도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들, 기독교 주류 사회를 형성한 잘 믿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삶도 그러하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성경을 잘 몰라도 예수처럼 되고파하는 사람들, 교회 제도가 익숙지 않아도 바로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 교회 직분이 서툴러도 정직한 기독자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바른 길이 아니면 들어서지 않으려는 순박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믿는 사람들이다. 정당하게 벌어 가지 있게 쓰는 것, 소유보다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 물질문명보다 정신문명을 높이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다. 필자는 ‘황금을 돌보듯 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황금은 황금이기 때문이다. 황금을 황금으로 보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남의 황금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도둑질을 한다든지 내 집 안방에 놔두려는 데 있다.
기독교 경제 원리는 정당하게 벌고 정당하게 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적도 수단도 결과도 선해야 한다. 나는 노력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일구어 놓은 결과를 폭력적 수단으로 분배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발상이 아니다. 아울러 내가 번 돈은 몽땅 내 것이라는 발상도 비성서적이다.
자신들이 설정한 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바리새이들, 그들이야말로 잘 믿고 잘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돌에 맞아 싸다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었던 세리들, 그들이야말로 바로 믿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시대는 이분법, 양극화, 흑백 논리로 병들어가고 있다. 세상 빛깔이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빛깔도 많고 많다. 그런데 백군 흑군, 백군 적군 패 가른 싸움질이 가관이다. 저마다 내가 옳다며 돌을 던지고 있다. 우리 이제 그만 돌팔매를 멈추고 자신을 추슬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