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마르세이유에 수전노가 있었다. 사람들은 돈밖에 모르는 그를 손가락질했고 멀리했다. “안 쓰고, 안 먹고, 안 주고”가 그의 좌우명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유산을 상속할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홀로였고 돈이 전부였다. 그러나 돈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해 세상을 떠나게 됐고 그가 남긴 재산도 시가 처분해야 했다. 그의 유품을 정리하던 시청 사람들이 발견한 그의 유언장은 마르세이유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유언장에는 “마르세이유는 물이 나쁘다. 이 물을 마신 시민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는 모습을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켜보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일생 동안 돈을 모아 물 문제를 풀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나는 검소한 생활을 시작했고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많은 돈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내가 모은 전 재산을 마르세이유 시에 바친다. 이 돈으로 맑은 물을 끌어들여 시민이 마시도록 해주기 바란다”라고 쓰여 있었다.
1920년대 미국 최대 철강회사 사장 찰스 스와브, 증권계의 큰 손 리처드 위트니, 국제개발은행장 레온 크레이저 등 그들 모두는 망했거나 거지가 되었다. 돈 때문에 수갑을 차고 철창신세를 지는 사람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사람들은 돈을 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2월 13일자 타임지 보도에 의하면 세계적인 부자들이 장기간 부를 유지한 예는 극히 드물다며 세계적인 부자 400명 중 145명은 일찍 죽었고, 200명은 투자 과실로 부를 잃었고 겨우 50명 정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부분 3대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졌다고 했다.
소유보다 중요한 것인 삶이며 삶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다. 다시 말하면 얼마나 소유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사느냐보다 그가 누구냐, 누구처럼 사느냐, 누구를 닮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가진 것이 작아도 멋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력과 부를 양손에 쥔 사람도 추한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소유욕은 추태일 뿐이며 갑부들의 절제되지 않은 씀씀이는 졸부열전 첫 장에 기록되어야 한다.
바로 벌고 바로 쓰는 것이 기독교 경제 윤리의 근간이다. 제아무리 피땀 흘려 벌었더라도 바로 쓰지 못한다면 소유의 가치는 절하되고, 제아무리 선한 목적을 위해 거금을 뿌린다 해도 부의 축적 과정이 선명치 못하면 정갈한 투자가 될 수 없다. 소유보다 삶의 가치를 높였던 에릭 프롬의 가르침이라든지. “스스로 부한체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체 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잠13:7)는 지혜자의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그 부의 거룩한 분배를 위해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