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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씨앗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씨알 하나를 심으면 한 알 그대로 있는 법이 없다. 심긴 씨앗이야 썩어서 흙이 되지만 그러나 그 썩은 흙 속에서는 백배, 오십배의 알갱이들이 되살아난다. 본래 씨앗이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 알의 씨앗의 경우에 따라선 수백 섬의 콩이나 팥이나 쌀이 될 수도 있고, 숱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양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는 성서의 교훈은 진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눈다든지 뿌린다는 사실 자체를 불이익으로 생각하고 한 알 그대로를 간직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씨앗은 뿌릴 만한 곳에 뿌려야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토양에 뿌려야 된다는 것이다. 성서의 비유 속에 나오는 대로 길가나 돌짝밭이나 가시떨기 사이에 뿌리면 종자만 허비할 뿐이다.

좋은 씨앗은 좋은 땅에 뿌려져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 벌기에 여념이 없다. 빈둥거리고 무위도식하는 것보다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돈을 모으고 잘 사는 것은 백번 천번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돈을 뿌려야 될 곳과 뿌려선 안될 곳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헛돈 쓰는 데는 펑펑대며 뿌리다가도 뜻있고 보람 있는 일을 위해선 갑자기 구두쇠가 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한평생 설렁탕 장사로 모은 돈을 장학사업 기금으로 내어놓는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자기네 양말은 기워 신으면서 모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준 싱그럽고 향기로운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돈이라는 것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돈이란 책 만드는 종이보다 양질의 종이에 특수 인쇄처리과정을 거친 뒤 국가가 인정하는 화폐로서의 가치를 부여한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그것도 한낱 종이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두 손으로 찢으면 찢어지고 불에 넣으면 재가 되고 물에 넣으면 용해되고 만다. 그뿐인가. 제아무리 산더미 같은 돈 무더기 속에 파묻혀 살던 사람이라도 죽을 때는 맨손 체조하다가 빈손으로 죽기 마련이다. 차이가 있다면 부자는 죽은 후에 조금 비싼 관에 들어가고, 조금 비싼 땅에 묻히고, 조금 비싼 수의를 입고 간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있는 유가족들의 감상이고 기분이지 죽은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100달러짜리 지폐로 수의를 만들고 묘소 주변을 돈으로 울타리 쳐 준다고 해도 그것 역시 산 사람들의 돈 자랑이지 죽은 사람은 알 턱이 없다. 그러니까 버는 것도 살아서 할 일이고 쓰는 것도 죽기 전에 써야 한다. 우린 흔히 돈이 떨어졌다는 말을 돈이 바닥이 났다고 표현한다. 돈이란 제아무리 깊고 높고 넓고 길게 쌓아둔다고 해도 바닥이 날 때가 있다. 그래서 성서는 “나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에는 도둑이 있고 좀이 슬고 녹이 슬기 마련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써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 있다. 제아무리 나누고 뿌려도 계속 솟아나고 더 많아지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이 ‘사랑의 씨앗’이다.

우리네에게는 두 가지 훈련이 필요하다. 하나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훈련이고 둘은 사랑을 올바로 받는 훈련이다. 사랑이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모양과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척 사랑하셨다. 눈동자같이 보호해주셨고 적자(赤子)처럼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의 태도는 시큰둥했고 오히려 다른 사랑을 찾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그 사랑의 관계는 일반적인 것이 돼버렸고, 결국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사랑의 대상 설정에서부터 방법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실패자들이었다. 사랑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해선 안 될 것과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탈선이며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은 사랑해선 안 될 것들과 사랑할 가치가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데는 전투적이면서 정작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할 그네들을 위해선 배타적이고 기피적이기 일쑤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우리네 좁은 가슴 속에 세계와 우주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사랑의 요청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린 얼마든지 사랑의 실천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딸들을 가꾸고 키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세월이 지날수록 숭고한 사랑의 송가로 메아리쳐 울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은 나눌수록 커지고 그 씨앗은 심을수록 울창한 숲이 된다는 진리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은 정갈한 물 한 그릇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논과 밭에 심고 있는 작고 작은 사랑의 씨앗들이 곱고 바르게 자라는 날 우리네 동네방네는 울창한 사랑의 숲이 될 것이다. 공원이 될 것이며, 정원이 될 것이다. “사랑의 씨앗을 나누어 드립니다. 지금 한 알씩 받아 가십시오. 그리고 앞뜰과 뒤뜰에 소중하게 심으십시오. 그리고 잘 자라도록 물주고 가꾸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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