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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역(同役) 윤리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담임 목사가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한다. 담임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교회가 부흥되지 못한다.” 지당하고 옳은 말씀이다. “담임 목사가 왜 강사 말을 안 듣느냐. 내가 전세계를 다 돌아다니지만 이렇게 뻣뻣한 목사는 처음이다. 담임 목사가 제대로 되어야 교회가 바로 되는 법이야.” 이 대목부터 문제가 꼬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상황은 그다지 크지 않은 교회에 부흥회 인도 차 온 자칭 거물 강사가 담임 목사를 두고 던진 말들이다. 그것도 교인들이 듣고 보고 있는 집회 도중에 한 말들이라니 기가 찬다.

어느 교회나 부흥회라는 연례행사를 갖는다. 강사로 초빙 받아 가보면 담임 목회자가 강사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있고, 누가 강사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부흥회나 사경회는 연례행사이면서 교회성장과 신앙성숙을 위한 훈련기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부흥회를 개회하는지 목적도, 준비도, 진행도, 허술한 경우들을 보게 되면 한심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강사로 초빙된 사람의 경우도 각양각색이다. 자기 자랑, 자기 과시, 자기도취, 자기 교회 자랑으로 도배질하는 사람, 본 교회목회자를 노리개(?)처럼 취급하는 사람, 반말, 비속어, 상스런 언어로 강단 언어를 흐리는 사람, 인기몰이에 나선 사람, 괜찮다 싶은 사람 명단 작성해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삶, 담임 교역자 몰래 일 꾸미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많다.

리더는 피해의식에 빠지는 것도, 자기 교만에 바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솔직히 말하면 교회가 크다고 목사도 큰 것은 아니다. 교회가 작다고 목사도 작은 것은 아니다. 교회가 크다고 힘줄 필요도 없고, 작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유명해졌다고 거드름 피워도 안되고, 무명하다고 피해의식의 포로가 되어도 안된다. 크다고 작은 것을 얕잡아도 안되고 작다고 큰 것을 매도해도 안된다.

큰 나무 밑에 모여 살던 작은 나무와 잡초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하루빨리 큰 나무가 폭풍에 쓰러지거나 벼락을 맞아 꺾이는 것이었다. 그래야 자기네 영역에 찬란한 햇볕이 들게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어느 날 밀어닥친 폭풍에 거목이 뿌리째 뽑히게 되었다. 문제는 그날 거목 아래 머물던 작은 나무들이며 잡초들이 모조리 깔리고 짓이겨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공존과 동역의 윤리가 필요하다. 작은 나무와 잡초들은 수분 공급원이 되어주는가 하면 큰 나무는 작은 나무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이러한 공존상생의 윤리를 외면하기 시작하면 상쟁, 갈등, 분열의 폭풍이 일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은 약자에게는 걷잡기 힘든 약자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강자가 약자를 돌보고 한 발짝 물러서는 여유를 보여야 한다. 약자와 작은 자의 투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강자는 언제라도 약자의 나락으로 내려설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굴러 떨어지는 굉음은 작은 것보다 큰 것일 때 크다는 사실도 유의해야 한다. 당신은 큰가, 강자인가, 유명한가, 그렇다면 낮추라, 겸허하라, 그리고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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