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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자의 노래(1)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젊음 그리고 늙음

 

2014년 9월 22일붜 25일까지 서울 소망교회에서 필자가 속한 통합교단 총회가 회집되었다. 매년 개회예배 시 증경총회장들이 총회장 가운을 입고 입장하는 것으로 개회예배가 진행된다. 올해도 증경총회장들이 참석했고 개회행진에 참여했다.

이틀째인 화요일에는 증경총회장들을 소개하고 환영하는 순서가 있었다. 필자는 81회기 총회장을 역임했으니까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약관 55세에 부총회장으로 피선될 때 서울지역에선 최초 최연소 총회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가는 세월 막을 길 없이 필자도 원로 축에 끼게 됐다

본 교단의 생존 증경총회장은 모두 24명이다. 56회 총회장이었던 고 방지일 목사님은 1911년생 104세로 총회에 마지막으로 참석하셨었다. 보행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셨지만 정신력이나 기억력은 여전하셨고 집필 활동도 끝까지 하셨다. 그 외 증경총회장들 가운데 이미 세상을 떠난 분, 지병으로 출입이 어려운 분들이 상당수여서 뵐 수가 없었다. 그동안 총대 분포를 보면 6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총회가 젊어진 것이다.

젊다는 것, 그것은 자랑이고 자산이다. 목회자들이 세대교체가 급물살을 타고 젊어지고 있다. 그러나 젊음이 약점은 축적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서두르고 조급하다는 것, 패기만을 앞세워 판단이 서투르다는 것이다. 모 주간지 고정 칼럼이 생각난다. 글 내용은 젊은이들의 도전과 용기를 예찬하면서 기성세대와 노인들을 대하는 그들의 버릇없음을 꾸짖는 것이었다. 그 글 말미는 ‘너도 늙어봐라’ 였다. 필자도 젊은 시절 은퇴를 한다든지 70세를 넘기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남의 일이었다. 오는 백발을 막으려 해도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가 된다. 

 

정도 목회, 정도 목양

 

필자는 위임목사나 후배들에게 정도 목회(正道 牧會) 정도 목양(正道 牧羊)이라는 휘호를 선물하곤 한다. 정도와 균형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갈한 목회로 마침표를 찍으려면 정도라야 한다.

필자는 1966년에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니까 48년이 되는 셈이다. 길고 먼 여정, 비바람 맞고 눈보라 맞서고 산 넘고 물 건너는 삶을 48년 이어 나왔다. 그러나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정도를 걷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고, 균형 잡힌 삶을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대다수 대성을 이룬 사람들이 한순간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은 정도를 빗나갔기 때문이며, 균형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고공에서 줄 타는 사람들은 몸이 가벼워야 한다. 체중 100킬로그램 넘는 사람이 줄을 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줄이 끊어지거나 지지대가 무너져 위험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경우 과체중이 걸리면 문제가 일어난다. 목사의 위치가 높아지고 교회가 커지기 시작하면 비만 현상이 일어난다. 비만과 과체중은 온갖 성인병을 유발한다. 

지인과 친구는 유사점도 있고 상이점도 있다. 지인은 가까이 있는 사람, 주변 사람, 내가 그를 알고 그가 나를 아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친구는 지인의 단계를 넘어 사랑과 정을 나누고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편들어 주는 사람을 말한다. 목회도 친구가 필요하다. 그가 목사이든 장로이든 집사이든 위로와 도움을 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시대는 친구 찾기가 어려워졌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비정 윤리가 판을 친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살고, 네가 망해야 내가 흥하고, 네가 쓰러져야 내가 일어선다는 악덕이 교회 안까지 파고들었다. 교회 갈등과 교파 분쟁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런 흐름이 속속 드러난다. 

09.0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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