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교회 원로
오랫동안 동일 직종에 종사한 사람들 가운데 달인이 있다. 그러나 목회에 달인은 없다. 달인인 양 처신하는 목회자가 있다면 오만에 빠진 사람이거나 착각증 환자일 뿐이다. 학문에 왕도가 없는 것처럼 목회 역시 왕도도 없고, 대가도, 달인도 없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목회가 숱한 해를 넘겨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면 대부분 아쉬움과 허전함의 굴레에 걸리게 된다. 목회란 과찬도, 폄하도 금물이다. 목회평가의 척도는 성실과 최선이라야 한다. 필자의 바람은 모든 목회자가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은퇴 전이나 이후가 바람직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척박해져 가는 목회현장과 풍향을 바라보노라면 예삿일이 아니라는 걱정이 앞선다. 단일 지도체제의 위력을 한껏 뽐낸 바티칸의 지도력이 던진 신드롬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지도력의 약화와 교회현장의 부정적 변동, 거기다 악화일로를 치닫는 인간심성, 현장목회를 마무리하고 객관자적 입장에서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필자의 소회를 ‘목회서신’이라는 이름으로 피력해 보려고 한다.
은퇴 목회자들에게 드리는 글
A목회자의 경우 50대 젊은 시절 총회가 정한 70세 정년과 상관없이 65세가 되면 은퇴하겠노라 설교시간에 소신을 밝혔습니다. 15년 뒤의 일이라 숙고없이 던진 말이었다고 합니다. 15년이 다가오자 당회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은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정식 당회 안건으로 다뤄야 한다.” 당회 회록에도 없고 문서에도 없는 은퇴가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교인 여론은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하신 말씀은 회의록이나 결의문서보다 중요하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은퇴와 함께 원로목사의 예우도 받지 못한 채 목회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은퇴식을 끝내고 자동차에 오르자 ‘내가 어디로 가지?’라는 막막함이 운무처럼 앞을 막더랍니다. 그리고 상실감, 배신감, 우울감, 허무감 등 불량한 감정이 가슴을 누르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이더랍니다. 목회 재임 시 소위 측근입네 하며 곁을 맴돌던 그 사람이 섭섭군단의 중대장으로 나선 꼴은 실망의 골이 너무나 깊어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시달린다는 그를 어느 날 만났습니다. “우리는 예수도 아니고 예수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런저런 일로 가슴이 아팠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니셨습니다. 가룟 유다도 있지 않았습니까? 다 잊고 내려놓으시죠. 그 결단이 빠를수록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빨라지고 건강 회복도 빨라집니다. 지금까지 내가 일구고 매만졌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라고 생각을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선언했던 그 약속을 당당하게 지키고 목회를 내려놓았다고 자신을 조정하십시오. 그런 결단이 늦어질수록 내게로 돌아오는 정신적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라는 요지의 고언을 전했지만 그 이후 그분은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보냈는지 확인한 바 없습니다.
필자도 그런 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허전하고 서운하고 막막하고, 아무개가 섭섭하고 ‘그럴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솟구치고 그 외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나 몸짓이 저 자신과 교회와 후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바꿨습니다. 물론 사고의 전환이 쉽진 않았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꾸고 몸짓을 하면서부터 심신이 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등거리 원거리가 좋습니다. 목회할 때처럼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 안테나를 세우며 편할 날이 없습니다. 잘하겠거니, 알아서 하겠거니 라는 생각과 함께 기도의 지원군이 되면 편안한 잠을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마 ‘왜 저렇게 해? 저건 아닌데 원로인 나를 제쳐?’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섭섭마귀가 종횡무진 활개를 칩니다. 그리고 반드시 원로와 후임 사이를 오가는 사탄의 메신저들이 나타나 두 사이를 가르고 이간질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교회도 내교회가 아닙니다. 교인도 내 양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바뀌고 목자가 달라졌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울분과 분통을 잠재울 길이 없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사모님의 입장입니다. 한평생 기지개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그늘에 머물며 눈물과 한숨과 인내와 기도로 내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모의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양되고 교인들의 관심이 카메라 렌즈 초점이 바뀌듯 달라졌습니다. 당사자 말고 누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남편의 외조가 필요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져야 하고 동행길이 열려야 합니다. 한평생 위로자로 살아온 사모님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회에 쫓겨 못다 했던 배려와 사랑을 마음에 담고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큰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아직 다 내려놓지 못한 분이 계시지요? 내려놓으시지요.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려놓으면 가볍고 개운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후임이 잘한다고 칭찬합시다. 그래야 그 칭찬과 격려가 돌고 돌아 내게로 돌아옵니다. 물론 힘든 일이겠지만 그렇게 해봅시다.
iamcspark@hanmail.net
06.22.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