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필자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방학숙제로 일기를 써야 할 때도 방학이 끝나기 3일 전에 한꺼번에 썼다. 그러니까 그건 일기가 아니라 모조였고 짜깁기였다. 일기란 사실대로 써야 하기 때문에 하루 일과를 끝내고 써야 한다. 그래야 사실과 정직을 지킬 수 있다. 필자가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76년 충신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후 3개월이 지나서였다. 서울 목회의 실상과 흔적을 역사적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는 일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 일기장은 좁다 싶어 두툼한 대학노트를 구입하고 표지에 ‘목회일기’라고 대문자로 썼다. 쓰고픈 이야기, 써야 할 얘기들이 많았다. 목회일기라고 다를 바 없이 날짜와 그날의 날씨를 쓰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일기를 썼다. 사실 그대로 겪었던 일, 만난 사람들, 주고받은 대화들을 정직하게 써 내려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두 페이지 넘는 분량이 되기도 했다. 6개월 정도 써 내려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사실대로 정직하게 써야 하는가 였다. 자서전은 얼마든지 포장이 가능하고 미화가 용이하다. 포장지가 화려할수록 멋진 자서전이 된다. 그러나 자기 일을 자신이 쓰면서 허풍으로 메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또 다른 문제는 보관과 보존의 일이었다. 책상 서랍이나 책장 책갈피 속에 넣어 두면 되고, 본인이 일기를 쓰고 있는 동안은 자신만의 일기가 되겠지만, 훗날 내가 세상을 떠나거나 일기장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을 때 반드시 일기장은 다른 사람에게 공개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기장을 어떻게 보존해야 할 것인가 그것도 문제였다. 교인들의 눈물겨운 사연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으면 안 될 교인들과의 상담들, 사랑과 격려와 도움을 펴 준 그 사람 이야기, 아니 그 반대도 있다. 껌 씹듯 씹어대는 사람,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로 목사의 심장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람, 위하는 척하면서 목사의 약점이나 허점을 노리는 사람, 이러쿵저러쿵 유언비어를 퍼뜨려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사람, 그들 이야기도 낱낱이 써 내려가는 것이 일기의 기본이다. 그러나 먼 훗날 필자의 일기장을 들여다볼 내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그 사실이 당사자들이나 후손들에게 알려졌을 때 그 반응은 어떨까 그것이 문제였다. 얼마 동안 고민하던 끝에 일기장을 덮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나는 일기를 쓰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일기를 쓰지 않는다.
목회자는 목자여야 한다
옛날에 비해 목회 주변과 여건이 거칠어졌다. 목회자 자신의 책임이 크지만 교인들의 사고가 거칠어지고 행도이 강성으로 치닫고 있다. 필자는 예수님이 어린 양을 품에 안고 서 계시는 그림을 좋아한다. 오래전 성지순례 중 여리고로 내려가다 베드윈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들은 수백 마리의 양을 치고 있었다. 예수님처럼 양을 품에 안고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양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흙바닥에서 뒹군 탓으로 온몸은 흙먼지 투성이었고 털은 오줌똥이 얽혀 황토색이었고 역겨운 냄새 때문에 코를 들 수 없었다. 그날 거기서 필자는 양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럽고 냄새나는 양을 품에 안고 웃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었다.
목자의 책임은 병든 양은 치유하고, 더럽혀진 양은 정결하게 하고, 싸우는 양은 화목의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평소 필자의 목회신념 중 하나는 ‘양은 천사고 악마도 아니라는 것’이다. 바르게 이끌면 따라오고, 방치하면 온갖 위험에 노출된다. 필자의 경우 한 주일만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와도 교회가 낯설고 생소하다. 그런 의미에서 1년씩 교회를 비우고 안식년을 누리를 것을 필자는 찬성하지 않는다. 양이 잠잘 때에도 목자는 깨어 있어야 하고, 양이 쉬고 있을 때에도 목자는 파수해야 한다. 양들이 먹이를 먹을 때에도 목자는 먹이를 선별해야 한다. 목자가 딴 데 눈 돌리고 목양을 소홀히 하면 곧바로 그 파장이 목장에 퍼진다. iamcspa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