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필자는 부총회장 후보라면 누구나 해야 된다는 전국노회 순방이나 지역 방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올 필요가 없다, 우리가 알아서 한다”라고 책임을 져 주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모하고 무리한 생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왜 안 오느냐? 내려와라”는 제촉을 받은 경우도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만나러 가지 않았다. 돈을 썼다면 20년 동안 썼고 선거운동을 했다면 20년간 한 셈이다. 선거는 선거다. 상대가 있고 표를 행사하는 개인이 있고 집단이 있다. 그래서 사람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도를 빗나가고 균형이 깨지면 안된다.
선거를 치러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가늠할 수 있다. 선거전이 가열될수록 추해지는 사람이 있고, 고매해지는 사람이 있다. 마치 선거의 귀재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능력과 영향력을 과대 포장하는 사람, 사단장이라도 되는 양 자신의 힘으로 몇백 표를 움직일 수 있다며 호언하는 사람, 선교단체 이름을 내세워 몰표와 조건을 바꾸자는 선거 브러커, 별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절 그들의 제안이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추한 사람들의 추한 타협 제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말없이 필자를 돕고 지원해준 많은 동역자들에게 지금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총회 장소는 서울 명성교회였다. 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교회의 당회원과 교인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총회장소 마당에 늘어서 입장하는 총대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 단 한 사람도 마당에 서게 하지 않았고 교인을 동원하지 않았다. 필자 역시 총대들을 만나기 위해 마당을 돌아다니지 않았다. 총회가 개회되는 시간까지 골방을 빌려 기도하고 소견 발표문을 다듬고 점심은 설렁탕으로 주문해 혼자 먹었다.
대형현수막 내걸고 수십 명씩 교인 동원하고 꽃다발 준비하고 그러고 난 후 선거에서 떨어지면 그 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왜 생각 못하는가? 구겨진 자존심과 허탈감에 빠져 상처 입은 교인들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는 총회장보다 양떼가 더 귀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경력이나 경험이 일천했던 탓으로 총회장으로서 회무처리가 서툴 수밖에 없었다. 총대 구성원 중엔 별 사람이 다 있기 마련이다. 구경삼아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뭔가를 작심하고 앉아 있는 사람, 법률 전문가인 양 법을 따지는 사람, 안건마다 나서는 사람들과 소리 지르고 따지는 사람들은 대충 15명 안팎이었다. 그들은 사명이라도 부여받은 것처럼 안건마다 발언했고, 3분이 초과되어 마이크가 꺼지면 육성으로 고함치며 발언을 계속하곤 했다. 입을 다물면 좀이 쑤시는 사람들은 지금도 많고 많다.
맡겨진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
총회장 기간 중 국내외 많은 사람을 만났고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고 주재하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만남은 북한교회(조그련) 지도자들과의 만남이다. 첫 번째는 헝가리 데브레 첸에서 개회된 세계개혁교회연맹 총회에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했고 강영섭 위원장과 몇 사람의 대표가 북한교회 대표로 참석했다. 셋째 날 저녁에는 남북교회의 밤으로 진행됐고 필자와 고 강영섭 위원장이 강연에 나섰다. 두 번째는 뉴욕 UN본부에서 한국, 북한, 미국 세 나라 교회대표단이 현안과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구국대표단 회의에서였다. 역시 그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기를 주저했고 자기네들까지 합의된 사항만을 의제로 다루거나 제안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개회 첫날 개회예배 설교를 마친 필자에게 강영섭 위원장이 이런 유머를 던졌다. “박 목사님, 저희 봉수교회 오셔서 부흥회 인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멋진 설교 들었습니다”, “안되겠습니다. 박 목사님이 오셔서 부흥회 인도하시면 우리 교인들 모두 다 박 목사님 따라나서겠는데요?” 그러나 현재까지 필자는 북한을 방문한 일이 없다. 세 번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남북교회 지도자 회의에서였다. 사석에서 “매번 같은 얼굴만 나오지 말고 대른 대표도 참석하도록 하시지요”라고 하자 “저희 기독교연맹은 사람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얼굴 바꿔 나올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강 위원장의 답이었다.
이곳에서는 북한교회의 요구와 제안이 그리고 한국교회의 협력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그리고 그들과의 약속은 귀국 후 반드시 실행에 옮겼다. 그들 말에 따르면 “수많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만났고 북한방문단을 만났다. 그들은 오만 가지를 다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킨 사람들은 없었다”는 것이다. 약속! 그것은 인격과 삶의 시금석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하는 게 좋고, 어린아이와의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특히 목사의 경우는 약속 이행이 철저해야 한다. iamcspa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