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신학자 바르트의 말대로 한 손에는 성경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 이유는 설교는 영적 선포이면서 삶의 길잡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설교는 영혼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양식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길을 밝히고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현장을 외면하면 안된다.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은 설교의 틀 구성을 결정한다. 필자의 경우 상담, 만남, 뉴스, 독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장(컨텍스트)을 확인하고 이해한다. 기도 없이 서둘러 설교를 만들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영락없이 설교는 건성피부처럼 건조해진다. 그러나 기도로 영감을 얻고 붓을 들면 충전된 배터리처럼 파란불이 커진다.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면 모든 예배를 마쳤다는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주일 설교를 고민한다. 부지런한 설교자들은 1-2년분 설교를 예비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메모와 준비된 자료들을 절기와 행사, 구약과 신약, 교리와 생활 등으로 분류하고 연간 계획을 잡곤 했다. 어느 날 은혜로운 설교에 감동한 사람이 스펄전에게 “오늘 설교는 얼마 동안 준비했는가”하고 묻자 그의 대답은 “평생 동안 준비했다”였다고 한다. 자료 준비가 잘 되면 식단이 풍성한 밥상이 되지만 자료가 빈약하면 인스턴트 대용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 그리고 듣는 사람들의 삶의 정황을 이해할 때 싱싱한 식단 마련이 이루어지게 된다.
원칙을 지키며 설교 만들기
정해진 제목과 본문을 설교로 완성하는 날은 토요일이다. 그러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겹칠 때도 있고 응급한 사건이 돌발할 경우를 대비해 금요일 오후에 설교 작성을 시작한다. 400자 원고지 12매를 채우면 28-30분 설교가 가능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일생동안 고집한 철칙이 있다. 그것은 원고지에 필기도구로 쓴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생활화된 지금도 설교 원고 작성만큼은 기계의 힘을 거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설교 전문을 구어체로 예화까지 그대로 작성한다. 필자는 모든 설교자들에게 설교의 원고 작성을 권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원고지에 그대로 써서 작성한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작품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오선지에 자신의 악상을 옮겼을 때 연주가 가능하고 작품으로 남는 것과 같다. 필자의 경우 30여 권이 넘는 설교집은 작성한 원고 그대로 편집한 것들이다. 설교 원고 작성은 설교자의 문장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두 번째는 불필요한 감정이입을 막기 때문이다. 원고 없는 설교, 메모 설교는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상황과 분위기 때문에 감정이입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럴 경우 생각지 않았던 말을 할 수도 있고 예기치 않았던 행동을 취하게 된다. 원고 작성이 끝나면 밑줄을 긋고 주를 달아가며 열 번 이상 읽고 숙지한다. 작성된 설교 원고를 그대로 읽는 것은 전달과 소통을 막는다. 원고 없는 즉흥설교는 전달 목표에서 멀어질 확률이 높다. 설교를 원고지에 옮겼더라도 원고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충분한 예습이 필요하다. 읽고 또 읽노라면 자신이 선포해야 될 주제와 방향을 확인하게 된다. 필자도 때로 예화를 사용한다. 예화란 설교 전달을 위한 보조도구이지 목적 자체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지나치게 많은 예화를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예화는 최근 사건일수록, 그리고 사실적인 것일수록 좋다. 1백년 전 사건, 예화집에 나오는 이야기, 타 종교 인물전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경우 실명을 거명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예화는 길이와 횟수를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얽힌 이야기나 간증이 지나치게 반복되면 듣는 사람들은 쉽게 싫증을 느끼게 된다. iamcspar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