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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스티그마(2)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목회자가 상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든지 헤어나지 못하면 그 상처 바이러스가 교회를 잠식하고 교인들에게 전이된다는 것이다. 필자라고 상처가 없었겠는가? 중직자가 준 상처도 있고 철없는 교인이 준 상처도 있다.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 목장의 희열을 안을 수 있고, 거기에 매몰되면 교회를 떠나거나 우울증 환자가 된다. 전문가들은 우을증을 마음의 감기라 부른다. 2011년 한 해 동안 우울증이나 정신과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54만 명이었다고 한다[한국: 편집자주]. 그리고 그 숫자는 해가 바뀔 때마다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울증 보균자는 노숙자들보다는 화이트칼라 쪽이 훨씬 많다고 한다. 충신교회 목회 35년 동안 말 못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필자의 처방은 ‘참자, 기다리자’였다. 35년 목회 기간 동안 단 한번 ‘목회를 그만두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된 내용이나 사람을 활자로 새길 순 없다. 그러나 곧바로 죄송하다며 찾아온 당회원들에게 담임목사의 부덕과 경솔을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했다. 그날 그 사건 이후로 단 한번도 누구를 탓하거나 책임과 결과를 떠넘기지 않고 ‘나 때문이다’라며 가파른 언덕을 넘곤 했다. 문제는 상처나 스트레스는 내면에 쌓일수록 독소가 된다는 데 있다. 그때마다 필자는 산을 찾고 강을 찾고 바다를 찾았다. 그리고 눈을 들어 아버지를 바라고 외쳐 불렀다. 속 깊이 쌓인 독을 토해냈고 주님의 손을 잡았다. 목청이 터지도록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새김질 했다. 필자는 타고난 체질이 금식형이 못된다. 그래서 기도하기 위해 장기간 금식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소리쳐 기도하고 찬송하기 위해 잘 먹었다. 그리고 상처를 준 아무개를 위해 기도했다. 물론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어서지 못하면 양들에게 부패한 꼴을 먹이게 되고, 그 꼴을 먹은 양들은 집단 전염병으로 고통 받게 된다. 양이 병들면 그 해독은 부메랑이 되어 목자에게 되돌아온다. 병든 목자와 병든 양이 공존하는 목장은 생명력을 잃고 신음하는 절망의 골짜기가 되고 만다. 그래서 목자와 양을 위해 교회는 행복 목장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식 작금 한국교회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면 여기가 교회인가 아니면 전장인가 구분 짓기 어려운 곳들이 많다. 그렇게 된 데는 목사의 책임도 있고 교인들 책임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인이란 특화된 전투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마치 싸우고 시비 걸고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태어나 존재하는 사람들처럼 행세한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전투병들, 그들과 맞서 싸우는 목회자도 자랑스런 목자는 아니다. 필자의 소신 중 하나는 ‘울면 웃는다’ 이다. 여기서 운다는 것은 징징대고 칭얼대고 궁상떠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머리시고 주인이신 주님을 소리 높여 부르고 직고하는 기도 행위를 뜻한다. 필자는 아버지와 주님이라는 칭호를 즐겨 쓴다. 일찍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회복했고, 위기와 거친 고비마다 주님을 바라고 의지하고 외쳐 부르고 손잡았던 탓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버지!”하고 부르면 힘이 솟는다. 주님을 목 터지게 부르면 길이 보인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의 윌리엄 프레이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분비되는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눈물과 함께 배출된다. 그 때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생리적 상태를 정상으로 돌려준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감정이 정화된다”고 했다. 하물며 아버지를 향한 눈물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명약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위기를 넘겼고 사선을 넘었다. iamcs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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