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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와 자존심 (중)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목사, 자기관리가 생명이다 목사가 도도하게 굴고 목에 힘을 주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궁상떨고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더 보기 힘들다. 그래서 목회를 시작하고 내려놓는 날까지 단 한번도 월급이 얼마인가, 연봉이 얼마나 되는가, 몇 퍼센트나 증약되었는가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다. 누구라도 연봉이 오르고 활동비가 증액되는 것이 싫거나 귀찮은 사람은 없다. 필자도 돈이 좋고 많으면 더 좋다. 그러나 그런 것들 때문에 자존심을 흙바닥에 깔고 싶은 마음은 없다. 흔히 목회를 하나님의 목회라고 말한다. 그 뜻은 내 것도 아니고,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목회 대상은 사람이다. 그러나 목회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회 성패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와 그 뜻을 얼마나 헤아리고 따르느냐로 판가름 난다. 목회 대상이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네들 눈치를 살핀다든지, 그들의 의사결정을 하나님의 뜻 위에 둔다든지, 그네들의 행보에 맞춰 나가려 하는 것은 결단코 하나님의 목회가 아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양보해야 할 것과 양보해선 안될 것들이 있다. 필자의 경우 강단과 인사는 양보한 일이 없다. 말씀선포는 목사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며 사역이기 때문에 결정을 위임하거나 함부로 개방한 일이 없다. 부흥회 강사, 헌신예배 강사, 세미나 강사 선정은 담임목사의 책임과 결정으로 정했다. ‘어느 강사가 좋다던대요’라든지 ‘누구를 모십시다’라는 제안은 참고로 했을 뿐 그 말 따라 강사를 정하지 않았다. 아무나 강단에 세울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래선 안 되기 때문이다.

강단은 교인들에게 제한된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교육 훈련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곳이다. 그런 강단을 타의에 의해 내맡긴다든지 문을 개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강단은 담임목사가 책임져야 하고 책임 하에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한다. 인사 문제도 필자가 책임졌다. 35년간 부목사나 전도사를 청빙하는데 신문에 광고한 일이 없다. 믿을 만한 사람의 추천이나 부목사의 친구들을 초빙하도록 했다.

작금 한국교회는 회사나 기업이 직원을 선발하듯 신문에 광고하고 이력서를 받아 심의하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담임목사의 경우 수백 통씩 이력서가 쌓인다고 한다. 이력서나 화려한 경력, 그리고 멋진 화술로 엮어내는 설교 한 편으로 영혼을 책임질 목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무리다. 목양의 원리는 양이 목자를 선임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의 경우 부교역자 선택 방법에 때문에 교회에 부덕을 끼치거나 문제가 일어난 일이 없다. 그리고 줄타기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채용하거나 청빙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A장로와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A장로를 내세워 청탁을 하거나 추천하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이유는 부목사는 담임목사를 도와 사역할 사람이지 A장로와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이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사람이 A장로 라인을 통해 부교역자가 된다면 A장로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담임목사와의 긍정적 관계에 골이 파일 개연성이 크다.

그런가 하면 재정문제는 해당 책임자들과 부서장에 위임했다. 믿고 맡겼고, 틈새 없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조정하고 관리했다. 하나님 은혜로 충신교회 목회 35년 동안 재정사고가 없었다. 물론 목사는 교회재정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돈이란 멀리해도 안 되고 가까이 해도 안 된다. 철저하고 빈틈없는 관리는 필요하지만 돈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완주자의 노래-40년 목회이야기”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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