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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모의 사명가꾸기 (5)

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모들은 열심히 남편의 사역에 내조하다 보면 자신의 모습은 돌볼 여유 조차 없게 됩니다. 더욱이 이민목회의 사정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성도들의 정착문제입니다. 정착되어 한식구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진땀을 흘리는데 어쩌다 안정이 되었다고 안심하다보면 예기치 않는 일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성도들이 생깁니다. 이상하게도 한사람이 떠나면 콩고물 묻히듯 함께 우루루 떠납니다. 이런 일들 앞에 사모들은 아연 질색하게 됩니다. 예배 후에 있을 점심식사준비, 예배시간 동안 해야 하는 베이비시터, 이 모든 것들은 사모의 몫이 됩니다. 말씀은 듣기는커녕 정신없이 일에 쫓겨 모든 예배를 마치고 나면 파김치가 됩니다.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또 다음 주일을 맞이해야 합니다. 처음엔 사명에 불타올라 어떤 상황도 기쁨으로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진땀을 빼고 나도 좋은 소리는커녕 사모 때문에 시험에 들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집니다. 남편이라도 사모의 사정을 이해하여 그런대로 위로해주신다면 사모들은 버티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 때문에 이제 목회 못하겠다” 하는 불평이라도 나오면 그때는 정말 사모들의 마음은 “다 때려치우고 싶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사모들의 기질 따라 나타나는 증세는 천차만별입니다.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다가 심지어는 자살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사모들이 여기저기에서 호소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모들을 위해 곳곳에서 위로의 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 단체에서도 사모들을 위한 관심이 늘어나 사모세미나가 열려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행사가 그들의 근본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단회적인 행사로 지나가는 것보다는 계속적으로 사모들을 위한 사명을 가꾸어 주는 행사가 절실해집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남편의 입을 통해 날마다 선포되어지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 말씀에는 전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모들이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 터질 일이겠습니까? 오히려 비판하는 자세로 지적하기 바쁜 사모들이 생기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남편의 행동과 전해지는 말씀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남편목사들도 사모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목사 자신이 지키는 말씀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지키면서 외치는 목사들의 설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음을 사모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해지기만 하면 그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모들의 잘못된 인식이 때로는 말씀의 운동력을 가로 막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을 어떻게 사용하시는가를 먼저 바로 알고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도록 뒤에서 기도로 밀어드려야 합니다. 어떤 판단과 비판도 금물입니다. 사단은 주일아침에 목사부부를 공격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사모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목사의 속을 후벼 팝니다. 목사의 허물과 약점으로 말씀의 능력을 앗아가게 합니다. 바로 이때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바로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살아 있는 말씀을 붙잡고 담대하게 강단에서 외칠 수 있는 남편이 되도록 격려의 말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사모들이 먼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에 말씀의 칼이 닿아 찔러 쪼개임을 받아야 합니다. 위의 네 가지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는 감정도 포함됩니다. 골수같은 쪼갤 수 없는 부분까지도 포함됩니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우리의 습관도, 버릇도, 신앙생활을 오래도록 해오면서 종교생활에는 능숙하지만 떨어지지 않는 죄성, 껌딱지같이 붙어서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는 기질적인 성격들, 그러면서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우리 부모로부터 유전 받은 것이니까 하면서 매우 관대하게 넘어가곤 하던 못된 성품들.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칼에 찔려 쪼개임을 받아야 합니다. 마귀는 항상 이런 것을 이용하여 도전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심판주 앞에 드러나게 될 때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서 말입니다. 히4:13에 모든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실 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씨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상대방의 목을 꽉 쥐고 숨도 쉴 수 없어 더 이상 경기를 계속하지 못하여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용어로서 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말합니다. 셋째는 죄수들이 집행장으로 끌려갈 때 부끄러워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죄수의 목에 시퍼런 날이 있는 칼을 대고 있음으로 더 이상 머리를 숙일 수 없도록 하는 광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모든 마음의 생각과 뜻조차도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수시로 성령의 검으로 찔러 쪼개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므로 무디어진 사명감을 다시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명은 사모들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같은 일도 사명감이 뜨거울 땐 힘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사모의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기면서 또한 요령과 지혜가 생깁니다. 능숙해지는 것은 유익하겠지만 순수성은 결핍이 되지요. 그러기에 에배소교회를 향하여 책망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처음 사랑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철저하게 찾기 위해 애쓰는 사모, 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말씀이 힘을 발하게 됩니다.

죄에 대한 심각성이 점점 예민해 질수록 복음의 순수성이 강하게 사모들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수없이 밀려오는 사모가 해야 할 일들은 의외로 복음의 힘을 무력하게 만들뿐만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무거운 짐이 되어 온갖 상처로 아무 힘도 의욕도 없는 실패자로 전락하게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는 목회자의 자녀들에게는 사모의 길을 철저히 반대하는 현상이 나오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의 회복은 곧 복음의 회복입니다. 사모들에게 있어서 소홀히 여겨지기 쉬운 복음의 회복이야말로 시급한 것이며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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