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모의 사명이 특별한 것임은 이미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의 사역을 돕기 위한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시대에는 사모는 무조건 조용히 있어야 하고 교회 일에 어떤 간섭도 금지되어있었습니다. 사모의 위치가 분명치 않아 어정쩡 애매한 위치에서 억울한 일 속상한 일들이 겹겹이 쌓여왔고 사모의 자리는 물론 이름도 없고 심지어는 존재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기독교가 부흥되면서 사모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여기저기에서 사모를 위한 사역의 종류가 많아지고 사모들이 머리를 들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사개발 및 전문분야에 뛰어들 수 있도록 남편의 도움을 받기도 하며 사모들을 위한 세미나 및 교육 현장이 속속히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활동을 하므로 교회부흥과 성장에 많은 유익을 주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모들은 교회 안에서 활동을 싫어하는 성도도 적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엄밀히 따져서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고 사모는 어디까지나 뒤에서 돕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대표는 목사이지 사모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사와 대면하기를 원합니다. 사모란 이름 자체는 어떤 책임자의 이름이 아닙니다. 리더의 아내를 가리켜 사모라고 부릅니다. 장관이나 사장부인에게도 사모라는 이름이 불리워집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직접 남편이 하는 일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남편이 가진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목회현장에서는 다릅니다. 훨씬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모의 자리입니다.
어떤 목회자의 경우는 사모가 목회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따라서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성도들도 처음부터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별로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직접 끼어들어 당회까지 간섭하고 심지어는 당회장 행세도 하는 사모도 있습니다. 이민목회에서는 대부분이 교회 경제가 여의치 않아 사모가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교회 봉사자들이 부족할 때면 의례껏 사모는 물론이고 목회자 자녀들까지도 아무 이유도 없이 온갖 봉사를 다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이런 상황을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사모에게도 전문훈련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모의 영성을 철저히 가꾸는데서 행복한 목회가 나올 수 있습니다. 전문분야훈련이라는 말은 그 분야에 전문성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능숙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지혜도, 인간관계도, 인격도, 재능도 모두 탁월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 같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경우 사모들은 이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성도들의 요구사항에 100% 만족을 줄 수 있는 사모, 천사처럼 고상하고 죄도 짓지 않는 사모, 이런 사모가 되기를 추구하기가 쉽게 되는데 그러기에 사모들은 빨리 지치고 방전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하기에, 힘들어도 해야 하고 억지로도 해야 하고 아파도 안 아픈척, 피곤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야 하기에 마침내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모 위로의 밤이 생기게 되었고 사모들의 쉼터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들의 참된 쉼은 어떻게 하면 얻게 될까요? 진정한 위로를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요?
다양한 사모들의 모양내지는 섬기는 모습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어떤 위치에서든지 교회를 섬기는 사모들의 모습은 하나님이 예쁘게 보아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모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이 일을 감당하느냐 입니다. 사모들의 얼굴에는 행복이라는 글자가 보여져야 합니다. 억지로 웃으려 하지 않아도 웃는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천성적인 성품에 미루다보면 그렇지 못한 사모들은 항상 얼굴을 찡그려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성도들에게 보여질 때 또 다른 문제가 꼬리를 물고 오게 되는 것입니다. 잘, 잘못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앞서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 일인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사모들에게는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교회에서 받는 사례금이 사모들을 행복하게 해준다면 사례금이 적은 사모들은 항상 울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많이 모일 때 행복할 수 있다면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 나가기라도 하면 사모들은 비상에 걸리게 됩니다. 혹시라도 내 교인이 이웃교회에 가기라도 하면 그날부터 이웃교회의 사모와는 원수가 됩니다. 쇼핑센터에서 얼굴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피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심지어는 성도 한사람을 놓고 두 교회 사모들이 서로 머리채를 쥐고 싸움을 하는 현장도 생기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래야만 합니까?
목회자도 그의 아내인 사모도 평생토록 이 일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섬겨왔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떠나는 날, 혹은 은퇴를 하고 뒤를 돌아 집으로 가는 그 길은 얼마나 허전할까요? 한평생 한길만을 걸어왔는데.... 오직 성도들만을 위해 눈물 흘리며 정성을 쏟아왔는데 하루아침에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 목회자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어떤 사모님은 한평생 섬겨온 교회를 떠나면서 금단현상까지 일어나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사모들은 여성이므로 더더욱 힘들지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목표를 달성할 때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성공의 의미는 내가 목표한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에게도 목표가 있고 사모들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때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법도 과정도 모두 그가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대로 되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잔을 내게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외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굴복의 십자가를 멋지게 지고 가신 예수님은 마침내 우리를 구속하신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메일:hwangsun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