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모의 사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복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모는 행복한 여인입니다. 그 이유는 전편에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바울은 사명자의 행복을 철저하게 누린 자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바울이 어떻게 하여 행복한 사명자가 되었나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열정을 쏟은 자이었습니다. 행9:1에 보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라고 되어있습니다. 바울은 이렇듯 자아가 강하고 기독교에 대하여는 원수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것도 대낮에 너무도 환한 빛에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 뒤에 그는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강한 훈련을 받는 것이 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서신들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모들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그리고 고난이 늘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럴수록 사명감을 다시 재정립하기만 한다면 더욱더 보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바울 서신마다 제일 서두에 자신을 소개하는 단어들을 자세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고전1:1). 이처럼 바울은 누가 자기를 불렀는지 또 그가 누구신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이었음도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모들의 사명감을 흔들어 놓는 것은 부르신 자가 누구임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부르심의 목적과 이유를 확실히 할 때 새 힘이 솟아납니다.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도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의 제자들을 죽이려고 달려가던 바울이 어느 날 변신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큰소리치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가소롭다고 핍박하며 비웃는 자들을 향하여 바울은 담대하게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하나님이 자신을 불렀다”(갈1:1).
그렇습니다. 사모들은 목회를 돕다가 때로는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남편의 약점으로 성도들에게 핀잔을 받기도 하며 또는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나 스스로 사모의 자격도 없으면서 무슨 사역을 하겠다고... 하면서 안팎으로 공격하는 마귀들의 공격에 그만 쓰러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 어느 것보다도 사모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될 때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아무리 큰 사역을 하였고 많은 은사를 나타냈던 자들도 이와같은 자신의 공격 앞에는 맥을 추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위기에서도 자신의 사명감을 더욱 고취시켰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1:10). 목회를 하다보면 성도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지혜가 필요하면서도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 초대교회 때는 성도들이 목회자의 권위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교회이전을 할 때에도 이명서를 첨부해야 했습니다. 또한 징계제도도 있어서 성도들을 견책하기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한인들이 드문 지역에는 한사람이 귀하므로 교회에 들어오는 교인들을 애지중지하다보면 성경대로 올바른 지도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이용하는 성도들은 자기가 싫으면 이유는 어디에 있다 해도 교회를 이전하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이런 교회 안의 악습은 목회자의 사명감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부르신 자가 누구인가를 날마다 재인식하는 것이 사명자의 사명을 더욱 순수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사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선물은 어떤 자격에 기인하지 않습니다. 단지 선물을 주는 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선물을 받고 싶어도 주는 자가 없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사명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선물의 성격을 강조해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명을 감당할 때마다 기쁨이 넘친다고 표현합니다. 옥중에 갇혔을 때에도 오히려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모의 사명은 누가 주신 것인가를 날마다 재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난관 앞에서도 이 기쁨과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을 행복하게 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성령의 강한 역사가 따르게 됩니다. 불치병이 낫는 사건, 때로는 우연히 내뱉은 말들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성도들 가운데 어려운 일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경우 더욱 더 그러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향해 표현하기를 만삭되지 못해 나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역을 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이 어떤 자임을 철저히 깨닫고 호소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 할수록 자신이 어떤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부르심의 목적과 부르신 이가 누구인가를 알게 되어 항상 겸손할 수 있습니다. 쓰임을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존재를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으며 또한 종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를 가리켜 행복한 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