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사모 (CMF사모사역원 원장)
사모의 특권 중에 가장 당당한 특권은 중보기도의 특권입니다. 요즈음엔 평신도 중보사역이 활발해졌지만 사모들의 중보기도의 힘을 어느 누구도 앞지를 수는 없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산에서 모세가 더디 내려옴을 보고 아론을 부추겨서 금 우상을 섬기는 것을 목격한 모세는 십계명을 갖고 내려오다가 떨어뜨려 깨졌습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려고 할 때 모세는 중보기도에 들어갑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두 번씩이나 어찌하여--어찌하여--라고 하면서 뜻을 돌이켜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하며 간절히 기도를 하였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 내리지 아니 하시니라고 14절에 적혀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어떠했기에 이렇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을까요? 모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에 명예를 건 기도였기 때문입니다. (12절)두 번째로 모세의 중보기도의 힘은 32절에 그러나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이 기도는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대가를 대신 담당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십자가를 지실 것을 예표하신 내용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마칠 때 ‘예수이름으로 간절히 구합니다’ 하는 의미는 곧 우리의 기도응답은 예수의 중보의 힘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모들의 기도는 성도들을 중보하는 기도입니다. 남편 목사를 대신 중보하는 기도입니다. 왜 사모의 길이 험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까? 사모는 대신 지는 십자가를 지고 가기 때문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지고 가기 때문에 때로는 억울하기도 하고 십자가의 무게 이상으로 무겁기도 한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실수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남편의 실수도 성도들의 실수도 묵묵히 끌어안고 사모가 감당해야 할 때 바로 그때 사모의 영성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런 일이 눈앞에 닥칠 때 처리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목회초창기 때는 억울하고 분해서 남편에게 소리를 지를 때도 있고 성도들과 다툴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일동안 엎드리다 보면 억울해서 참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아집니다. 남편에게 소리 지를 필요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모세가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백성들의 죄를 자신의 죄인양 하나님께 호소하였기 때문이었고 또 한 가지는 이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예가 손상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모의 아픔은 성도들의 허물과 또는 남편의 허물을 대신 가슴에 품고 안타까워하는 아픔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모들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집니다. 이런 허물을 위해 아낌없이 버렸던 아들의 십자가를 생각나게 하는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잊을 수 없는 그 자리, 하나님이 도저히 잊지 못할 자리가 있는데 그 곳은 바로 아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진 자리입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심이 아닙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동댕이 쳐놓고 죽어가는 아들을 도저히 쳐다 볼 수 없어 뒤로 돌이켜 눈을 감고 계시는 아버지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대고 기도하는 사모들의 기도소리를 듣고는 견딜 수 없어 들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후에 진짜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엔 도저히 참고 있을 수 없어 아브라함을 크게 부르시더니 아들을 죽이지 말라고 소리치신 하나님 아버지였습니다. 그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을 버리실 땐 결코 뒤를 돌이키지 않은 채 방울방울 흘리는 피가 다 나올 때까지 묵묵히 뒤돌아 서 계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뒤돌아 서 계시던 몸을 돌이켜 아들을 죽이신 것을 후회하셨다면 우리는 지금 어찌 되었을까요? 어떻게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모들은 아무리 힘이 들다가도 중보 기도할 때 이 하나님을 바라보면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사모들에게 중보기도의 특권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모들은 아무리 힘이 들고 지치다가도 또 다시 일어 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위에는 아직도 주님이 흘리신 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음성이 들릴 때면 사모들이 어떤 상태에 있을지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상처도 어떤 억울함도 주님의 피묻으신 손이 한번 터치되면 곧 나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모들의 기도는 고귀한 것입니다. 자기의 실수로 애타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실수와 허물을 끌어안고 애타하는 목소리를 어찌 하나님이 모른 척 하시겠습니까? 매주일 성도들을 바라볼 때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지내다가 지친 모습 그대로 나올 때 사모는 그들의 얼굴에서 영적 기상도를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 내내 죄의 더미에서 묻어온 영적 더러운 먼지들을 성도들은 교회에다 마구 쏟아 놓고 갑니다. 입으로 또는 몸으로 사모에게 마구 던지고 사라집니다. 목사들이 받다가 너무 악취가 나서 쓰러질 때면 사모가 대신 담당해야 합니다. 때로는 목사도 사모에게 쏟아놓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모든 악취를 모두 받아가진 사모도 지칩니다. 오히려 목사보다 먼저 쓰러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은 목회자 자녀들에게 그 악취가 전염되는 것입니다. 목사 자녀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당하는 것입니다. 먼 훗날 사춘기시절을 지나면서 붉어져 나오는 자녀들의 문제를 수습하느라 사모들은 또 울어야 합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토요일에는 특별한 날로 정해서 삼가 엎드려 기도로 안전장치를 준비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엡6장에서 소개하는 영적 갑옷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남편이 설교준비를 하는 동안 사모들은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다른 어느 것에다 기도의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의 무장입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기도 가운데 심방하며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호시탐탐 노리는 마귀의 작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1-17). “마귀들이 무서워하는 사모의 기도 소리는 온 교회의 더러운 공기를 청소할 수 있습니다.” ▲이메일:hwangsun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