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영안교회)
할렐루야!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 속에 ‘약속’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제일 중요한 일을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속을 잘 어기는 사람하고는 거리를 많이 둡니다. 약속은 인격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서로의 신뢰가 있어야 하고,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약속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대가 존재합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신용 좋은 사람이고. 사회나 국가의 신용등급도 바로 약속에 대한 신뢰도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적 신뢰도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후진국과 선진국의 평가를 받게 됩니다. 지금 북한을 전 세계가 염려하는 것은, 중요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제관계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약속의 언약을 믿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이란 말이, 하나님의 약속이란 뜻입니다.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은 인간과 약속을 맺을 때, 짐승을 죽여서 제물을 삼고 그 피로 약속을 맺었습니다. 약속은 곧 생명이란 뜻입니다.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 약속입니다. 오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 고생할 때,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본국 유대 땅으로 돌려보내 주시면 마음껏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약속을 믿고 포로에서 해방 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해방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예배는 형식이 되었고, 제사장들까지도 또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데 병든 것, 눈먼 것, 다리 비틀어진 것을 가지고 와서 제물이라고 드릴 때,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불러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가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시장에서 팔아 보라, 사가는 사람이 있겠는가?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기뻐하겠는가? (말 1:10) 그런 제물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느냐, 진노하시면서 ‘누군가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말 1:10) 이렇게 백성들이 신앙이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말씀입니다. 타락한 백성들에게 고난을 주셨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공격을 받아 식민지가 되게 하셨고, 재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또한, 극심한 가뭄과 병충해 등 흉악한 재난들이 일어나 찢어진 그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였습니다. 예배드리는 것도 게을리했고, 십일조 드리는 것도 형식에 빠졌습니다.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며 방탕에 빠져 신앙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 고통의 이유는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축복의 약속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황충(메뚜기)을 금하고, 포도밭에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지켜 주시리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 시대의 사건만은 아닙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교훈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하는 비결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적어도 물질의 어려움은 없이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런 축복의 가장 기초가 바로 온전한 '십일조'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부끄러운 간증입니다. 한국에서 신학을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하던 초창기였습니다. 아는 권사님이 개척교회서 헌금설교나 십일조를 말하면 성도들이 부담스러워서 오지 않으니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명언인 줄 알고 설교할 때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은혜만 받으라" 고 몇 달을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새벽에 말라기를 강해하는데 성령께서 제 마음속에 강하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너는 사람이나 모으려는 삯 군 목자가 되려느냐? 왜 성경대로 가르치지 않고 성도들의 축복 문을 가로막느냐는 감동이 왔습니다. 그 새벽에 집엘 들어가지 않고 울면서 아침까지 기도하다가 그날 주일예배 때, 새벽에 성령이 주신 깨달음을 그대로 고백하면서 이제부터는 오직 성경대로만 전하겠노라고 고백했던 일이 있습니다. 신앙은 타협하면 안 됩니다. 피가 모자란다고 물을 섞으면 응고가 돼서 죽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대로만 살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천국까지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십일조’ 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말 3:8) 십일조 드리지 않는 것을 도둑질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회에서도 도둑질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감옥에 갑니다. 감옥이 사람들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둑에게 큰 복을 주겠습니까? 도둑놈을 어떻게 귀하게 쓰시겠습니까?
오래전에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헌금기도를 하는데 도둑이 헌금을 가지고 도망을 쳤답니다. 그 날 교회를 처음 나온 초신자가 눈을 뜨고 있다가 도망가는 도둑을 보고 다리를 걸어 넘어트리고,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도둑은 잡혔습니다. 장로님들이 경찰서로 넘기겠다고 하는데, 목사님이 그냥 놓아주시라고 했답니다. 어찌 그 사람만 도둑이겠어요?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도둑놈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날에 온 성도들이 회개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형식상 적당히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내 것을 도둑질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떼어먹었다.’고 하지 않고 내 것을 도적질했다고 했습니까? 물질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내 시간의 주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내 사업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내 자녀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내 생명의 주인이 누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청지기란 소유권자가 아니고 관리자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에 손을 대면 안 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 소유로 생각하고 손을 댔습니다. 그래서 도적질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에 정직해야 다른 것도 정직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십일조 생활을 가장 잘하는 민족이 그래도 유대인들이랍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가면 은행과 증권사들이 몰려 있는데. 그곳을 유대인들이 거의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계 다이아몬드의 90%를 가지고 있답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물질의 부를 가지게 되었는가? 라는 책을 보면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십일조를 잘 드리는 민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후손이 잘되고, 형통케 하시는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이란 말은 모든 것 또는 흠이 없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내 것을 적당히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구제를 하거나 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흠이 없이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레위기 27:30에도 ‘십일조는 여호와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성물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고,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십일조는 예수님도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눅 11:42). 십일조는 왕도 드렸고, 레위인도 드렸고, 선지자도 드렸고, 선민들도 드렸습니다. 십일조는 누구나 드려야 합니다. 올바른 신앙에는 세 가지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십계명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10가지 계명을 주시고, 그 계명을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십자가 정신입니다. 모세보다 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십일조 정신입니다. 우리는 내 것, 열중에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십일조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게 있는 열 개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 정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약속입니다. 하늘 문을 열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은혜의 문도 열리고 축복의 문도 열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게 주시는가, 아닌가?. 시험해 보라는 말씀은 오직 이곳에 한번 나옵니다. 황충의 피해를 받지 않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11절) 황충은 메뚜기를 말합니다. 근동지역에는 메뚜기 떼가 휩쓸고 지나가면, 거의 곡식이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저주로 생각했습니다. 황충은 도적이요, 강도요, 질병이요, 재앙이요, 천재지변을 말합니다. 해마다 농촌에는 AI 조류 전염병으로 오리 닭이 수백만 마리씩 살 처분을 당해 땅에 쓸어 묻고 있습니다. 코로나 전염병이 발생해서 3년간 비상이 걸렸었습니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전염병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셔야 합니다. 억지로 안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황충의 재앙을 막아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11절). 수고했으나 열매 수확하기도 전에, 기한 전에 태풍이나 병충해로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막아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신앙으로 살기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가던 청교도들이, 마지막에 사랑하는 자식이 병들고, 굶어 죽어 가는데도 종자 씨를 먹이지는 않았습니다. 날고기를 잡아먹으면서도 종자 씨를 없애지 않았습니다. 종자 씨는 대륙에 가서, 씨를 뿌려야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종자 씨와 같습니다. 이것만큼은 소중히 구별하고 지켜야 내일이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워주기 위해서 이런 설교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은 믿음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도 됩니다. 그러나 직분을 받고서 십일조를 못 드리신 분들은 십일조를 온전하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약속을 맺을 때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 재물로 그 피로 약속을 맺었습니다. 십일조는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지 않으리라. 축복의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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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