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
오늘 읽은 마태복음 8:5~13절은 한 백부장의 겸허하고 신실한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 지역을 방문하셨을 때, 로마군대를 지휘하는 어느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에 걸려 괴로워하니 그를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 백부장의 집을 방문해 하인을 낫게 해주겠다고 하시니 백부장은 예수님의 방문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자신이 군대를 지휘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그저 ‘말씀 한 마디만으로’ 하인의 병을 고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크게 감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그를 칭찬하시며 그의 하인의 병을 낫게 해주셨다는 내용입니다. 동일한 말씀이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누가복음 7:1~10에서도 실려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 앞에 나아온 ‘백부장’은 고대로마 군제에서 100명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교로 당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지방에 주둔했던 군인입니다. 지난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주둔하던 일본군들이 그랬듯이, 대부분의 로마군 장교들은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로 피지배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함부로 살상하며 억압, 착취하는 데 앞장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백부장은 특이하게도 유대인인 예수님 앞에, 그것도 로마당국에 의해 사상과 행동이 불순한 정치범 의혹을 받고 있는 한 젊은 랍비에게 다가와 도움을 청합니다. 아마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아 ‘이 사람이라면 나의 소원을 이뤄줄 수 있겠다’란 생각에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누가복음 7장에서는 백부장 본인 대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하인의 병을 고쳐주실 것을 요청했다고 나오는데, 장로들은 백부장이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까지 지어 주었다며 이 사람의 부탁은 꼭 들어주어야 한다고 간청한 것으로 보아 비록 백부장이 점령군 장교지만 식민지인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한,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백부장의 하인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입니다. 그는 자기 가족, 자신의 피붙이가 아닌, 집에서 부리는 종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종이나 노예는 개인 재산, 사적인 소유물로서 사람이 아닌, 가축보다 더 못한 대우를 받았는데, 이 백부장이 예수님께 찾아와 죽어가는 종을 살려달라고 간청한 것은 참으로 특이한 경우입니다. 더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로마군을 지휘하는 현역 장교로서 로마에 대항한다는 정치범, 반역자 취급을 당하고 있는 예수님을 만나 겸허한 자세로 도움을 청한 것은 웬만한 용기, 담대함이 아니고서는 감히 하기 어려운 행동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 친지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구하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겠지요? 예수님도 말씀하셨듯이, 그러한 행위는 믿지 않는 사람, 이방인들도 다 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방인보다 나으려면 그들이 감히 하지 못하는 의로운 행위를 하고 세상의 보편 상식을 뛰어넘는 믿음을 보이라고 항상 말씀하셨는데, 이 백부장은 이방인의 차원을 넘어 이스라엘 입장에서 원수의 나라 로마제국의 군인인데도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훨씬 훌륭한 믿음의 행위를 하였으니 예수님이 감탄하시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백부장은 더욱 위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예수님을 다시 한번 감동시킵니다. 백부장의 집을 방문해 하인을 고쳐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이 너무 황송해 감당할 수 없겠다며, 군대 상관이 자신에게, 또 본인이 휘하 병사들에게 이리 와라. 명하면 이리 오고 저리 가라 하면 가는 것처럼 예수님도 단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종에게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그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지극히 겸손하고도 강한 확신에 찬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최대한 예우하며 그분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같으면 “내가 이토록 당신을 섬기고 사랑하고 존경하니 다른 집은 못 가도 우리 집에는 꼭~ 오셔야지요! 오셔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주셔야죠! 안 그러면 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래요!”라며 온갖 떼를 다 쓰며 예수님께 강하게 요구할 텐데, 이 백부장은 자신의 바램을 진솔하게 간청하면서도 그 소원을 이루는 방법과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예수님의 뜻에 맡겨드리는 성숙한 신앙을 보여줍니다.
백부장의 이런 놀라운 믿음에 예수님도 깊이 감동하셔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라고 칭찬하시며, 백부장의 믿음 대로 그 자리에서 당장 하인의 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배척했지만, 유대인의 원수 로마제국의 군인인 백부장은 예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그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었습니다. 또 11~12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자들은 비록 이방인일지언정 천국에 올라 큰 복을 받겠지만, 당신을 배척하는 자들은 아무리 유대인이라도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운명을 예언하십니다.
백부장의 경우처럼 우리 역시 마음에 절실한 바램이 있을 때 이를 하나님께 진솔하게 말씀드리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기도할 때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우리의 원하는 바를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아뢰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인정하고 나 자신의 인간적인 욕구보다는 그분의 뜻과 섭리를 겸손히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거나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아 응답이 늦을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내가 드리는 기도에 속히 응답해주시지 않을 때 "이거 안 해주시면 나 죽습니다. 꼭 이루어주시옵소서~~"와 같은 조급하고 소아병적이며 집착형의 믿음보다는 모든 것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여 참고 기다릴 줄 아는 폭넓고 관대하며 여유로운 신앙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로 큰 고통을 받아왔고 생활에 불편한 것이 참 많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장애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거나 불편함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평생을 장애 속에 몸부림치며 고통과 불편함이 더욱 가중되더라도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감사하고 기뻐하며 부족하나마 저의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드려 왔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으로서 저의 연약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간구했습니다. 지금껏 50년 넘게 살면서 힘들고 아쉽고 괴로운 일도 많았지만 저는 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모두 받았다고 믿고 있으며 하나님은 제가 올린 기도 이상으로 큰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한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기도와 같은 삶을 살고 삶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결코 기도의 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실제 삶이 따로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기도가 괴리되지 않고 일치하는 곳에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며 나를 향한 그분의 뜻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물, 콧물 다 흘리고 방언으로 왈왈거리며 간절히 기도해도 평소의 삶이 인간적인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고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그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다운 기도의 능력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올려드리는 바로 그 기도와 같은 진실되고 겸손하며 담대한 삶을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한 말씀만 하소서. 당신 종이 곧 나으리이다! 지금 이 시각 당신의 능력이 바로 여기에 나타날 줄로 내가 확실히 믿습니다!“라는 백부장의 겸손하면서도 진실된 고백이 우리 모두의 믿음의 고백이 될 수 있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superman112068@gmail.com
10.21.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