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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주신 하나님

출애굽기 20:1-17
강기봉 목사

(뉴욕백민교회 원로목사)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2-3)

 

1. 이렇게 십계명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집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주신 첫 말씀입니다. 그 언어는 히브리어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통해 주신 언약의 말씀을 따라, 70명의 가족 단위로 애굽에 내려가 400년 동안을 노예로 살다가, 다시 홍해를 건너 광야 40년 행군을 시작한 백성입니다. 인구 200만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인이라는 민족 이름에는 ‘물을, 강을 건너온 자들’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조상 아브라함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 애굽에서 나왔고, 이제 다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갈 단계입니다. 

강은 건너기 어렵고, 한번 건너오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크나큰 경계선을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 벡성은 애굽 땅을 떠나 홍해를 건넘으로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인도자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애굽에서는 바로왕이 통치했고 그들의 우상문화가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양육하시는 영역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변화는 크고 엄중하고 심오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출애굽기 19장은 십계명이 주어지는 큰 역사를 위해 준비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일을,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목적도 선명합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창 1:31) 특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을 따라 지으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사람을 참여시키기 원하십니다. 함께 영원한 영광에 이르기를 소원하십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언어에 자기의 기본적인 뜻을 담으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에는 하나님의 마음 뿌리가 내려져 있습니다. 이제 십계명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묵상하겠습니다.

 

2. 첫 부분은 1-4 계명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말합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이 네 계명이 함축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하나님 한 분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고 고백했습니다. 파란만장한 자신의 인생을 여호와 앞에서 바라보니 부족함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인간의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지식이 풍부해지면서,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풍조가 거세게 용트림을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그늘에 가리워져 왜소해 보이거나, 아예 없는 분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싹튼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인간의 지능과 문명이 발전해 갈수록 ‘역시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셨기에, 그 속에 하나님을 알아야만 채워질 수 있는 빈방을 차려놓으셨습니다.(전 3:11, 롬 1:19) 많은 사람들이, 특히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 특히 십계명과 같은 말씀을 자기를 속박하는 것으로, 자기의 자유를 짓누르는 것으로 여겨버리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거나, 제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전하고 만족스러움을 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공원을 찾습니다. 공원 중에는 울타리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반경에 차이가 나타납니다. 울타리가 없는 공원에서 아이들은 끝없이 달려가고 달려오고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입니다. 울타리가 없는 공원에서 아이들은 부모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에서 10미터 20미터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울타리가 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100미터도 더 되어 보이는 울타리까지 달려갔다 달려오기를 즐겁게 반복합니다. 몇 배의 거리입니다. 깔깔거리면서 시합을 합니다. 울타리는 아이들을 속박하는 것이 아닌, 그들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은 사람의 참 자유, 낭비없는 삶을 보장하는 보증서입니다.

 

3. 두 번째 부분은 5-10계명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는 내용입니다. 영생 얻는 길을 묻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마 19:16-22) 또,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냐 묻는 한 율법사에게, 하나님을 사랑 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6-40)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계명이 주어진지 1510여년 후를 사시면서도, 그 십계명을 축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끼리의 관계를 이해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의 가르침도 그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으로 응축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부모 공경으로 시작되는데, 세상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편하고 쉽습니다. 아이들은 하나님을 말하면 놀랍도록 쉽게 이해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 아주 감격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엄마와 아빠를 통해 보기 때문에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그 문을 부모 공경으로 여셨습니다. 부모 공경은 바로 하나님 공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듯, 부모를 그와 같이 받들고 이웃을 그 마음을 뿌리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9-50) 하십니다. 사람은 서로 간에 하나님을 가운데 모시고 함께 해야 복됩니다. 마치 노쇠해 가는 부모에게 깊히 자리잡은 소원이 ‘자식들의 우애’임과 같이, 형제가 서로 우애함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사자가 양과 함께 풀을 뜯고, 어린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는다’는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4:12-13)

선교지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헬라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꿈에 백발의 신선이 약 한 봉지를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150년을 아프지 않고 살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면서 깨어보니, 꿈에 보았던 그 약봉지가 머리맡에 놓여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아내와 나누어 먹을까 생각하다가 그러면 약효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 같아 단념했습니다. 몇몇 친구들도 생각났으나, 여전히 아까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혼자 한입에 꿀꺽했습니다. 약의 효능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100세가 넘고 120세 140이 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어려운 문제가 있는 줄은 오래 살아가면서 절박하게 겪어야만 했습니다. 외로움이었습니다. 아내도 죽고, 동년배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 외로워 젊은 층들을 힘들여 사귀다 보면 또 죽어 나갔습니다. 이렇게 옆에 함께 할 친구가 없이 몸부림을 치다가. 그는 한 가지를 배웁니다. ‘그 때 그 약 나누어 먹을 걸 그랬다’였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함께 해야 따스합니다. 춥지 않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십계명 두 번째 부분 사람과 사람 간의 계명을 지켜 살 때, 함께 우애할 수 있습니다. 서로 간 힘이 되고 의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튼튼하게 엮어 줍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동거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우리 사람에게 복입니다. 십계명은 우리에게 짐이 아닙니다. 생명의 원천이요 사랑과 영원에의 출입문입니다. 지켜 살고 따라 살기를 축원합니다. 

kangkibong@hotmail.com

10.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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