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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바라보는 두 시각”

요한복음 2:1-12
김흥철 목사

(LA 산울교회)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한참 흥이 오른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 결혼 풍습은 3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혼식을 합니다. 그리고 1년 동안 정혼 기간을 갖고 그 기간이 끝나면 신랑이 신부를 집으로 데려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릅니다. 이 때 혼인 잔치를 7일 동안 베풉니다. 유대 사회에서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은 혼주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7일 동안 잔치를 하다 보면 간혹 포도주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결과는 잔치의 흥을 깨뜨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주인은 수치를 당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법적인 소송까지 받는 것이 당시의 관습입니다. 

가나에서 벌어진 혼인 잔치에 예수님도 초대받았는데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황당한 사건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누구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를 만드는 첫 번째 표적을 행하시므로 예수님은 사람이 아닌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기적과 능력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첫 번째 표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사건이었을까요? 포도주는 혼인 잔치의 기쁨과 환희의 상징입니다. 흥이 한창 무르익어갈 즈음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절망이요 좌절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절망의 순간에 물로 극상품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잔치를 회복하고 기쁨과 환희를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이 표적은 십자가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1. 기적을 보는 마리아의 시각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그저 하나의 사건만 해결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두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마리아의 시각과 예수님의 시각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즉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해결해 주실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과 30년 사생애 기간에 보여준 신적 존재 같은 모습을 날카롭게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아들 예수가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많은 선생들 앞에서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한 그 지혜와 대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눅 2:47), 천사의 수태고지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메시지를 들었고(눅 1:35),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아기가 탄생했을 때 다시 천사들이 나타나 이 아이가 그리스도 주이심을 선포한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믿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냉정하고 차갑기만 합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4절)” 하며, 외면해 버립니다. 그리고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에 ‘처음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이것은 표적을 베푸는 이유가 바로 예수님의 때를 이루기 위함 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시각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시각 속에는 예수님을 필요와 유익의 존재로만 보았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단지 필요와 유익의 존재로만 찾지는 않는지요?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눈으로 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가 뼈만 남은 채 죽어가고 있는데 기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았다든지, 커다란 대형 버스와 충돌하여 자동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졌는데도 운전자는 기적적으로 살았다든지… 말입니다. 기적을 체험한 간증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서 자주 접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곤경과 궁핍에 처할 때 주님께 기도하며 도움을 청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체험을 하곤 합니다. 우리의 시각은 마리아처럼 여기까지입니다. 

 

2. 기적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각

 

그러나 예수님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의 사건만 바라보지 않으시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바로 이적을 행하는 예수를 쫓지 말고 신의 성품을 닮은 예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 키를 예수님의 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의 때”를 요한복음에서 일곱 번(요 2:4, 7:30, 8:20, 12:23, 12:27, 16:32, 17:1)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예수님의 때는 바로 십자가 사건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내신 처음 표적은 십자가 사건까지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데 십자가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사와 이적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때를 이루어 가기 위한 영광이었습니다. 영광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십자가라는 것입니다.(요 12:23) 찬송가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강을 건너니.. 무한 영광일세..’ 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통해 죄와 허물로 절망과 죽음에 쌓여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잔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잔치가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절망과 죽음의 잔치에서 기쁨과 환희의 잔치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처음 표적을 나타내심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보여주셨고 신성을 가지신 존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표적을 바라보는 시각도 풍요와 유익에만 그치지 말고 예수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였던 십자가의 영역으로 시각을 넓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 기적의 영역을 넓히라! 십자가로!

 

사람들은 예수님의 능력에만 관심이 있고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만 추구하지만,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관점은 다릅니다. 기사와 이적을 베푸시는 목적은 십자가 사건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왕 앞에 나아가 우리의 필요와 간구를 얼마든지 요청할 수 있는 자녀들입니다. 물 같은 우리들을 극상품 포도주로 만들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예수 안에서 극상품 포도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놀라운 기적이 아닐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과 기적에 힘입어 풍성한 삶을 누리고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역을 위해, 비전을 위해 예수님의 능력과 이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의 영역은 필요와 유익을 넘어서 십자가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의 영역까지 여러분의 사역과 사명이 확대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

Hckim600502@gmail.com

10.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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