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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젊은이들아!”

베드로전서 5장 5-6절
나성균 목사

샬롯장로교회

어려서 고등학교 시절에, '청춘예찬'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는 아직 나이 들어본 적도 없고, 늙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청춘이 정말로 그렇게 좋은 것인가? 하였지만, 지금 생각을 해 보니 정말이지 그렇게 찬양할 만한 것이 청춘임에 틀림이 없다. 누구나 청춘을 구가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동시에 바른 판단에서 최선으로 각자의 청춘을 살아야, 또한 자기의 장래가 결정되는 정말로 중요한 때이기도 하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청춘을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가? 

 

1. 겸손하라 하신다. 

 

이 말씀은 함께 장로 된 자들에게 주시던 교훈 곧 나도 같이 장로 된 자로서 너희에게 권면하는데, 하던 베드로의 겸손한 권면이다. 자원하고, 더러운 이, 곧 물질적인 이득을 위하여가 아니며, 본을 보여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하여라 하던 말씀의 대응으로서 주신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수사도요, 잘못된 교황청의 주장처럼, 교황으로서, 혹은 하루에 삼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돌아오던, 초대교회 예루살렘의 최고 담임목사인 슈퍼스타로서 한 말씀이 아니고, 누구나 하나님의 앞에선 겸허한 직분자로서 신실하게 권면하던 말씀에 대하여, 그러면, 장로가 아닌 그 외의 성도들은 어떻게 살라는 것인가? 에 대하여 주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이적으로도, 비교적 젊은이들에게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장로요,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닌 영적으로 아직 어리고 초신자인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로가 아닌 모든 교우라고 까지 해석을 할 수가 있다. 

어쨌거나, 자칫, 젊음만 믿고 자만하거나, 자신만만하든지, 혹은 교회 생활이 깊지 않기 때문에 자행자지하기 쉬운 이들에게 경계로 주신 말씀인데, 곧 겸손하라 하신다. 겸손하면 순종할 수 있다. 또, 순종하면 겸손한 것이다. 본문 첫 부분에서 말씀하시기를 장로에게 순복하라 하신다. 순종보다 조금 더 강한 말씀이다. 문제는 과연 지금 이 시대 똑똑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순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어느 필자가 최근에 육군 사관학교에서, 또 도산 아카데미에서 MZ세대에 대하여 강의를 하였다. 정보화 시대,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개인주의를 확산시킨 신자유주의에서 사는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분출 시기에 살던 MZ세대 곧 1980년대 초-2000년대  초에 태어난 젊은이들에 대하여 특징을 설명하였다. 정의, 인권, 공정, 평등에 민감하며, 합리와 과학 기술을 앞세워 사는 이 세대로부터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특히 군대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율성을 인정하면, 날고뛰지만 간섭하고 통제하면 거침없이 대드는 세대에게, 군에서 당한 어려움을 상상하여 보라. 아무리 합법적인 계급사회이고, 위계질서가 분명하며, 부하는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하기에 교육과 훈육으로 바로잡으려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들의 자율에만 맡기면 업무처리의 막강한 강점이 나타나고,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한다. 스마트 폰은 군의 보안유지에 지장이 있고, 지나친 오락은 병영 생활의 단점이기 때문에 스마트 폰을 압수하였다. 난리가 났다. 죽기 살기로 대들었다. 할 수 없이 여러 번의 대책회의를 통하여 사용허락을 한 결과 우울증과 자살률이 훨씬 줄어들었다.

더구나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알파 세대이다. 이 자들이 군에 입대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5G, AI, 빅 데이터, 로봇, 드론, 메타버스 등이 생활 도구이고 경쟁 무기이다. 과연 MZ 세대와 2010년 초반이후 태어난 이 알파 세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렇다면 이 두 세대를 통틀어, 그들에게도 오늘의 말씀이 통용되는 말씀일까? 물론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더 필요한 것이다.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시며, 그들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오늘의 청년들의 세대, 무한한 경쟁력과 함께 살고,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받고, 그리고 일처리를 따라갈 수 없는 세대에게도 여전히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자칫 기계화되고 인간미가 사라지기 쉬우며, 서로의 부딪치는 사귐이 사라질 수 있어 공허하여지고, 인간의 한계와 고독에 겨워 자살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삶의 도전 앞에서 여전히 돌아가야 할 말씀, 순복 하라, 겸손하라 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이고 삶의 방식이고, 참 행복과 기쁨과 만족이 있는 삶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자기의 능력과 인간의 위대함 앞에서 한없이 건방지고 자칫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사탄의 강한 메시지 앞에서 삶을 교만으로 날려버릴 수가 있는 세대에게 여전히 부드러움으로 책망하시고 올바로 인도하신다.

성경의 유명한 인물을 한 사람, 당시 모든 좋은 것을 거침없이 누리던 사람과 비교하여 보고자 한다. AD 50년대 60년대를 살던 한 사람 로마 황제 그는 어마어마한 궁궐에서 살면서 모든 호사는 혼자 다 누리었다. 절대로 부족한 것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복도의 길이가 1 마일이나 되었다. 상아와 자개로 장식된 이 복도를 지나는 초청자들은 이슬같이 쏟아져 나오는 향수를 맞으면서 걸어서 황제에게로 가서 그를 알현하였다. 그는 자기의 나귀나 조랑말의 신발을 은으로 신겼다. 낛시 바늘이 금이었다. 머리에 쓴 왕관은 약 40-50만 달러나 되었다. 값비싼 옷이 즐비하여 한없이 저장되어 있기에 한 번 입은 옷은 다시 입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15년이나 황제의 위치를 누리면서도 만족할 줄 모르고 다만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크리스찬들을 박해하고 하나님을 멸시하였다. 자기를 하나님같은 신으로 섬기라고 명령하였다. 이 사람이 곧 네로 황제이다. 그는 시감을 살린다고 로마를 불지른 사람이고 그 원인을 크리스천들에게 돌린 극악 무도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대적하시었는가? 행복도 만족도 없이 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자살로 인생을 끝내게 하시었다. 그런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동시대에 살던 또 한 사람 바울,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다고 무지막지하게 핍박하던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에 즉시 그가 핍박하던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자기의 교만과 야심을 버리고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고자 최선을 다하였다. 때로는 헐벗고 굶주리고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쇠사슬에 매이어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만물의 찌끼 같이 되기도 하였으나  솟아오르는 기쁨과 내세를 맞이하는 기대로 충만하였다. 아무도 가보지 못하였을 삼층천에 올라가 보았고, 그의 말과 같이 내게 유익하던 것을 배설물 처럼 여기면서, 가장 비참하게 낮아지고 또 낮아져, 낮에는 복음을 전하고 밤에는 장막을 깁고, 누구보다 겸손하게 살면서도 참고 견디고 너그럽게 마가를 용서하고 끝없이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가던 그에게 하나님은 바울의 하나님이라 부름 받으심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와 동행하시면서 시시때때로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을 해 주시었고, 가장 빛나는 인생으로 살게 하시었다. 위대한 사도요, 가장 유명한 13권의 성경 저자요, 순교자로 인생을 마감하게 하시었다. '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는 말씀의 약속대로 살게 되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2. 높여 주신다. 하신다.

 

본문 6절은 5절의 강조요, 보충이다. 많은 설명이 필요가 없다. 겸손의 원리와 결과를 말한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능하신 손 아래에서 란 말은 신약에서는 이곳에서만 발견되나 구약에서 가끔 발견이 되고 그것은 곧 출애굽의 능력을 표시한다. 그 큰 능력 앞에서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위치에서 겸손하라. 당시의 최고 통치권자요, 막강한 세력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바로를 물리치신 하나님의 능력 아래에서 겸손하라 하시니 더욱 실감이 나는 것이다. 

겸손의 결과는 무엇인가? 때가 되면, 하나님 자신이 그를 높여 주신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는 때이다. 연단이 되고 이제 높여 주실 만하고 높여 주셔도 다시 교만하여 해를 입지 않을 때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하게 생각이 되실 때 내가 홀연히 언제 벌써, 높임 받고 있는 기적을 체험하라.

지금부터 약 1 세기도 더 전에 웨일즈 지방의 가난한 과부댁에 아들이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약 5 마일을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당시의 그 지역의 거의 유일한 의사이었을 분에게 좇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었다. 의사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비가 퍼붓는 밤에 무려 5 마일을 왕진을 가야한다니 당연히 망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가난한 과부가 치료비를 낼 리도 만무하여 보였다. 또 이 어린 아이를 고쳐봤자 시골의 노동자에 불과할텐데... 그러나 고맙게도 이 의사는 인간애와 책임감으로 부인을 따라 가서 이 아이를  생명의 경각에서 구해 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놀랍게도 그 고비를 넘기고 나중에 열심을 다하여 공부하고, 훌륭하게 자라 영국의 정치계의 거물이 되었다. 재무장관, 군수장관, 국방장관을 거쳐, 제 일 차 세계대전 때는 수상으로 의사자신을 포함한 영국민을 살리는 위대한 정치가로 살게 된 데이빗 로이드 죠지이다. 그가 재무장관이 되던 날 이 의사는 "비가 퍼붓는 밤길을 5 마일이나 가서 그 시골 가난한 농가의 소년을 구한 것이 바로 영국의 대 지도자의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다. 겸손하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 영국의 수상이 된 죠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이 의사를 높여 주셨겠는가? 필자는 이 순간을 이렇게 생각하여 본다. 마찬가지로 사망의 비가 쏟아지던 죄악의 죽음을 경각간에 경험하게 된 우리를 영적인 의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왕진하여 주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예수님은 빌 2:5 이하와 같이, 자신을 낮추시고 또 낮추심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어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물속의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게 하시고 모든 무릎을 그앞에 꿇게 하시었다. 능하신 손 아래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 겸허히 세대를 뛰어넘는 말씀성취의 축복을 누리도록 하자!

revskna@icloud.com

10.0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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