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대 설교학 교수)
시대도 어려운데 개인의 삶도 힘겨운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 앞에 악행을 저지른다. 자세히 언급되지 않아도 우상숭배라는 죄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괴롭히게 하신다(1절). 이 기간은 지금껏 등장한 이방인들의 억압 중에 가장 긴 시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고통 중에도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없다.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서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이렇듯 사사시대는 뒤로 가면서 점점 암울한 영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암울한 시기에 한 가족이 등장한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2절) 이 부부는 단 지파에 속해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마노아다. 그의 부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노아의 아내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불임은 신이 내린 저주로 여겨졌다. 시대도 어려운데 이 여인이 겪고 있는 개인적 상황, 불임은 그녀에게 더욱 절망감을 주고 있다.
이런 절망의 삶을 살던 여인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여호와의 사자, 천사가 그녀에게 나타난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인이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아이는 나실인, 즉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되어 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5절)
놀란 여인은 남편에게 달려가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나 마노아는 자신의 아내가 들은 이야기를 반신반의한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주셔서 태어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가르쳐달라고 기도한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8절)
어린아이 같은 마노아
계속 살펴보겠지만 마노아는 믿음도 부족하고, 영적인 분별력도 부족한 것 같다. 방금 살펴본 마노아의 기도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나셔서 마노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9-12절)
마노아는 자신이 대화하고 있는 존재가 범상치 않음을 알고 그의 이름을 묻는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왜 자신의 이름을 묻느냐고 반문하며 자신을‘기묘자’로 소개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18절) ‘기묘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펠리’는‘ 이해를 초월한’, ‘놀라운’, ‘비밀스러운’의 뜻을 가지고 있다.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존재로 자신을 소개하신다.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여호와께 드린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면서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그 불꽃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간다.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20절)
얼마나 놀랐을까.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 마노아는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 즉 하나님을 보았으니 자신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시려면 우리의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않으셨을 것이며, 이 놀라운 광경도 보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남편을 진정시킨다.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23절) 의심 많은 남편, 상황 판단 못하는 남편, 겁 많은 남편에 비하면 마노아의 아내는 믿음이 있고,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일 후에 마노아의 아내는 어찌 되었을까. 여호와의 사자의 말대로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고 짓는다. 오늘 본문은 삼손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그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묵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연관성과 적용점을 깨닫는다.
첫째, 부르짖지 않는 것은 영적 질병에 걸린 것이다.
사사기는 일정한 순환 구도가 있다. ‘이스라엘의 범죄-이방인의 압제-이스라엘의 부르짖음-사사를 세우시고 구원하심-평화’이 그것이다. 그런데 사사기가 뒤로 갈수록 이 부르짖음이 사라진다. 삼손이 태어나기 전 이스라엘은 40년을 블레셋에게 지배받고 고통받았지만 부르짖지 않는다. 자신들이 어떤 죄를 범하는지도 모르고, 범죄에 대한 결과로 고난받는 것도 깨닫지 못한다. 회개하면 회복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갖지 않는다. 그러니 부르짖지 않는다. 분명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린 것이다.
오늘날도 동일하다. 하나님이 주신 고통인데 깨닫지 못하고, 그 고통 중에도 부르짖지 않는 것은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린 것이다.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는 지금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가. 고통 중에도 내가, 우리 가정이, 우리 공동체가 부르짖지 않고 있다면 바로 영적 질병에 걸린 이스라엘이다. 고통받으면서 시간을 허비하며 멍하게 있지 말아야 한다. 고통의 시간은 기도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다시 부르짖어야 한다. 그럴 때 고통은 의미가 되고 찬양이 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믿음과 지혜의 여인을 귀하게 사용하신다.
삼손 아버지의 이름은 마노아다. 그러나 삼손의 어머니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 모를 여인이다. 그녀는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불임이라는 인생의 고통까지 겪는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의 예언을 믿음으로 받는다. 자신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를 남편에게 소개한다. 남편이 이적을 보고 두려워 떨 때 지혜로운 말로 남편을 안심시킨다. 사사시대라는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여인들을 귀하게 쓰신다. 앞 장에서 지혜와 용기의 여인 사사 드보라를 쓰셨다. 본문에서 이름을 알 수 없으나 믿음과 지혜가 넘치는 삼손의 어머니를 쓰신다. 이 여인을 통해 삼손이 이 땅에 태어났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믿음과 지혜의 여인을 귀하게 보신다. 남편에게, 아이에게, 공동체에게 여인은 중요한 존재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런 여인들을 통해 남편과 아이들과 교회를 세운다. 여인을 빛나게 하는 많은 것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믿음과 지혜다. 우리는 딸들과 아내들과 어머니들이 믿음과 지혜로 자라고 섬기고 끝까지 신실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야 한다.
셋째. 하나님은 묻고 기도하는 자에게 기묘자로 나타나신다.
사사시대는 영적 타락의 극치의 시기였다. 시대도 암울한데 마노아의 가정은 불임이라는 고통까지 겪고 있다. 이 희망이 꺼진 마노아의 가정에 하나님이 찾아오신다. 그 찾아오시는 하나님 앞에 마노아는 정직하게 묻고 기도한다. 본문에서 마노아는 묻지 않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마노아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순박하고 어린아이와 같다. 그저 아이처럼 하나님께 묻고 기도했다. 그 때 기묘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본문의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너무 똑똑해서 그분께 묻지 않는 사람보다, 어리숙해도 정직하게 묻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주신다. 하나님 앞에 겁 없이 목을 빳빳이 드는 사람보다, 두려워서 겸손히 엎드리는 사람에게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베푸신다. 본문을 보며 깨닫는다. 하나님은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기묘자로 나타나실지 모른다. 오늘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정직하게 물으며 기도하자. 겸손히 엎드려 도와 달라고 간구하자. 그때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가정에, 공동체에 기묘자로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내 지혜와 경험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묻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분께 엎드려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때 우리 삶에 기묘자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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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