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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말하기

약 3:6
방정훈 목사

(큰기쁨교회)

대화하기 싫은 사람, 대화하고 싶은 사람  

 

  대화를 나누기에 부담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사람, 간단한 이야기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 은근히 무시하는 듯한 말투의 사람, 자신이 컨설턴트가 된 것처럼 매번 가르치려 드는 사람, 직설적이고 공격적으로 말하는 사람, 매사에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관심사만 이야기하는 사람, 흑백 논리로 따지며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 무슨 이유인지 사소한 말에도 짜증 내는 사람, 상대방의 민감한 곳을 헤아리지 못하고 센스 없이 말하는 사람, 아닌 척 자연스럽게 은근히 자랑하는 사람,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사람, 자리에 없는 사람을 험담하는 사람, 어떠한 일들을 과장되고 부풀려 말하는 사람, 상대방이 침을 삼키는 사이 치고 들어와 도중에 말을 끊는 사람, 속은 뻔한데 듣기만 하는 사람, 들으려 하지 않고 혼자만 말하는 사람 등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머와 위트가 있고, 생각이나 성향이 다르더라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기분 상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약 3:8),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사람이다(약 4:2)’라는 말씀처럼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가 자라온 가정이다. 그런데 유교적 사상을 가지고 있던 우리 본토 친척 아비 집은 보편적으로 잘 살지 못했다. 원래 ‘잘 살다 못 살다’라는 말은 물질의 유무와 관련 있는 말이 아니라, 관계성과 관련 있는 말이라 한다. 성경적으로도 잘 사는 집이란 ‘화목한 가정’을 의미한다(잠 17:1). 

일반적으로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강한 경향이 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자격지심에 시달리거나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자존심이 상할 때 나를 지켜주는 것은 건강한 자존감인데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존감이 낮다. 그러나 신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갈 2:20)이기에 우리의 자존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상속받지 못한 예쁜 말 

 

보편적으로 잘 살지 못했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에서 살 때 실수로 물을 엎지르거나, 접시를 깨뜨릴 때 우리는 엄청난 축복(?)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때에 이런 말을 우리에게 하셨으면 어땠을까? ‘Are you OK?’또한 술을 사랑하셨던 우리의 아버지들은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식의 말들은 극도로 아끼셨고, 당근보다 채찍에 가까운 언어를 많이 사용하셨으며, 좀 더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셨던 어머님들은 최상위의 율법어(?)인 ‘잔소리’를 즐겨하셨다. 뿐만 아니라, 두 분들 간에 의견 충돌이 일어날 때면 고성과 함께 험한 말들이 오고 간 기억들이 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예쁜 말을 잘 배우지 못한 경향이 있다.

인간에게는 기질(Temperament)과 성격(Character)과 인격(Personality)이 있다. 기질은 DNA에 찍힌 도장 같이 선천적이어서 바꿀 수 없다. 억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성격은 후천적이어서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인격은 어떠한 문제를 만났을 때 반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성숙을 위해 많은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성격처럼 미운 말도 후천적으로 습득된 것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노력하면 예쁜 말로 바꿀 수 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날 때

 

  성인이 되고 경제적 능력이 생기면 대부분의 경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 그러나 이는 떠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보다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이 그들의 집을 세운다.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외모를 많이 보고, 여자는 능력을 많이 본다. 그래 놓고선 성격차이 때문에 가장 많이 헤어진다. 이런 결과만을 놓고 보면 외모나 능력보다 성격이나 성품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외모가 마음에 드는 자매를 발견했다. 그 오빠는 능력이 있어 보인다. 두 사람에게는 도파민이 충만하게 솟아난다. 이 호르몬은 오랜 시간을 기다려도 지칠 줄 모르는, 아무리 먼 길을 데려다주어도 피곤이 느껴지지 않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사랑의 호르몬’이라 부른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도파민의 과학적 유효 기간이 길어야 2~3년이다. 도파민에 취해있을 당시 서로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니다. 먹거리조차도 상대에게 맞추던 철저히 헌신된 모습은 나나 그대의 본모습이 아니었다.

도파민의 효력이 사라져 피차간에 신비감이 옅어질 무렵, 남자는 말도 안 듣고 반복적으로 사고 치고 실수하고도 미안한 기색이 전혀 없다. 여자는 반복적으로 잔소리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도 잘못을 모른다. 이 무렵 자신들도 모르게 영혼 깊이 베여있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의 언어들이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본문의 말씀처럼 혀로 서로의 인생에 불을 지르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해결되지 않는 불만들은 쌓이고 쌓여, 곱지 않은 말투가 서로에게 던져진다. 그 사람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신중히 살폈어야 했는데, 그럴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았고, 상견례할 때 잠깐 본 경우가 허다하다. 

 

예쁜 말   

예쁜 말이란 어떤 말인가? 

‘인정하는 말, 칭찬하는 말, 위로와 격려의 말, 공감하는 말 그리고 격한 동의의 반응’ 등이다. 인간에게는 결핍이라는 공간이 있고, 포용이라는 공간이 있다. 수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결핍으로 말미암아 생성된다. 결핍의 공간이 채워져야 포용의 공간이 넓어진다. 미운 말은 잘 살지 못했던 본토 친척 아비 집에서 전수받지 못했던 예쁜 말에 대한 결핍일 수 있다. 희망은 없는가?

 

창조의 능력과 공간

 

말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택하신 자들의 생명을 살려내셨다. 창조 전 세상에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었다. 빛이 있으라 하신 말씀의 창조의 능력이 나타나자 혼돈 가운데 질서가 부여되었고, 공허가 충만으로 채워졌으며, 빛이 흑암을 몰아냈다.

빛이 흑암을 몰아내면서 생겨난 것이, 좀 더 정확하게는 점차 드러난 것이 ‘공간’이다. 타락 전 창조의 때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었던 공간이 사람의 영혼 가운데 주어졌다. 그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혀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서로를 축복하였다

(약 4:9).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사람이었다(약 4:2). 본향 된 하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유일한 희망, 말씀과의 만남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말씀은 빛이 되어 우리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준다. 인간은 만남을 통하여 꿈을 꾸지만, 만남을 통하여 꿈이 깨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과의 만남은, 말씀과의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꿈을 꾸게 한다.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일으키는 것도 말씀이고, 미운 말을 사용하는 혀를 제어시키시는 것도 말씀이다.

모르핀의 200배 진통 효과를 가진 것이 엔돌핀이고, 엔돌핀의 4000배 효과를 가진 것이 다이돌핀인데 이것은 감동을 받을 때 생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호흡이다. 찬양과 기도와 특별히 말씀의 감동을 주는 예배는 믿는 자들의 숨통이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감동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 질 때 우리를 죽이려 했던 모든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자유 함을 누리게 되고, 받아들일 공간도 내보낼 공간도 넉넉해진다.

 

예쁜 말을 기억하고 사용하라

 

민수기 3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앨 백성들에게 앞으로 진군하게 될 노정들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신다(민 33:2). 기록의 목적은 기억하게 함이다. 무엇을 기억하게 함인가? 그 노정의 출발점인 유월절이었다(민 33:3). 언제 어느 곳에서 진을 치든지 어린양의 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음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인정하는 말, 칭찬하는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공감하는 말, 동의의 반응 등이 예쁜 말이요, 축복의 언어임을 기억하자. 나의 힘으로는 버거 우나, 우리 옆에서 항상 돕고 계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예쁜 말을 연습하고 사용하자. 특별히 남자들이 느끼는 가장 예쁜 말은 칭찬이고, 여자들이 느끼는 가장 예쁜 말이 공감이라고 하니, 칭찬하고 공감해 주자. 화목한 가정을, 화목한 신앙 공동체를 세우자! 

dieforlogos@gmail.com

06.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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