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왜 세상에 오셨는지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성취되기를 간절히 갈망하시며 안타까워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본문 가운데 이 시대를 영적으로 책임진 우리에게 간곡히 당부하시는 실로 중차대한 사역이 부과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철저하게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울러 그 사명을 효율적으로 감당할 이상적인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거룩한 뜻을 실현해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비결을 터득하고 올바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ECHOING ministry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이 제목이 본문과 잘 어울리지 않는 생소한 말이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직책과 과제가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받은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들으면 메아리치는 목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한 원칙을 깨닫게 됨은 물론 신앙생활의 본질을 이해하여 과거보다 더욱 열심히 봉사하며 복음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쪼록 오늘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존귀한 뜻을 온전히 성취하여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한 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불을 땅에 던지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마땅히 불을 질러야 합니다. 나아가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불이 잘 타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받아야 할 세례가 있으셨습니다. 또한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답답함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바를 깊이 이해하고 예수님의 가슴에 응어리진 통증과 답답함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불을 지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받으셔야 할 세례 즉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수님께서 그토록 가슴 아파하며 답답해하셨던 그 통증을 깊이 느끼는 체험이 따라야 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체득해야 할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의 일차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고 명하셨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할 줄을 모르고 또 자신에게 부여된 십자가 지기를 싫어하면 아예 예수님을 따를 자격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은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에게 불이 붙어서 가슴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불이 붙어야 비로소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양을 치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회상하며 노후를 노래했습니다(시 90:1-17). 그런 가운데 가시나무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고 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불꽃 가운데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출 3:2). 그 불꽃이 모세의 가슴에 옮겨 붙어서 드디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물을 다 태웠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을 섬기는 850명의 선지자들을 모두 기손 시내에서 쳐 죽이는 쾌거를 올렸습니다(왕상 18:19-40).
예수님의 분부를 따라 120 문도가 성령을 대망하며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불꽃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행 2:3). 그리하여 각 사람의 가슴에 성령의 뜨거운 불이 붙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불들이 임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속에 항상 불똥이 살아 있어야만 합니다.
셋째, 이제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다 불을 질러야 합니다.
나에게 불똥이 살아 있어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불을 옮겨 붙일 수가 있습니다. 만일 불똥이 없으면 불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세가 지은 회막 안에 불똥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항상 불씨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불똥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금으로 만들었습니다(출 25:38; 37:23).
불씨는 아주 작지만 일단 주변에 옮겨 붙기 시작하면 많은 것을 태울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5)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불씨가 항상 살아 있어야 합니다. 등에 기름이 있어도 만일 심지에 불을 붙이지 않으면 등불이 환하게 빛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같은 원리에 의해 만일 등에 기름이 없다면 심지에 불을 붙여도 도저히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심지만 타들어가면서 아주 고약한 냄새만 풍기게 됩니다.
그리하여 등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성냥(a match)이 있어야 하고 등에 기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등을 준비했으나 그 등 안에 기름을 넣지 않은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허둥지둥 기름을 넣고 뒤늦게 달려왔으나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마 15:1-12).
오늘의 본문은 우리 각 사람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매우 중요한 시대적인 사명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가 이 말씀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혹은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단 이 본문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어서 성도들이 머리만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믿음이 좋고 신앙인격이 훌륭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성이 살아 있고 활력이 넘치는 행동하는 신앙과 거리가 멀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원리와 원칙에 너무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도 그렇고 성경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깊이 연구하여 자세히 풀어 가르치면 물론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들도 은혜를 많이 받았다며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면 목회자 역시 성도들의 그런 반응을 보고 잘 가르쳤다고 흐뭇하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은혜를 끼칠까 하고 관심을 기울입니다.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깊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원리와 원칙을 계속 강조함으로써 은혜를 끼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은혜의 말씀들이 머릿속에 지식으로만 잔뜩 쌓여간다는데 문제의 본질이 내재해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가슴이 뜨거워져도 자기 혼자서만 만족하는데 그치고 마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진리의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말씀대로 행하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신앙화에 이어 반드시 신앙의 생활화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성경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13-17,26)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과 복음의 진수를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도록 강력하게 촉구하여 행동하는 신앙으로 탈바꿈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동사적인 측면으로 목회의 패러다임(paradigm)을 확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곧 ECHOING Ministry입니다.
실천을 위해서는 당연히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훈련받는 것을 귀찮게 여깁니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굳이 부대끼기 싫어서 쉽게 양보하고 맙니다. 이것은 사명을 어기고 직무를 유기하는 큰 실책입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원리와 원칙을 가르치는 명사적인 목회 방식을 탈피하고 실천을 강력히 촉구하는 메아리치는 동사적인 목회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목회자 자신이 메아리치는 목회의 당위성을 깨닫고 특별한 각오로 그 원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메아리치는 신앙생활이 왜 시급하게 요구되며, 얼마나 중요한 지를 폭넓게 교육해야 합니다. 모두가 충분이 이해한 다음에 다 같이 함께 참여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성취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며 안타까워하신 예수님의 뜻을 따라 복음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도록 할 것입니다. 복음의 불꽃이 뜨겁게 타오르는 오순절 성령의 특별한 은사가 모든 교회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울러 많은 열매로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sbmusa@hanmail.net
05.21.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