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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는 교회”

에베소서 1장 1-14절
김창섭 목사

(세계선교교회)

에베소서에는 교회 공동체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편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베소서를 통하여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왜 필요한지,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등등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서를 함께 묵상한다는 것은 곧 우리 교회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방향을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 방향은 교회의 원래 모습,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교회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며, 그 모습이 이 에베소서 속에 들어있습니다. 교회를 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칭하는지, 교회는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 교회가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을 에베소서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바울사도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보내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고, 받는 사람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단지 바울이라고 짧게 소개하고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이라고 길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가 3년 넘게 자신들을 목양했던 바울사도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사도 바울이 사도라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곧 바울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 곧 하나님이 나를 사도로 세우셨다고 선포합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것도 꿈속에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본 것도 모두 다 하나님이 나를 사도로 세우신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세우셨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며 달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을 불러 세우신 하나님이 우리도 불러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명 한 명 콕콕 찍어서 ‘교회’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내 힘으로 내 선택으로 교회를 가는 것 같지만 이 과정을 이끌어 오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바울사도는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내 힘으로 세 번에 걸친 전도여행을 다녔고 내 목소리로 소리 높여 복음을 전하고 내 육신을 상하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달려갔지만 그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라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묶인 존재, 그리스도 예수의 지배를 받는 존재, 그래서 내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는 곧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자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 매이기를 바란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께 매이기를 원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내 욕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고, 내 계획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내 이름 앞에 ‘그리스도 예수의’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에베소서를 받는 사람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에베소라는 도시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입니다. 여기서 성도라고 하면 거룩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룩한 삶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룹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주소가, 우리의 physical address가 ‘그리스도 예수’ 라고 말입니다. 

이어서 2절에서 바울사도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고 축복합니다. 이 축복은 당시 편지를 쓸 때에 주로 사용하던 인사말이지만 같은 인사를 하더라도 이 에베소서의 ‘은혜와 평강’은 약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후의 말씀들이 바로 이 은혜와 평강과 관련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면 우리의 삶에 은혜와 평강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으면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을 다 가진 셈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 세상 그 무엇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평강을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물론 이 평강은 나만 평강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는 평강을 누리고 있지만 내 옆의 사람이 나로 인하여 평강이 깨졌다면 진짜 평강이 아닙니다. 그래서 평강은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는 평강이어야 합니다. 

이제 바울사도는 3절부터 14절까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를 창세전부터 예정하신 성부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대신 값을 치루신, 곧 속량하신 성자 예수님을 찬양하고, 우리를 천국에까지 이르도록 우리를 인치시는 성령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바울사도는 에베소서의 서두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에베소서를 기록하고 있는 바울사도는 로마 가택연금으로 갇혀있는 상황입니다. 육체적으로 매여 있는 몸입니다. 유대교의 촉망받던 리더, 최고의 학식을 가진 엘리트였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해보면 찬송이 아니라 한숨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도 바울사도는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에베소서를 받고 있는 에베소교회도 이렇게 찬송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주신 이유가 바로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황과 조건과 상관없이 느끼는 감정과 상관없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찬송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절망에서 우리를 구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찬송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찬송은 내 입술로, 내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고백을 말합니다. 그러니 박자 음정 잘 못 맞추더라도 하나님을 높이는 내 중심의 고백이 진실하다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찬양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여서 예배드릴 때뿐만 아니라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찬송소리가 끊이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구하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찬송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올려드리는 찬송 위에 주께서 하늘의 은혜와 평강으로 임하시리라 믿습니다.

08.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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