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역사와 전통의 중요성

창세기 46장 1-7절

우리는 8.15 광복절을 제 76회차로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광복 이후 지금까지처럼 격변기를 지나오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발전을 거듭하는 때가 없었다. 한때 최고의 기적적인 경제와 정치 발전을 거듭하였다고 세계의 찬사를 받아왔으나 그것은 교회의 발전 때문이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었다. 

우리의 현재를 돌아 볼 때마다 우리는 굉장한 자부심과 함께 또한 부끄러움도 느낀다. 우리가 이 순간 느끼는 아쉬움도 있다면 이것을 바꾸어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받고, 더욱 빛나는 전통을 세워나가도록 하자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야곱에게서 이 모습을 본받으면 어떨까? 

 

1. 예배하는 전통

 

식량을 구하려고 애굽에 아들들을 두 번 보내었던 야곱은 모든 시련과 역경, 걱정 근심을 깨끗이 씻고 꿈에도 그리던 아들 요셉을 만나러 요셉의 요청대로 온 가족이 가나안 살림을 총 정리하여 애굽으로 가게 되었다. 헤브론에서 출발하여 남서쪽으로 45km를 내려와서 가나안을 벗어나는 마지막 브엘세바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아브라함의 명명으로 새롭게 탄생하였고, 바로 그곳에서 야곱의 조부도 부친도 다 같이 영적생활에 승리한 곳이기도 하였다. 어려운 이웃 그랄왕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제단을 쌓고 교제하였던 곳이다. 이삭도 어려운 나그네 생활 중에 이웃의 우물 침탈을 마침내 온유로 끝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장래를 보장하여주시던 잊지 못하는 곳이요, 예배하던 곳이다. 

반면에 야곱은 어떤가? 너무 흥분하였던 나머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도 전에 애굽행을 실천부터 하여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가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여쭙게 되었다. 비록 늦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 전에는 실천할 수 없다는 태도가 훌륭하다. 

1절의 “희생을 드리니” 곧 제단을 쌓았다는 말씀은 곧 예배를 드렸다는 말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를 인도하시고 일생을 책임져주신 신실하신 하나님 그리고 약속을 이루셔서 마침내 온 백성으로 복되게 하시겠다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조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갈대아 우르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오게 하신 반면 아브라함이 흉년이 들었다고 마음대로 애굽에 내려갔다가 큰 낭패를 당하였고(창12:10-20) 이삭의 경우 또 흉년이 들어 세계의 곡창지대 애굽으로 내려가다가(창26:2) 하나님의 금지로 내려가지 못하였던 애굽으로 가려니 당연히 하나님의 재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늦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만 아니고 직접 여쭙고 확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도 예배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두렵지만 하나님께 여쭙고 그분의 인정을 받고 응답을 받고 떠나겠다는 자세, 그것이 야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사랑받게 된 원인이다. 

우리가 너무 흥분이 되면 얼른 내 생각대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늦게라도 “아니지 이것이 아니지!”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분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인생을 전진시키는 것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가 않다. 예배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가장 최선의 삶을 살 수가 있고 앞길의 진정한 인도를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온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이렇게 힘든 펜데믹을 지나면서도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고 한 번도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정말이지 가장 중요한 교회전통이라 하여도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다. 예배 중에 기도하는 전통, 찬양하는 전통, 교제하는 전통, 하나님의 뜻을 심각하게 여쭙는 전통을 수호하고, 어떠한 환난과 역경 중에도 비록 비대면이라 할지라도, 온라인이라 할지라도 쉬지 않는 예배생활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배가 살면 인생이 살고 교회가 살고 앞길이 활짝 열리지만 예배가 죽으면 우리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빛나는 영적 전통으로 이어온 야곱이 누린 축복이다. 그 전통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에서와 달랐고, 이스마엘과도 달랐던 것이요, 이 같은 놀라운 축복이 바로 우리의 역사요, 전통이다.

 

2. 새로운 전통으로

 

비록 늦었으나 또 어느 정도 하나님의 섭리적인 판단이 선다 할지라도 직접 응답 받기 전에는 애굽으로 내려갈 수가 없다는 야곱의 자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넘치게 응답하시었다. 애굽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명령이 떨어졌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것뿐만이 아니다. 거기서 크게 번창할 것이다. 큰 민족을 이루리라. 창세기 15장 13,14절에서 주신 말씀대로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또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 자신도 시신이 가나안에 묻힘으로, 또 온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다시 오게 하심으로 약속을 이루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또 하나, 요셉이 네 눈을 감기리라. 만나기만 하여도, 그의 고백과 같이 “죽어도 여한이 없을텐데”(46:30), 그의 품 안에서 운명할 것을 예언하여 주시었으니 얼마나 얼마나 자비하신 하나님이신가? 우리의 필요를 넘치게 채워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대로만 하면 언제나 넘치게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최선을 드리고 있는가? 

모든 핑계를 뒤로 한 채, 무엇으로도 어떠한 것도 우리의 예배를 대신할 것은 없다는 신앙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의 전통을 이어나가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하겠고, 야곱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응답을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넉넉하게 얻도록 하자. 더구나 구약의 신약적인 실천, 어린 아이들과 여인들을 태운 수레들(바로가 보낸)... 얼마나 주님 안에서의 새 생활이 멋이 있는가? 

더 큰 비전으로 애굽을 가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이요, 오히려 그곳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민족, 큰 민족이 되게 하시는 반드시 내려가야 하는 곳으로 가며, 그곳에서 위대한 선민 된 민족으로 크게 성장하여 마침내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게 하시겠다니... 과연 우리도 이와 같이 예배할 만하고, 기도할 만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꼭 받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순간까지 바로 이 자리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왔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게 지금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오직 이 시대의 선민의식으로 전진하여 보자. 야곱을 따라 그 위대한 인류 구원의 더 큰 비전, 새로운 비전의 복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이 시대의 선민으로서 할 일이 많다.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아니 반드시 영적 이스라엘로 사명감을 가진다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말세에 너무 안일하여진 이들을 부지런히 깨우고, 새롭게 사명자로 살아가려면 뒷걸음질 치는 이 위대한 대한민국과 미국을 다시 살리는 일은 한도 없이 많다. 

예배, 기도, 전도의 전통을 반드시 다시 살려야 하고, 세계의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한 민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적은 숫자의 애굽행, 그야말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의 욥기 8장 7절 말씀대로 더 큰 비전이 불과 같이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이루어드리자. 누군가 소수라도 이 시대에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여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바로 광복절을 맞이하게 된다. 일제의 침탈이 이루어지기 조금 전에1907년에 있었던 평양 대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단결된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삼일운동을 일으키고, 그 후의 일제 잔혹한 시련과 핍박을 견디었으며, 순교의 피로 하나님 사랑을 증명한 민족, 동족상잔으로 잿더미가 된 건물 잔해를 붙들고 울부짖어 기도하고 신실한 말씀으로 기도로 후손들을 길러내신 신앙의 조상들의 영적 유산을 이어받아 오늘까지 나아오게 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광복절 예배와 함께 우리에게 기대하시고 부탁하시는 대로 기도와 전도로 예배의 훌륭한 전통으로 다시 한 번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그리고 동행의 축복 속에서 오늘도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이 시대를 복음으로 반드시 새롭게 하여 나가기를 원하신다. 

역사와 전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야곱 같은 응답으로 이 시대를 새롭게 할 사람은 누구인가?

revskna@gmail.com

08.14.2021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