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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아이들

누가복음 18장 15-17절
이지용 목사

(뉴욕겟세마네교회)

푸르른 녹음이 있는 만물이 생동하는 5월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5월 2일 어린이주일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 가정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선물이라는 말은 거저 주셨다는 뜻입니다. 

가정에는 자녀가 있습니다. 자녀를 낳으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 기쁨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저도 뉴욕에서 세 자녀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요. 그 기쁨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가정은 갈수록 더 기쁨이 넘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갈수록 더 은혜로운 관계로 성숙해져 가야 합니다. ‘손 안에 자식’이라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녀가 서서히 부모의 손을 벗어나서 부모의 품을 떠나고, 부모의 권위를 떠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들의 접근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예수님께 올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더 중요한 사역, 즉 어른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치유해야 하는 일들에 비해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태도는 당시에 큰 이슈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5절). 왜냐하면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인식,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숫자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1.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예수님의 아이들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선물은 소중한 것이고, 값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자녀로 인한 기쁨, 이만한 기쁨은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태어나서 3살 때까지 부모에게 일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린 자녀는 부모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할 때 기쁨이 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삶의 보람과 의미이고 목적입니다.

자녀를 사랑함에 있어서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목적 성취를 위해 자녀를 이용하거나 귀찮은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가까이 있는 부모들은 오히려 이런 잘못된 사랑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더 기억해야 한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잘못된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랑(self-center-ed love)입니다. 내 가문이나 명예 따위를 앞세웁니다. "내가 못 다한 소원을 네가 이루어라! 내가 못 다한 욕망을 네가 성취하여야 한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을 이렇게 괴롭힙니다. 고스란히 희생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못살겠다고 합니다. 공연히 낳아가지고 이 고생을 시킨다고 불평합니다. 누구를 위한 희생이냐, 누구를 위한 공부냐고 묻습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많은 가정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랑인줄 알고 있는 그 사랑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모릅니다. 

전혀 자녀사랑이 아닙니다. 이는 형태를 달리한 자기사랑일 뿐입니다. 자녀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나 천부적인 재능은 염두에 두지도 않은 무모함이요 무책임입니다. 모름지기 우리는 그리스도인 된 사랑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온전히 당신의 생명으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입니다. 이기적 본성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역사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를 가르치면서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이기적 동기를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자녀들과 어긋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숨은 이기적 본성이 자녀를 양육하는 그 방향과 동기, 의욕을 굴절시킨다는 점입니다. 순간마다 우리의 언어와 생각, 가르침에 그런 동기가 작용함으로 어린자녀의 마음에 부작용과 상처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하나님의 선물로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가장 바람직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되 내 소유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다보면 자녀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 이런 기쁨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진 은혜입니다. 

 

2. 부모는 자녀를 잘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셔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직장도 사명이고, 학업도 사명입니다. 이웃을 돌보는 것도 사명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명은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7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자녀는 바로 부모의 손에 의해서 가장 바르게 자라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적어도 자녀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서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자녀가 태어날 때 부모는 자녀에게 가장 권위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약한 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약점을 봅니다. 결국 부모의 권위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부모가 이 권위를 내려놓거나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는 끝까지 자녀에게 본이 되는 존재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세 가지 질문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네게 준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느냐?” 둘째는 “네게 준 돈을 어떻게 썼느냐?” 셋째는 “네게 준 자녀를 어떻게 가르쳤느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부모가 가르침에 있어서 세 가지를 잠언서 23장 16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잠언서를 보면서 부모가 자녀 교육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때를 알려주십니다.

 

첫째, 자녀가 거짓말했을 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16절)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말의 반대말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이란 두 가지 뜻을 가진 것으로, “섞었다”란 뜻으로 음식물이 부패하거나 섞었다고 할 때에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부패된 음식물을 먹게 되면, 구토를 일으키게 되듯 거짓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파울”(Foul)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구에서 타자가 친 공이 정해진 선 밖으로 빗나갔을 때 파울이라고 부릅니다. 거짓말이란 “빗나간 말”입니다. 거짓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빗나가게 만들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저는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4) 말씀이 오래 동안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양보하고, 겸손한 것을 보았습니까? 자기 밖에 모르며, 부모 머리꼭대기에 앉아서 잘난 척하고, 영악스럽기까지 한 아이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을까?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역대 왕을 평가하는 기준이 정직이었습니다. 주로 이런 식이었습니다. (왕상15:11)“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왕상15:5)“이는 다윗이 헷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일 외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정직했고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총리와 장관으로 삼은 것은 거짓이 통용되는 곳에까지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자녀가 불신앙의 길로 갈 때에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17절).

성경에 자녀가 불신앙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 그냥 내버려두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생생하게 소개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 제사장의 경우입니다. 엘리에게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장차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해야할 자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그들이 잘못을 바르게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로챌 뿐 아니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을 했습니다. (삼상2:14)“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2:12)“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불량자가 누구입니까? 예배를 무시하는 자가 곧 불량자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의 태도는 방관했으며, 아주 미온적이었습니다. (삼3:13)“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아들의 잘못을 훈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삼상3:34)“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매를 드는 기회를 놓칠 때 훗날 자식은 부모에게 큰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잠29:15)“자식을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부모가 나이 들어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이 노인네가 무슨 잔소리냐”며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믿음이 좋고, 경건하다고 반드시 그 자녀가 믿음 좋은 자녀가 되는 것도 아니며, 부모가 믿음이 없어도 그 자녀들이 얼마든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를 내버려둘 때 그 혼란은 막대합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의 두 아들을 내버려두었을 때 불량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셋째로, 나쁜 친구가 있는 것을 알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20절). 

성경도 이 말씀에 뜻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잠27:17)“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유유상종”이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다는 말로 나쁜 친구를 가까이 하면 결국 우리의 자녀도 나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사에 잘 알려진 어거스틴이 3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방탕생활을 한 것은 나쁜 친구를 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버린 후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고전15: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현 시대에 우리 자녀들의 주변환경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자녀들의 정신과 마음을 해치는 독극물들이 깔려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행동과 태도를 수시로 점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 자녀들이 거짓말하는 것을 보고도 그냥 모른 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불신앙의 길로, 세상의 길로 빠져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쁜 친구를 사귀고 있는 것을 알면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어쨌든 가르치는 사명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끝까지 인생의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도 영적으로 계속해서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녀를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 이런 섬김, 이런 가르침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복의 통로이며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11면으로 계속>

<4면에서 계속>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자녀를 향해 부모가 가진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자녀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감격스런 일입니까?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복의 통로, 유통자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주신 최고의 복의 통로이며 상속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실 때 그 대신 그 자녀에게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복은 아브라함이 받은 것도 있지만 상당한 복은 그 후손이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많이 볼 수 가 있습니다. 복의 흐름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쌓아놓은 복은 우리의 자녀들이 받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릴 은혜입니다. 자녀에게 축복하는 것이 부모의 특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을 내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충분히 축복하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자녀를 축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는 자신들의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바쁜 가정살림 때문에 자녀를 축복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부모의 욕심, 이기심 때문입니다.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내 마음이 복잡합니다. 여기저기서 상처를 받고 답답한 가슴이 채 회복되지 않은 채 사정없이 자녀들에게 감정을 폭발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이제 상처 주는 자리와 분노하던 곳에서 축복의 자리로 바뀌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최고의 선물의 아이들 사랑하고, 바르게 가르치고, 그리고 한 없이 축복하여 하나님께 올려 드리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nygo4tgc@yahoo.com

05.0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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