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온유의 승리

민수기 12장 1-16절
주원열 목사

로드아일랜드중앙한인교회
보스턴대신대원 Th.D

민수기 11장은 ‘원망’이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민수기 12장은 ‘비방’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말이었습니다. 야고보서 3장에 보면 혀는 작은 지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고 말씀합니다(약3:5-6). 그래서 입에 재갈을 물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약3:3).

침묵수행을 하는 수도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젊은이가 그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일년에 한 번 생일날에만 말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것도 수도원장 앞에서 딱 두 마디만 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숙고해서 말해야 하겠지요. 드디어 젊은 수도사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사무실에 가서 지정석에 앉았습니다. 수도원장이 묻습니다. “앤드류, 우리 수도원에 들어온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 오늘 자네의 생일이니 두 단어를 말할 수 있는데, 할 말이 있는가?” 앤드류 수도사는 “bad food”라고 대답했습니다. “알겠네” 수도원장은 앤드류의 말을 파일에 적어서 보관하였습니다. 일년이 지나서 앤드류는 다시 수도원장 방의 지정석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bed hard”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 말을 파일에 적어서 보관하였습니다. 세 번째 생일을 맞아서 수도원장 방에 왔을 때에 앤드류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work boring”이라고 내뱉었습니다. “이제 끝이네” 수도원장은 소리쳤습니다. “자네는 이제 수도원을 떠나기를 바라네.” 앤드류는 금언의 서약을 깨면서 물었습니다. “왜입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왜냐고? 이유가 너무 명백하지 않은가? 자네는 지난 3년 동안 불평밖에 한 것이 없네.”

여러분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여러분의 인생을 두 글자로 말하라고 하면 무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고생, 불행, 후회, 허사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감사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민수기 12장 1절에 보면 모세가 비방을 받은 표면상의 이유는 여자문제였습니다. 모세가 구스(에티오피아) 여자를 취하니까, 모세의 형제인 아론과 미리암이 비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형제들이 모세를 비방한 근본 동기는 시기(envy)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 모세의 여자문제는 일종의 명분이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근본원인은 시기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도 말씀하시므로 모세는 우리보다 잘난 것이 없다; 모세가 하는 행동을 보라, 우리보다 못하다; 그런데 왜 나이도 어린 동생이 우리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느냐?’ 

오스카 와일드가 쓴 ‘시기의 악마성’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성자가 되기 위해서 리비아 사막을 걸어가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마귀의 졸개들이 이 수도사를 시험하였습니다. 먼저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혹하여 보았습니다. 이 수도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금덩이를 보여주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갖가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이 수도사는 당당히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한 졸개들이 좌절하고 있을 때에 왕마귀가 나타났습니다. 왕마귀가 말하기를 ‘한심한 놈들, 내가 하는 것을 보아라’ 하고 나섰습니다. 노련한 왕마귀는 수도사의 귀에 딱 한 마디 말을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수도사가 얼굴빛이 변하더니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수도사의 길을 막는 일에 성공한 것입니다. 궁금한 졸개들이 와서 묻습니다. 도대체 무어라고 하셨기에 저 수도사가 성자가 되는 길을 포기하였습니까? 왕마귀가 대답합니다. ‘뭐 별 것 아니고, 네 동생이 알렉산드리아 대주교가 되었다고 말해 주었지’ 그 한 마디에 그는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의 리더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기심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0절에 보면 미리암은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미리암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리암은 여장부였습니다. 미리암은 출애굽 후에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온 이스라엘 여인들의 축제를 리드하였습니다. 

아론은 이스라엘에 한 명 밖에 없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회중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고, 모세보다 말도 더 잘하였습니다. 모세가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여 출애굽의 리더가 될 수 없다고 사양하자(출4:10),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너의 대변인으로 세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출15:14-16).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가 뭐 그리 대단하냐, 그도 별 수 없다, 우리보다 잘난 것이 무엇이냐고 비방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비방에 대하여 모세가 무어라고 대꾸를 하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방을 묵묵히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에 대하여 하나님이 직접 책망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우리와 다를 것이 무어냐는 말에 대해서는, 모세와 너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또 그는 여호와의 형상을 본다”(8절). 또한 모세는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7절). 그런데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8절).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진노하시고, 미리암에게는 문둥병을 내리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은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분노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통제하고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임하시는 종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은 하나님이 직접 벌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심판 받고 정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겠다고 예수님 앞에 몰려온 군중들에게 주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8:7).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군중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어른으로부터 젊은이까지 모두 정죄의 돌을 놓고 물러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죄인이요, 무익한 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현 상황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성화를 위하여 맞춤형으로 설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성화를 위하여 만드신 환경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환경이 더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들의 환경은 나의 성화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환경에 만족하고 감사함으로써 시기심에서 비롯되는 불평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29). 하나님과 동등된 신분을 버리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는 것 자체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잘 나타내 줍니다. 더욱이 자기를 더욱 낮추시어 죽기까지 아버지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진정한 겸손과 온유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순간에도, 자신을 모독하고 우롱하며 비웃는 무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는 무리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때에 우리는 무엇이 참으로 온유한 것인가를 마음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유한 자가 승리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상식으로 보면 온유한 사람은 손해만 보아야 합니다. 망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뢰하며 참고 기다리는 온유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는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온유한 자가 사람의 마음을 얻습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그것이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전도를 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당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라는 고백을 듣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영적인 땅을 차지합니다. 복음으로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온유한 자들이 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취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wychu2000@yahoo.com

11.07.2020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