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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 말라”

민수기 14장 1-10절
이대우 목사

(필라한빛교회)

사람들은 누구나 크던 작든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특별한 것에 대해 남다른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벌레만 보면 질겁을 합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도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두려움과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염려나 근심정도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두려움을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대부분 큰 위기나 두려움의 순간에 초연히 담대히 대처했던 사람들입니다. 두려움에 포로가 되어있을 때 사람들은 평상시 같으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땅에 있는 살쾡이가 나무 위에 있는 다람쥐를 사냥하는 비법이 있습니다. 땅에서 나무 위에 있는 다람쥐를 발견한 살쾡이는 순간 매서운 눈초리로 다람쥐의 눈을 응시합니다. 그러면 다람쥐는 스스로 두려움의 파장을 내며 안절부절 못하다가 그만 땅 아래 살쾡이 발 앞에 뚝 떨어져 먹이가 되고 맙니다. 피할 길은 얼마 듣지 있는 데도 말입니다. 

우리도 두려움에 포로가 될 때 마귀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인류역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했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정신, 오뚝이 정신으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야합니다. 미국 초창기에 청교도 102명이 보스턴 지역에 정착했지만 1년 후 50%가 사망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비결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바란 광야 가데스에 진을 쳤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에서 한명씩 뽑아 12명의 정탐꾼을 보내 40일 동안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축복의 땅 가나안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 보고하는 장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가나안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 땅의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만 아니라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 있어서 올라가서 능히 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낙자손들은 신장이 남자가 평균 3m, 여자가 2.75m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나큰 절망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껏 모세를 통해서 약속해주신 축복의 땅만을 바라보고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땅을 눈앞에 두었지만 얻기에는 너무나 난공불락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부족했던 것은 시력과 산술이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었습니다. 적과 싸울 때 적을 너무 과소평가해서 얕보고 교만하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나 너무 과대평가하여 위축되고 약화되어 겁을 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약속과 보장 속에 일을 해오다가 해결하기 힘든 난관에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또는 사업을 하다가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할 때도 있습니다. 가정문제, 경제문제, 직장문제, 건강문제 등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코로나19로 인해서 어려움 가운데 빠졌던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솔직히 누구든지 제대로 서있기 힘든 어려움을 느끼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를 쳐도 어린아이들은 평안합니다. 야외 나온 아이들에게 마스크를 꼭 해야 한다고 하니까 ‘답답하고 숨막혀요’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완전히 절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너무 쉽게 절망합니다. 포기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몇 가지 특징에 더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자신은 작게 보이고 오히려 자신이 직면한 문제만 크게 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그들의 성읍과 거민의 덩치를 보고 자신들을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원망합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진 환경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원망한다고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하나님까지 원망하고 있습니다. 원망은 불신을 낳고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약5:19, 레19:18, 빌2:14) 이러한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회피하려 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도망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합니다.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애굽이 어떤 곳입니까? 압제와 서러움의 장소요. 종 되었던 자리가 아닙니까? 싸움도 하기 전에 이미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목적의식이 흔들렸습니다. 내 힘을 의지한다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중들은 난관에 봉착할 때 두려워하며 당황하였고 낙심하고 실망하였습니다.

마쓰다는 세계적인 일본기업입니다. 일본 최고의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한 학생이 이 마쓰다 회사의 입사시험에 응모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수치심과 분노에 괴로워하던 그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그에게 전보가 한 장 날아왔습니다. 입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는데 전산처리에 문제가 생겨 누락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 청년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회사 인사부 책임자까지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그 기업의 총수 마쓰다 고노스케씨의 반응은 전혀 엉뚱했습니다. “이 학생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가 이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좌절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봐서 그 학생의 정신적 자질은 매우 형편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이 학생이 우리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 올랐을 때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좌절하게 되면 그는 충동적이고 비극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크며 그로 인해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이나 계획들을 이루지 못했을 때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모세와 아론은 엎드려 기도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하지 않고 침착하고 담대하였습니다.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렸습니다. 실망하지 아니하고 소망 중에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 또한 달랐습니다. “우리가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 자신들을 메뚜기에 비유할 만큼 신장이 장대한 거민들에 대해 말하길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똑같은 상황입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처럼 다르게 했을까요? 두려움에 떠는 그 때에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고 도리에 담대하게 적극적인 생각과 자세를 가지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날 하나님의 성도된 우리가 세상 속에서 만나는 숱한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적극적인 생각과 자세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을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두려워 말라, 이제껏 너희가 보지 않았느냐 10가지 이적 속에 자연을 다스리시고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원하게 해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보호해주신 하나님, 반석에서 생수를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게 하시며 너희의 필요를 채워주셨던 그 하나님. 그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진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거대한 대적을 만났지만 난공불락의 성들을 대했지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대적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 함께 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바라보시며 나아가십시다. 오늘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지키시고 보호하실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시는 그분의 팔을 붙드십시오. 

시편기자는 노래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23:4).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이사야 41:10절에 약속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명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와 같은 많은 약속이 있음에도 왜 우리가 절망하고 낙심합니까?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바로 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인은 세상을 이깁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셨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온 회중이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멸시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힘든 일속에서 어려운 일 속에서 두려운 일들 속에서 혹시 하나님을 멸시하고 계시지는 않고 계십니까?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때가 곧 하나님이 나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바라보시는 때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그 믿음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을 가지고 서는 자, 그 믿음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시련은 믿음을 연단합니다(벧전1:17). 가나안의 축복을 소유한 자가 누구였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두려움으로 갈팡질팡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다 죽어갔지만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그들의 믿음대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직 믿음이 사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두려움을 믿음으로 쫓아버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환경이나 대적자를 볼 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버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도리어 환란 앞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해지셔서 두려움을 몰아내고 늘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leedaewoo19126@gmail.com

05.0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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