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연합감리교회)
올 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성지 학습 여행을 하면서 골로새를 방문했었습니다. 골로새가 가까워오자 가이드가 물었습니다. 골로새에 가면 뭐가 있을까요? 우리는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가이드가 골로새에 가면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작은 도시를 지나 시골로 차가 들어섰습니다. 좀 가더니 차가 길 옆에 멈추어 섰습니다. 거기가 말로만 들어왔던 그 유명한 골로새였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에베소나 빌립보 고린도에 가면 2천년전의 유적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유적지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바울은 대부분 큰 도시들을 방문하면서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골로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뒤로는 토러스 산맥이 딱 버티고 서 있습니다. 5월이었는데도 산꼭대기에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아래 구릉 지대에 골로새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시아 7교회 가운데 하나인 라오디게아교회를 잘 압니다. 골로새는 바로 그 라오디게아교회 옆에 있습니다. 골로새는 그곳에서 차로 10분, 15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꽤 큰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거대한 유적지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과 골로새 교인이 만나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빌립보 교인들은 자랑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바울이 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울 목사님이 초대 목사님이셨습니다. 바울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세우고 떠나신 다음에도 여러 번 오셨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번 바울 목사님을 위해 헌금을 모아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인들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도 아니고 바울을 본 적도 없고 큰 교회도 아니었고 도시에 있는 교회도 아니었으니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교회들에 비해 가장 늦게 세워졌으니 교회 역사도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교회가 바로 골로새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작은 교회를 신실하게 잘 섬기던 골로새 교인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신앙의 유산이 있습니다. 골로새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골로새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신이었느냐 하는 의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짜 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가 닥치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에바브라 목사님이 로마에 있는 바울을 찾아갔습니다. 얼마나 먼 길이었는지 모릅니다. 산 넘고 물 건너는 정도가 아니고 바다를 두 개씩이나 건너야 했습니다. 가고 오는데 적어도 6개월은 걸렸을 겁니다. 당시에 여행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비용도 꽤 들어갔을 겁니다. 그러나 에바브라는 교회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그 먼 길을 가서 바울을 만납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편지를 받아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때 바울이 두기고 편에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골로새서입니다.
바울은 두기고에게 골로새로 돌아갈 때 서신 하나를 더 써주고는 가는 길에 에베소에 들려서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는 다른 서신들과 같이 교회 안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김에 하나 더 써서 보낸 것이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상당히 유사한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에베소서는 골로새서 때문에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골로새서보다는 에베소서가 더 친숙합니다. 에베소서가 신학적으로 더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유도 있겠지만, 에베소서가 골로새서보다 앞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를 읽고 골로새서를 읽게 되면 골로새서가 에베소서의 복사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골로새서가 먼저 쓰여 지고 이어서 에베소서를 쓴 것입니다. 골로새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가장 큰 신앙의 유산을 바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입니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거의 다 써가자 옆에 있던 마가가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누가도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를 쓸 때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의 옥중생활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마가와 누가도 바울과 같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들은 후에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이루었습니다. 마가가 쓴 마가복음과 누가가 쓴 누가복음도 성경이 되었습니다. 한 초라한 전셋집에 모여서 같이 살던 바울과 마가 누가가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했다고 하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누가나 마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일대기를 자료를 모아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이 복음서가 되었습니다. 복음서를 쓰기에 제일 적격자가 있다고 한다면 베드로일 텐데, 복음서를 쓴 사람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아니라 바울의 동역자이며 제자였던 마가와 누가였습니다.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마가와 누가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들이 쓴 복음서를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이방인 선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방인 구원을 위해 목숨 걸고 바울과 함께 10년 넘게 생사고락을 같이 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동역자가 아니라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 이들이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어느 교회 입당 예배 시에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보내온 축하 메시지 동영상을 틀어주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자부심이 생겼을까요? 그러나 골로새교회는 13개의 서신을 쓴 사도 바울과 마가복음을 쓴 마가와 누가복음을 쓴 누가가 안부를 보내온 교회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 사람이 한 교회에 모두 안부를 전해온 교회는 골로새교회밖에 없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이름 없는 교회였습니다. 목사님도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미자립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도 다른 두 교회를 같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건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는 교인들을 모든 교회 위에 지극히 높여 영광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작다고 작은 교회가 아닙니다. 큰 교회만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 다니는 교인들은 자기들은 서울대학교 다니고 작은 교회 다니는 교인들은 지방대학 다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교회 다닌다고 믿음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큰 교회는 크게 보고 작은 교회는 작게 봅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교회를 보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보시지 않을 겁니다. 큰 교회 섬기는 목회자들보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작은 교회를 섬기는 분들을 더 인정하고 존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를 신실하게 섬기는 목회자나 교인들이야말로 훨씬 더 존중을 받아 마땅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골로새교회 바로 옆에 라오디게아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부자 교회였습니다. 교인들이 다 잘 살았습니다. 교회 건물도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라오디게아교회에 예수님이 뜨겁든지 차든지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토해내리라고 하는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히에라폴리스, 지금의 파묵칼레에서 흘러내린 온천물이 3-4킬로미터 흘러오면서 식어서 라오디게아를 지날 때쯤 되면 미지근하게 식어버리고 맙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신앙이 그 물처럼 그렇게 뜨뜻미지근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너희는 부자라고 착각하는데 실상은 가난한 자로다. 또 눈에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역에는 염료 산업이 발달해서 물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안질병 때문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부자들이었기 때문에 좋은 안약들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눈에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영의 눈이 어두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에 주신 누구나 다 잘 아는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이 말씀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전도용 성경 구절이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 교인들은 교회에 모여서 예배드리는데, 예수님은 교회 밖에 계십니다. 교회 안에 못 들어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그 교회에 안 계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교회, 예수님이 떠나신 교회, 라오디게아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교회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왜 예수님은 바로 옆에 있는 골로새교회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보내주시지도 않고 라오디게아 교회에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나요? 라오디게아교회는 더 사랑하시고 골로새교회는 작고 초라한 교회라서 예수님도 관심이 없는 교회라서? 아닙니다. 라오디게아교회에 메시지를 보내신 것은 그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책망하고 경고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골로새교회는 딱히 책망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보낼 메시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잘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골로새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당신들이 얼마나 믿음 생활을 잘 하며, 서로 성도들끼리 사랑하고, 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신들로 인하여 기도할 때마다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모든 신령한 지혜를 당신들에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여러분에게 쏟아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선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교회는 잘 알고 골로새교회는 잘 모르는데, 어느 교회가 훨씬 좋은 교회였습니까? 골로새교회입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교회... 이름 없는 교회... 골로새교회가 그런 교회였지만 유명하고 큰 교회였던 라오디게아교회보다 훨씬 좋은 교회였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좋은 목사님이 있었고 라오디게아교회는 골로새교회보다 못한 목사님이 있어서 골로새교회는 좋은 교회가 되고 라오디게아교회는 안 좋은 교회가 된 것이 아닙니다. 같은 목사님이 목회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교회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고린도교회와 빌립보교회를 비교해보세요. 둘 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빌립보교회는 얼마나 좋은 교회인지 모릅니다. 반면 고린도교회는 얼마나 문제가 많았습니까?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교인들입니다. 교인에 따라 교회가 달라집니다. 교인들 하기에 따라서 골로새교회와 같이 좋은 교회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라오디게아교회와 같은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 말은 교인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 돌을 던지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교회를 탓할 것이 아닙니다. 그런 교회를 만든 것이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이런 것은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굴 탓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누구가 아니라, 목사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여러분들이, 교인들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기에 따라서 빌립보나 골로새 같은 교회가 될 수도 있고, 라오디게아나 사데 교회 같은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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