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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드리고 믿음을 지키고

브리서 11장 4절, 디모데후서 4장 7절
박태규 목사

(뉴욕새힘장로교회)

믿음이란? 어떤 증거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오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즉 믿음은 우리 주변이나 우리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 느낌이 어떻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그가 말씀하신 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가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기"(히11:6)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물로서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믿음은 믿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키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많은 선한 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만 드러나는 특성들이며 세상의 다른 모든 믿음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람은 먹어야 하고 배설해야 합니다. 숨을 쉬고 내쉬어야 합니다. 눈을 뜨는 시간이 있으면 눈을 감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말입니다. 동전은 양면이 있습니다. 하나면서 서로 다릅니다.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습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영적인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믿음으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약2: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 믿음 속에는 그 사람의 태도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이름은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 올바른 예배자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가인이란 이름은 ‘얻다’는 뜻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예배의 자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아벨의 이름은 ‘허무하다’, ‘텅 빈’, ‘티끌’ 등의 뜻이다. 예배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티끌 같은 존재, 텅 빈 존재구나. 내가 허무덩어리구나. 그래서 내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이런 것들을 예배 때마다 확인하는 것이 참된 예배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벨은 이와 같은 예배자의 자세, 신앙인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예배에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을 믿음의 열조들 중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그가 비록 허무하게 죽었으나 오히려 믿음으로써 말을 한다고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과 비교할 때 아무 것도 갖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벨은 지금도 믿음으로써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11:4)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는 말씀은 그 예물에 담긴 아벨의 믿음을 하나님이 친히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린 아벨의 제물이 그의 믿음을 증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학자들은 헌금을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헌금행위를 ‘생명을 바꾸는 사건’(exchanging life)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드린 제물은 아벨의 믿음을 증거하고, 가인이 드린 제물은 가인의 믿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아벨이 드린 제물은 그의 믿음을 증거하였으나 가인이 드린 제물은 그의 믿음을 증거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두 사람이 드렸던 예배 생활의 방법은 태도에서부터 달랐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진실과 형식 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열매가 들어나는 것입니다. 아벨은 “더 나은 제사” 더 잘 드리려는 자세, 태도가 그의 신앙생활의 결정한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더 나은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벨이 드린 제물이 증거 하는 그의 믿음 어떤 것이었는가? 

 

2. ‘첫’ 것을 드리는 믿음을 간직했던 것입니다.

 

4절 말씀에 이것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4). 여기서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은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3)는 것과 비교가 되는 표현입니다. 가인은 단순히 땅의 소산으로 드렸는데, 아벨은 여러 양 중에서 단순히 한 마리가 아니라 첫 새끼로 드렸습니다. 이는 아벨과 가인의 헌신의 차이. 나아가서 믿음의 차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첫 것’은 우선순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그에게서 우선순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첫 번째인 것을 고백한 것이다. 가인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마음이다. 

이것이 후일에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3:9)는 명령으로 기록됐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첫째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선순위를 요청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곧 우선순위 문제입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좋은 믿음, 훌륭한 믿음이란 하나님이 내 삶에서 항상 일등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믿음의 삶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일등으로 모실 수가 있고, 모든 일에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제물을 통해 드러난 아벨의 믿음이고, 아벨은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열납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3. 내 삶에서 주님이 일등이 되고 있는가? 

 

주님이 내 삶의 중심이 되고 있는가? 항상 확인해야할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두로 지방에 계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며 거절하였습니다. 자존심이 충분히 상할 수도 있었지만 여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주인의 부스러기라도 먹게 해달라고 다시 한 번 간청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믿음이 큰 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큰 믿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포기하지 않는 큰 믿음으로 주님께 이러한 칭찬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장22절에 보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을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잠깐 만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것은 하나님과 일치된 삶이요, 나 자신에 의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삶은 하나님께 바쳐진 삶과 같습니다. 그는 365살에 하늘로 들림 받았습니다. 에녹의 365년 동행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존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말씀만 의지하여 모험을 감행했던 아브라함은 여러 가지 시험을 극복해 나갑니다. 시험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시험인 이삭을 바치는 사건입니다. 낳을 수 없는 아들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와서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라함 자신에게 잔혹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보다 더 잔혹한 것은 그 뜻을 받아 들여야 하는 이삭 자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이 죽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명령이 이삭에게 직접 전달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혹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했거나 착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못 들은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에게 순복합니다. 일차적으로 아버지에게 자신을 다 바치는 것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내놓기로 결정합니다. 

이삭의 믿음이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아버지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바쳐졌던 모리아 산은 훗날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지는 성전 터가 됩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제물을 바치는 곳이 제단이요 성전입니다. 날마다 예배 드려지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 성전에 날마다 나와 예배드리는 것은 자신을 바치는 믿음의 고백을 날마다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의 전부를 맡기는 것이요, 순종은 나의 전부를 주님이 쓰시도록 내어 드리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전부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증거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린 사람만 하나님의 전부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소유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일부냐 전부냐를 보시는 것입니다. 

 

06.0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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