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겟세마네교회)
로마서는 로마에 거주하는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기록한 편지입니다. 로마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첫 오순절에 그 절기를 지키기 위해 로마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후 로마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교회들을 세운 것으로 봅니다.
즉 로마의 교회는 어떤 특정 사도나 전도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기보다는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많은 도시들처럼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새롭게 등장한 기독교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유대인 회당은 기존의 신도들을 많이 잃게 되어 유대인과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큰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었으며, 이것이 끊임없는 분란과 폭동의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염두에 두었던 청중들도 당연히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혼합된 청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교회의 주 구성원들은 역시 이방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는 당연히 이방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은 이런 로마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로마서를 크게 두 분분으로 나누어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반부 1-11장은 주로 신학적인 문제로 교리적인 면을 다루었습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교리편입니다. 후반부는 12-16장은 실제적인 신앙생활 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나무로 비유하면 전반부는 교리로 뿌리에 해당하고 후반부는 나무줄기나 가지인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12장 1절의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1장에서 11장까지의 모든 말씀의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들아”라는 이 말씀은 말씀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바울의 간절한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또한 2절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말씀에서 애절한 소원을 가지고 로마교회 성도를 변화 받기를 간절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의지하여 “변화를 받는 삶”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변화 받은 삶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몸을 죄악의 도구로 불의의 병기로 사탄 앞에 내어놓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변화 받은 삶을 살기 위해선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우리에게 이러한 경고를 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 하노니 너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여기에서 “드리라”는 말은 본래 구약시대 제사장이 제물을 “드린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룩하다는 말은 단순히 깨끗하다는 뜻보다 어떤 목적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이 구별되었다고 고백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의 몸은 사용되고 있는지요? 식사할 때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건강으로 모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내 몸과 시간과 나의 모든 것을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내 입술이 내 손과 내 발걸음이 내 심장이 내 호흡이 내 전 존재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먹고 마시고 있으십니까? 이것이 바로 자신을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본문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제단위에 드릴 때 각을 떴습니다. 죽은 제물과 피 흘리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도 살아 있는 제물로 우리의 존재, 우리의 생애 전체를 주님 앞에 바칠 수 있는지요? 오늘도 매 시간,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언행심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 자신의 의지로서 결단만으로 이러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구원이 내 힘과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모든 사랑과 은혜를 의지해서 거룩한 몸으로 우리의 전 존재와 삶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예배 다음에 따라와야 할 진정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는 축도와 함께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려야 할 진정한 예배는 오히려 축도와 함께 시작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예배를 드린 후 우리의 삶의 전 영역 속에서 어떻게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도구로 쓰이기 위해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친 모든 행위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얼마나 쓰임 받고 있습니까?
2.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변화 받는 삶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본 받지 않고 세상을 극복하는 비결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즉 우리 몸을 드려야 합니다. 몸을 지배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도구로 사용되려면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2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여기에서 본받지 말라와 변화를 받으라는 두 의미가 대조를 이룹니다. 영어단어로 본받지 말라고 할 때는 conform을 사용하고 변화를 받으라는 단어는 “transform”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시편 1편 1절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말씀 중에 세 가지 동사가 나오는데 첫째는 악인의 꾀를 좇아서 걷지 아니하며 walk 걷다. 둘째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stand” 서다. 셋째는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즉 sit” 앉다 라는 세 개의 단어입니다.
사람이 걷다보면 서게 되고 서다보면 주저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악인의 길에 서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원칙에 분명히 어긋날 경우 비록 내가 지불해야 할 희생과 대가가 있을 지라도 이런 것들을 향해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인 마음과 성결한 삶을 사는 친구들을 많이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만나기만 하면 신앙의 자극을 받게 되는 분들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매일 좋은 찬양 즉 영감이 가득한 찬양 헨델의 클래식 음악이나 아름다운 복음 찬송들을 들어보면 주님이 주시는 능력을 회복하게 됩니다. 좋은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기도하는 이 변화의 조건을 형성하기만 하면 분명히 우리의 삶은 변화 받을 것입니다.
3. 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가 변화 받는 삶입니다.
본문 2절을 다시 한번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의 삶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의지가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초점을 맞추도록 하십시오. 마음이 새로워지는 열쇠는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바꾸어지려면 의지의 변화가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의 딜레마는 우리의 의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로마서 7장 19절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 도다”라고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 중 가장 위대한 기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에 드린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만이 선하시고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그 분의 뜻대로 살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매일 기도하면서 많은 것을 주님께 아뢰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기도 후에 꼭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 선하신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주께서 함께 하시면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는 강하고 담대하며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믿음이 여러분의 심령에 깊숙이 자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은 이 세상에 기여하면서도 세상을 따라 속박되지 않는 삶입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것 같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변화 받는 삶”이라는 말씀을 전하면서 자신도 도전을 받고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악합니다. 더욱 더 갈수록 악합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삶을 통해 승리하는 삶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다시 한번 간구하면서 축원을 드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이하를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세상에서 승리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몸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고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로 바꾸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변화 받은 삶을 살아가려면 거룩한 산 제물로 내 자신을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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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