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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된 기도응답

(사무엘하 12장 15-23절)
강준수 목사

라스베가스 안디옥교회 담임목사

초등학교 3학년 어린 학생이 교회부흥회를 참석했다가 설교말씀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자기도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회 마지막 날 어떤 소원이든지 3년만 새벽기도회에 나와 기도해도 다 이뤄진다는 강사 목사님 설교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3년 동안을 매일같이 날짜를 계산하며 새벽기도회에 나와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3년이 지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는데 그 학생은 학교를 졸업한다는 사실보다 3년을 간절히 새벽마다 기도했으니 그 기도응답으로 목사가 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더 뛰었습니다. 

졸업식 날 그 목사님이 학생의 아버지와 함께 꽃다발을 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꽃다발을 안겨주더니 기도를 하시는데 이 학생이 아무리 들어보아도 목사안수를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새벽기도회에 나와 간절히 기도했는데 오늘 목사가 되는 것 아니냐고 학생은 목사님께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웃으시면서 "아! 네가 목사님이 되게 해주시라! 고 기도했지? 맞아! 그런데 네 기도는 지금 하늘나라에 다 저축해 놓았다. 나중에 더 좋은 응답을 주실거다!" 하며 거절된 기도응답을 설명하셨습니다. 어린 학생은 얼마나 낙심이 되는지 속으로 펑펑 울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초등학교 갓 졸업한 어린 학생이 목사가 된다면 얼마나 우스운 목사가 되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3년간의 새벽기도 후에 거절된 기도응답으로 낙심했지만 나중에 때가 되어 이루어주신 더 좋은 기도응답에 감사한 것입니다. 그 어린 학생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저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다윗은 참으로 믿음이 좋은 분이었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더니 그 여인을 데려다가 임신을 시키고 또 그 죄를 숨기기 위해 간교한 술수를 부리고 그 여인의 남편인 우리아라는 장군을 적군의 손에 전사당하게 해서 간음죄와 살인죄 중범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의 죄악을 지적하시면서, 그 여인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그 아이가 죽게 될 것을 경고하셨다. 그리고 경고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아이를 치심으로 그 아이는 중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하나님께 금식하며 골방에 들어가 밤마다 아이를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건만 아이는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에게 이제 아이가 죽은 사실을 알려야겠는데 얼른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충격이 클까? 하는 염려 때문에 왕에게 바로 아뢰지를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다윗은 직감적으로 아이가 죽은 것을 눈치 챘습니다.  

“아이가 죽었느냐?” 신하들은 대답합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러하옵니다.” 그런데 다윗은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땅바닥에서 일어나 목욕재개하고 예복을 갖춰 입더니 성전에 들어가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왕궁으로 돌아와 일주일을 계속하던 금식을 중지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이 행동이 신하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왕이시여! 아이가 살았을 때는 금식하며 통곡하시더니 이제 아이가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음식을 드시니 어찜이니이까?” 다윗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울었던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지금은 이미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며 울겠느냐?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나중에 죽어 저에게로 가겠지만, 저는 결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할 것이라”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이 고백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온전히 순종하는 절대적인 다윗의 신앙을 봅니다. 다윗이 일주일간을 금식하며 땅에 엎드려 철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윗은 이미 나단 선지자로부터 그 아이가 정녕 죽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사 그 아이를 살려주실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간곡하게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내 당신의 뜻을 돌이키지 않으셨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일편단심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겨왔는데, 한번쯤 봐 주실 수도 있으련만 어찌 그리 대하시는가, 너무 하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있으면 내가 죄가 있지, 아무런 죄 없는 그 어린 아이를 치실 이유는 없지 않는가?" 그런 불평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마디 불평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하여서는 내가 기도한 응답이 아니더라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순종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신앙이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온전히 따르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응답이 아니면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주십사”고 기도하면서도 막상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스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오늘 우리에게 더 좋은 신앙의 본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NO!라는 단호하게 거절하신 응답에 대해서 흔쾌한 마음으로 YES! 하는 믿음, 그런 믿음이 바로 성숙한 믿음인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뭘 달라고 막 조르다가도 엄마가 한 번 “안 돼”하면, 금방 칭얼대던 그 태도를 바꾸어 “알았어요, 엄마” 하고 명랑한 얼굴을 한다면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하나님과 자녀들의 관계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안 된다고 NO 하시자 그렇게 금식하며 눈물로 조르다가도 다윗은 깨끗이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내가 죽은 아이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그랬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생사화복이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걸 믿고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하고 사랑스런 고백이겠습니까?  

미국의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라는 분이 “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라는 글을 썼습니다.

영국의 조지 5세는 “하나님! 저로 하여금 엎질러진 우유에 대하여 울지 않도록 이끌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엎질러진 우유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든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NO! 라고 하시면, 그것도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NO하고 내 기도를 거절하시는데도 불구하고 내 뜻만 고집하는 사람은 그 거절되는 기도응답에 스스로 낙심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 전체에 흐르는 가장 두드러진 사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사상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예정과 선택의 교리가 바로 이 하나님의 주권사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5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정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장 11절에도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주권은 기도 응답을 하시는데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기도하지만 그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우리가 뜻한 바대로, 믿음으로 구하고 간절히 구하고, 그렇지만 그 모든 기도의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기도했다가 거절의 응답을 받은 신앙의 선배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구했지만 응답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거절된 기도응답이 곧 하나님의 뜻이요 더 좋은 응답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어느 것이 우리를 위해 최선임을 정확하게 아시는 하나님,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라도 다 헤아리시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거절된 기도응답으로 인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거절된 기도는 더 좋은 응답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거절되는 기도응답도 응답입니다. 우리의 선한 의도와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더 좋은 기도응답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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