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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

신명기 1장 19-33절

이경종 목사 (필라델피아교회)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구원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들이 지난 온 40년의 여정을 돌아보며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고하며 앞으로 가나안에서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하는 모세의 설교입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앞서 행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함께 생각하며 세 가지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광야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모세는 지난날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그곳을 정탐하기 위하여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대표를 뽑아 12명을 보냈는데, 모두가 공통적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민수기 13장의 표현대로라면, “그 땅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고 땅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26절에 ‘그러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Fact 즉 현실로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신1:27)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못하면 부정적인 생각, 절망적인 말만 합니다. 원망 불평만 늘어놓게 됩니다. 본문 23절과 똑 같은 상황을 민수기 13:32절에서는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한 10명은 이미 생각만으로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되는데, 33절에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불신앙의 결과는 열등감과 좌절감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너는 메뚜기 같다’ 라고 하면 오히려 화를 내야 할 판인데, 저들은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좌절하며 절망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지 못하면 낙심과 절망만 남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똑 같이 그 땅의 상황을 보고 왔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언약을 붙잡으면 심령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왜일까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죽을 만큼 매를 맞고 추위와 배고픔과 고통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언약을 붙잡았을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된 우리를 언약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으로 이기는 한 가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잊지 말고 말씀을 붙잡음으로 현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말씀의 눈으로 바라보는 신앙의 공동체 되기를 바랍니다.

2. 광야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31절에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모세는 지난날 광야 4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그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웠는지 그 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 까지는 대략 15일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고 그리고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들은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던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베푸신 놀라운 10가지 기적을 보았고 홍해를 가르고 마른땅 걷듯이 건너게 하셨고, 뿐만 아니라 어제 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하늘로부터 내려주신 만나를 먹었고, 그 추운 광야에서 얼어 죽지 않도록 불기둥과 그 따가운 햇살을 구름기둥으로 막아주시고 시원한 생수로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신앙인 줄 믿습니다. 복된 신앙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좋은 신앙은 지난날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하며 송축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에게 좋은 길로 인도해신 줄 믿는 것입니다. 설렁 현실에서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은 그 일이 먼 장래에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막는 것이 아닐까요? 일이 잘되면 기도 응답이 되어서 감사하고 일이 뜻대로 안 되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 때문에 감사하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현실의 초점을 맞출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생기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불평과 불만이 더 많이 생깁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더 큰 은혜가 임하는 줄 믿습니다.

3. 광야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33절에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본문의 내용을 일컬어서 ‘가데스 바네아의 반역 사건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보여주는 값진 교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성도가 믿음생활 가운데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어떤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호수아와 갈렙도 40일간의 가나안을 돌아보고서는 간담이 서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지 1년여 조금 지난 그들은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농기구 정도였을 테니까. 무엇으로 전쟁을 해야 하나? 군사도 없고 군대도 없는 자신들이 참으로 한심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10명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들 역시 현실적으로 보면,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하나님을 불순종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현실 앞에서,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어떤 일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아 순종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민수기 13장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으로 백성들에게 충고하나 그들은 돌로 맞아 죽을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결코 굴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 할지라도 옳은 일에 함께 순종하는 자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광야는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곳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사막과 같습니다. 변화무상합니다. 분명히 보여서 확신 했는데, 다음에 보면 보이지 않는 곳이 사막입니다. 믿었던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손에 쥐었던 재물도 없어지고 건강했던 몸도 약해집니다. 변하지 않는 곳 영원히 믿을 곳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경험했고 그리고 잘 안다고 마음대로 갔다가는 상처받고 낭패만 당하게 됩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를 ‘미드바르’ 라고 하는데, 이 단어와 비슷한 단어가 ‘다바르’인데, 그 의미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즉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작은 변화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고 거기에 반응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그간 40년을 총정리 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인자하신 사랑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한 자이시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는 다시 순종하는 믿음으로 광야에서 도우시는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길을 우리 앞에 행하시며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살펴 주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원하며 축복합니다. logosnew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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